'페루'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4.02 페루(5)-하늘호수, 티티카카호 (11)
  2. 2008.03.26 페루(4)-마침내 마추픽추 (16)
  3. 2008.03.19 페루(3)-잉카의 고도 쿠스코 (20)
  4. 2008.03.17 페루(2)-리마의 센트로 (10)
  5. 2008.03.16 페루(1)-리마의 해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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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Titicaca 호수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 넘도록 먼지 풀풀 나는 길을 달렸다. 도중에 해발 고도가 4335m인 곳도 지났다. 여름인데도 안데스 산맥의 꼭대기엔 만년설이 덮여 있다.

처음 들었을 때 티티카카 호수의 어감은 내 귀엔 ‘띠띠빵빵’처럼 장난스러웠다. 잉카제국 창시자 망코 카파크가 강림했다는 전설이 깃든 신령스러운 이미지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티티카카는 '빛나는 돌'이라는 뜻인데, 잉카 시대땐 '파카리나 paqarina' 라고 불렸단다. 어느 안내책자엔 '파카리나'가 ‘모든 것이 태어난 장소’라고 풀이돼 있는데, 위키피디어엔 정반대로 모든 사람이 죽을 때 거쳐가는 마지막 장소라고 나와 있다. 티티카카 호수(의 극히 일부)를 돌아보고 난 뒤 소감은 위키피디어 해석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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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남부, 안데스 산맥 중앙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의 해발 고도는 3800여m. 대형 선박이 다닐 수 있는 호수 중에선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이고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져 있다.

물빛이 하늘빛과 크게 다르지 않고 맑아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엄청 더럽다. -.-; 하수종말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인지, 적조현상이 심각해보인다. 이렇게 방치해둬도 되나 걱정스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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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를 30분 정도 가면 우로스 Los Uros 섬을 만난다. 갈대 (토토라)로 만든 섬이다.
무슨 임시 세트장 같아서 정말 사람이 사는 곳인지 긴가민가했는데, 우루족이 이렇게 갈대섬에서 산 지 벌써 6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육지에서 지배족 (꼬야족인가....암튼)의 박해를 피해 티티카카 호수에 와서 토토라를 엮어 배를 만들고 선상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섬을 만들어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갈대로 도대체 어떻게 섬을 만든다는 걸까.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호수에서 자생하는 토토라 수풀 사이를 작은 카누로 지나다니며 긴 낫 같은 도구로 계속 자른다. 이를 반복해 토토라가 약 2.8m 정도 두께로 겹쳐 포개지면 그게 그냥 섬이 된다는 것. 고리를 꿰어 끌면 그대로 끌려오기 때문에 섬 자체를 끌고 이사를 다니기도 하고, 또 좁다 싶으면 토토라를 옆으로 쌓아 크기를 넓히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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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라로 만드는 건 섬 뿐이 아니다. 집도 만들고 곤돌라 모양의 배도 만든다. 토토라의 연한 순 부분은 먹기도 한다.
우로스 섬은 이렇게 만들어진 갈대섬 40여개를 통칭하는 말인데, 큰 섬에선 10여가구가 살기도 하지만 작은 섬은 달랑 집 2채인 곳도 있다.
섬에 내리기 전에 갈대섬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을 땐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막상 섬에 내려보니 사정이 달랐다. 바닥은 단단한 편이지만, 갈대 더미가 물에 둥둥 떠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밤이면 습기가 올라와 아주 춥다고 한다.
섬의 바닥은 계속 썩어들어가는 상태다. 바닥이 많이 썩으면 갈대를 위로 계속 쌓아 무게를 지탱할 두께로 만들어줘야 한다. 우로스 섬의 뜻이 '매일 새롭게'라던데, 늘 토토라를 위로 쌓아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듯하다. '매일 새로워진다'는 말이 이들에겐 심리적 태도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가장 절박한 노동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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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위엔 예전에 섬을 만들기 전 선상생활을 했을 때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해놓았다. 갈대섬을 만드는 것보다 저렇게 작은 집을 얹은 배를 엮는 게 더 힘들었을 것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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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갈대섬에선 콘돌을 길렀다. 구경꾼들 보여주기용 콘돌이라 뭐 시들하게 쳐다보았는데 날개를 펴니 엄청 크다. 조련사도 잘 감당못해 쩔쩔맨다.
내가 기웃기웃하자 원주민 한 명이 자기 집에 들어와서 보라고 손짓을 했다. 작은 침대 하나와 옷가지들이 쌓여있는 소박한 살림살이.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구닥다리 TV가 놓여있다. 집 안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을까 잠깐 망설이다 관뒀다. 집주인이 불러들여 보여준 것이지만, 소박하다 못해 세간이라곤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살림살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어쩐지 무례한 짓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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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를 타고 나와 푸노 시내로 이동. 밥을 먹으러 가던 길에 칸델라리아 Candelaria 축제 행렬과 마주쳤다. 2월 내내 성대하게 열리는 칸델라리아는 각 마을 성당마다 모시는 성인 성녀의 상을 들고 행진하는 축제. 종교적 행사인데 떠들썩하게 춤추고 음악도 요란하다. 페루여행 마지막에 운좋게 만난 성대한 송별파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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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가슴이 두근 거렸다. 살아서 한번은 꼭 보리라 다짐했던 곳, 마추픽추.
하지만 오랜 동경의 대상을
눈앞에 맞닥뜨린 순간은 의외로 담담했다.

비가 내린 직후, 구름이 서서히 걷혀져 가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뒤 400년이 넘도록 버려진 도시의 폐허치곤 여전히 견고했다. 마추픽추 Machupicchu 의 뜻이 ‘오래된 봉우리’라더니, 숱한 전투와 패배에도 위엄을 잃지 않은 늙은 전사를 보는 듯 했다. 제대로 경의를 표하려면 잉카 트레일을 3박4일간 걸어 찾아와야 제격이지만… 아쉽게도 기차와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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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근처 오얀타이 탐보에서 1시간반 가량 기차를 타고 올라가면 마추피추를 오르기 직전의 도시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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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마추픽추 타운'이라고 부르는 이 도시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Aguas Calientes 라는 곳인데 동네 옆을 흐르는 강 이름이기도 하다.  마추픽추에 오르려면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마추픽추를 향해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다. 산봉우리들이 방패처럼 첩첩이 쌓여 있었다. 한 구비를 돌 때마다 '이번엔....'하는 심정으로 목을 길게 빼고 둘러보았지만, 쉬운 접근은 바라지도 말라는 듯 산봉우리들이 계속 나타나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구비를 돌기 몇 차례, 거의 산정상에 올라올 즈음이 되자 마추픽추는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입구 쪽에 가까운 농부의 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마추픽추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지라던데 그럴만도 하다. 3면이 강, 4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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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농지에 앉아 쉬는 여행자들. 여기서 아래 주거용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마추픽추의 해발 고도는 쿠스코보다 낮은 2400여m. 고산증 염려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입구까진 간신히 도착했지만 더이상은 도저히 안되겠던지 입구 아래쪽에 주저앉은 한 할머니는 "여기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못올라가다니...."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추픽추 주거지역의 중앙 현관. 사진용 포즈를 잡은 페루의 부자가 엉뚱하게 내 카메라에 잡혔다. ^^; 아버지와 아들이 꽤 닮았다. 같은 얼굴의 찌푸린 버전과 웃는 버전이랄까. 비가 내리고 2월 비수기인데도 줄을 서서 돌아봐야 할 정도로 여행자들이 많았다.

계단식 농지에서 내려다본 주거지역 전경. 잉카의 건축이 모두 그렇듯 커다란 돌들을 이음매가 거의 없이 꽉 맞물린 방식으로 쌓아 견고한 벽을 세웠다. 이 돌들은 산에서 나는 게 아니고 옮겨온 것인데 어디서 어떻게 옮겨와 다듬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잉카인들이 왜 산 정상에 이런 도시를 세웠는지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마추픽추는 미국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이 황금이 감춰진 비밀의 도시 빌카밤바를 찾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황금의 저장소라고 보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스페인의 추격을 피해 서둘러 건설한 최후의 도시라고 보기엔 너무 견고하고 크다.  마추픽추가 처음 발견됐을 때 나왔던 유골 중 80%가 성인 여자의 유골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성처녀 수련장처럼 종교와 관련된 곳이었다는 설도 유력하다고 한다.



위의 두 사진은 3개의 현관문들 group of the three doorways 이라고 불리는 지역. 계단식 대지 위의 집들은 저장고로 추정되는데 서로 연결하는 3개의 문들이 있다. 여기서 회반죽, 아랫마을에서 가져온 진흙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도자기같은 것을 만들고 보관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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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무덤 터. 바로 위엔 태양의 신전이 있다. 왕의 무덤 터만 지어놓았을 뿐 실제 왕이 이곳에 매장된 흔적은 없다.
.....이쯤에서 내가 아주 불성실한 기록자였음을 고백해야겠다. 콘돌의 신전과 꼭대기의 제례대인 인티파타나 등 마추픽추의 유적을 더 이상 촬영하거나 기록해두지 못했다. 다시 비가 내려 판초 비옷을 뒤집어 쓴 탓에 카메라나 수첩을 매번 꺼낼 정성을 발휘하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이유이지만, 난 그다지 기록에 능한 여행자는 못되는 것같다. 무엇에 정신이 팔리면 그걸 나중에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은 안중에도 없어진다. 여행을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와 수첩을 챙기지만 제대로 기록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전보다는 꽤 기록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 역시나 제버릇 남 못준다고....돌아와서 보니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많이 빠뜨렸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주민들이 사라진 폐허엔 라마가 주인 같았다. 몇 개의 계단식 경작지에 라마들이 서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여행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식 농지 위를 걸어 마추픽추를 빠져 나오며 산을 계단 모양으로 깎고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돌벽을 쌓던 잉카인들을 상상했다. 마추픽추에선 이런 계단식 농지와 신전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하게 고요하고 질박한 느낌이다.
스페인 정복자의 손에 훼손당하지 않은 잉카 신전에는 인간의 긍지와 영광을 상징하는 화려한 표상이라곤 전혀 없었다. 단정하게 잘라내어 다듬은 돌들이 꼼꼼하게 쌓여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던 시절에도 여기가 황금으로 화려한 도시일 것 같진 않았다. 신보다 인간의 영광이 넘치는 이집트, 그리스의 압도적인 신전에 비한다면 아주 초라하지만, 되레 그 초라한 정성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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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드디어 잉카제국에 발을 들여놓다! 페루가 매혹적인 이유도 덧없이 몰락했으나 아직까지도 신비에 쌓인 제국 때문 아니던가.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걸려 쿠스코 Cuzco 에 도착했다. 중심가인 엘 솔 El Sol 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잉카제국의 몰락을 그려 넣은 대형 길거리 벽화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있다. 해발 2500m 이상의 고지대에 단시간에 도착했을 때 대부분 고산증을 겪게 된다고 해 미리 고산증 예방약인 다이아막스를 처방받았다. 약도 먹고 아주 느릿느릿 걸었지만 숨이 가쁜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코리칸차 (Qorikancha 태양의 신전). 잉카인들의 신전인 이곳을 스페인 정복자들이 허물고 그 잔해 위에 산토 도밍고 교회를 지었다. 정복자들의 유산인 이 교회 안에는 잉카인들의 수난을 그린 벽화들이 전시돼 있다.
스페인이 점령한 뒤 제작된 종교화에는 태양신 문양이 숨은 그림처럼 꼭 들어가 있다. 예수의 발치에, 성모마리아의 옷자락 한 구석에. 그렇게라도 암호를 새겨넣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 했을 잉카인의 결연한 얼굴이 떠오른다. 


코리칸차의 석벽 유적. 잉카인들의 석벽 쌓는 솜씨는 대단하다. 지진이 났을 때 산토 도밍고 교회는 무너졌지만, 잉카의 석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저렇게 서로 맞물리는 홈이 파였던 거라는데, 너무 현대적 건축자재 같아 믿기지가 않는다.

잉카인들의 석벽 쌓는 솜씨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석벽이 죽 이어진 거리에 있는 이 12각 돌.
모서리가 12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문 화강암으로 쌓은 거라는데, 이음매가 어찌나 꼭꼭 들러붙어 있던지 얇은 종이 한 장도 들어갈 틈이 없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크다.

석벽은 아예 관광상품이 되었다. 잉카 로카 거리엔 맞은 편 석벽에서 이런 퓨마의 형상을 찾아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쿠스코 도시 전체가 이런 퓨마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참 벽을 노려보고도 결국 찾는데 실패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저 모양이 보였다.

사진 찍는 걸 까먹었지만, 쿠스코에도 한인 식당이 있다! 고산증으로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먹는 김치찌게 맛은 정말 별미다. 고도 때문에 쉽게 끓지 않아 오래 끓여서 맛있는 거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고산증이라는, 시식자들에게 듬뿍 쳐진 최고의 양념 덕택같다. ^^;

쿠스코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 가장 활기찬 곳이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여기서 노닥거릴 때 리마 대형 운송업체의 쿠스코 진출을 반대하는 중소버스 운영업자들의 가두시위가 한차례 쓸고 지나가기도 했다.
페루 거리를 돌아다닐 때마다 유난히 하늘이 눈에 띄었다. 어디를 가든 하늘이 두드러지게 푸르고 맑다. 고산지대라선지 구름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날씨가 변화무쌍해 여름인데도 겨울 점퍼를 들고 다녔지만, 햇볕은 피부가 아플 정도로 따갑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이 대성당 역시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시대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지은 것.

쿠스코는 작고 예뻐 느릿느릿 돌아다니기에 좋다. 시장에 가서 소금도 사고, 빵도 사고...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주저앉고 싶은 곳. (고산증만 없다면. -.-; )  

쿠스코 근교에도 잉카인들의 유적이 많다. 삭사이와만 (Sacsayhuaman)은 쿠스코 동북부를 지키는 잉카인들의 요새 겸 제례의식을 행하던 곳. 6월엔 여기서 남미 3대 축제 중 하나라는 태양신 축제가 열린다.
커다란 돌들이 건물 2~3층 높이로 쌓여 퍼즐처럼 꽉 맞물린 채 길게 이어져 있다. 이음새는 역시 빈틈이 없다. 잉카인들은 석벽 쌓기에 거의 편집증적 열정을 지니기라도 한 것같다.  
석벽만 보면 얼마나 거대한 구조물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테지만, 옆 사진을 보면 돌 하나의 크기가 짐작갈 것이다. 돌 크기를 보여주려 일부러 찍었다. ^^;  돌 한 개의 높이가 2m는 훌쩍 넘는다.  
삭사이와만의 말 뜻이 재미있다. '배부르게 먹은 새'. 남미에서 단일 구조물로는 가장 큰 거라고 하던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축 자재로 마구 뜯어가 지금 원래 석벽의 절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삭사이와만 옆엔 리오데자네이로의 거대 예수상을 본뜬 예수상이 쿠스코를 굽어보고 서 있다. 이곳에 정착한 팔레스타인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웠다고 한다. 거대한 잉카 유적 옆의 예수상이라...쿠스코를 굽어보는 황량한 언덕에서 예수와 태양신이 팽팽히 겨루는 듯한 느낌. ^^;

이후로도
바위를 깎아만든 유적인 켕코 Qenqo, 성스러운 샘이라 불리던 탐보마차이 Tambo Machay, 북쪽을 지키는 요새인 푸카푸카라 PukaPukara 등을 쭉 들렀는데, 돌들, 그 엄청난 돌들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산증 탓도 크다. 예방약도, 산소통도 별 소용이 없다. 고산증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는 고산증에 좋다는 코카차, 코카캔디를 다 섭렵했지만 별 무소용.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알콜을 적신 솜. 그 솜으로 관자놀이를 마사지하고 알콜 냄새를 계속 맡는 게 고산증 증세를 가라앉히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다.

저녁엔 해발 2800m에 있는 우르밤바 계곡의 피삭 pisac 으로 이동했다. 피삭의 로얄 잉카 호텔.  지친 눈에도 어라, 예쁘네, 감탄이 나온다.  

내가 묵은 방. 방마다 같은 색의 문, 벽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시설은 영~ 아니올씨다 였다. 욕실은 습기가 빠지지 않아 눅눅하고 바닥은 어찌나 선득거리던지. 이럴땐 고단함이 약이다. 뭘 더 바래, 하는 심정으로 풀썩 주저 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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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흰 양복을 빼입은 이 ‘빽구두 신사’들이 서 있는 곳은 리마 시내 한복판의 카지노 앞이다.
리마엔 카지노가 정말 많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약 30분 거리의 대로변에서 여행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물은 카지노들이다.
대부분 자유의 여신상을 간판에 그려넣거나, '뉴욕뉴욕'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간판을 내걸어 미국풍 분위기를 내려고 애쓴 티가 역력했다. 카지노가 미국에도 쌨는데, 여기까지 도박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페루는 사막과 고산, 밀림 이렇게 3개의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죄다 사람 살기가 수월치 않은 곳들이다. 페루, 하면 마추피추, 나스카가 상징하는 고대문명을 떠올리지만, 리마에선 그런 분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막 지대에 해당되는 리마의 구시가지 (센트로) 엔 스페인 통치시절에 건립된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했다. 고풍스러운 유럽형 건물들이 햇볕에 바래고 먼지로 뒤덮인 듯한 모양새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산마르틴 광장. 산마르틴은 페루 독립운동의 영웅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거리인 아르마스 광장. 황금을 찾아 이곳에 온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지은 곳이다.
사진 속 오른쪽 건물은 시의회. 사진 밖 오른쪽엔 대통령 궁이 있다. 정부 건물들이 모인 관청가이고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도 이 사진 맞은 편에 있다. 관청가 치고 참 예쁜 거리인데....


바로 옆 대통령궁 앞은 장갑차까지 세워져 있어 분위기가 꽤 살벌했다.
그런데 맞은편 대성당 계단에서 한참 지켜보니 장갑차는 거의 폼 같다. 이 광장에서 어슬렁 거리는 동안 정오가 되어 대통령 궁 안에서 위병 교대식이 있었다. 관광객들이 궁 바로 앞까지 바짝 모여들어 교대식을 구경할 수도 있고, 플래카드를 들은 사람들 한떼가 지나가기도 했다. 장갑차가 있는 풍경은 위압적이지만 실제 공간의 분위기는 느슨하고 편안했다.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 안. 황금을 좇아 여기에 온 정복자 피사로가 지은 성당 답게,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 이 성당이 특이한 건, 내부에 피사로 기념관이 있다. 피사로의 유체도 여기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기념관 벽면에는 사자가 F자를 들고 있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건 프란시스코 (F) 피사로가 스페인 왕실 (사자)보다 더 높다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장식이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지위를 과시하고 싶었으나 그는 성당 초석을 놓은 뒤 7년 밖에 살지 못했다. 그것도 암살당해 일생을 마감했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사람들이 높은 지위를 구하려 달려드는 동기에 대해 쓴 대목이 생각난다.
모든 것을 다 갖고도 더 위로, 위로 올라가려는 탐욕의 동기를 대개 돈, 명성, 영향력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고들 설명하는데, 알랭 드 보통은 그 모든 걸 한마디로 요약해 "사랑"때문이라고 했다.
오로지 다른 사람의 관심, 호의적 눈길과 존중, 즉 사랑을 얻기 위해 더 높은 지위를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심리를 '인정욕구'라는 말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정욕구나 사랑이나 그게 그건데, 그게 다 "사랑"때문이라는 보통의 설명을 들은 뒤로 명성과 지위를 드높이려 안달복달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볼 때면, 괜히 사랑에 굶주린 자, 강요에 의해서라도 외부의 관심을 끌어오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약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괜히 저 'F'자도 빈약해보였다.

점심 때 페루 식당에서 세비체를 먹다. 생선살과 해물을 레몬즙과 향신료로 버무린 회무침 같은 요리. 아주 맛있다.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 듯.

식당이 있던 곳은 페루의 중산층 쯤이 산다는 주택가 근처였다. 집 담벼락 색들이 예쁘다.


색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보니, 교통신호등과 교통경찰이 일하는 길거리 박스 색도 예쁘다.
그건 그렇고 월요일날 여길 온 내가 바보다. -.-; 박물관이 문닫는 날이라 리마의 그 유명한 박물관들을 하나도 못봤다. 언제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ㅠ.ㅠ

산크리스토발 언덕인가, 그렇다. 언덕 이름을 적어놓은 메모지가 찢어진 탓에 정확하게 모르겠다. -.-; 어쨌건 나무도 거의 없이 헐벗은 저 언덕의 꼭대기엔 대형 십자가가 들어서 있는데, 그 아래론 빈민촌처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십자가는 구시가지 번화가에선 고개만 돌려도 잘 보이는 위치에 있지만, 그 아래 사는 사람들에겐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좀 위압적일 것같았다. 구원도 정작 필요한 사람에겐 잘 오지 않는 현실이 저 언덕 풍경 위로 겹쳐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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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TAG 리마, 페루

지구 반대편인 페루를 향해 갈 때 나도 모르게 떠올랐던 이미지는 ‘세상의 끝’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용보다 제목이 더 유명한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때문이다.

고단한 비행을 끝낸 새들이 돌아와 죽는 곳. 새들 뿐 아니라 실패한 혁명가인 주인공도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친 뒤 세상을 등지고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페루 리마 북쪽의 해변에 깃든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페루 해변이 세상의 끝이라는 걸까. 소설을 읽어도 모르겠다. 서양인이 덧씌운 환상의 너울 같아 약간 마뜩찮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한 환상의 힘은 컸다. 페루의 해변엔 뭔가 비장한 로맨틱함이 있을 것 같은 일말의 설렘이 사라지지 않았다. 리마에 밤늦게 도착해 다음날 해변으로 가면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사장의 띠, 무한일 것만 같은 광막한 바다조차 계속 와 부딪혀 몰락하는 해변을 상상했다.

하지만 웬걸, 땅이 수면 위로 불쑥 솟은 리마의 해변은 세상의 끝이라기엔 위풍당당해보인다.
솟아오른 땅 위에 건설된 빌딩들은 '끝'보다는 '시작'의 기운을 풍겼다. 하늘엔 죽으러 온 새떼 대신 패러글라이딩을 탄 '인간 새'들이 떠다녔다. 바다 위엔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이 고개를 높이 쳐들고 엎드려 파도를 타고 있었다. 
평화롭고 느긋한 해변. 하긴, 대표적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지구의 해변에서 세상 끝의 이미지를 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가까이서 본 해안절벽. 리마는 해안단구 위의 사막지대에 들어선 도시다.
퇴적층이 아슬아슬해보여도 연간 강수량이 70mm미만이어서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절벽 위엔 해변을 따라 예쁜 공원들이 많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을 흉내내 만든 듯한 연인들의 공원. 한 가운데 거대한 키스 조각상이 떡 하니 들어서 있다. 왠지 모르게 '역시 남미'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조각.
그런데 이 공원 바로 옆엔 투신자살을 너무 많이 해 '자살다리'라고 불리는 다리가 있다. 자살이 계속되는 바람에 다리 난간에 저렇게 보호막을 씌워놓았다는데.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여간 '사랑 공원' 옆에 '자살 다리'라... 각각 어떤 절정이라는 점에서 그럭저럭 어울려보이기도 한다. 

나스카의 지상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독일 수학자의 이름을 본따 만든 마리아 라이헤 공원. 나스카 지상화 모양을 그대로 축소해 잔디밭 위에 도형을 그려놓았다. 이 모양은 콘돌 지상화를 축소한 것. 사진에선 작아 보이지만 축소 도형도 꽤 큰편이다. 옆 담장 위에 올라가 줌으로 당겨 찍었다. 이번 여행에선 나스카를 갈 수 없어 지상화는 이걸로 대신하는 수밖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때문인지, 계속 새들만 눈에 띈다. -.-;
지상화에서도 콘돌만 보인다던가...해변엔 라르코마르 Larco Mar 라는 꽤 큰 쇼핑몰 같은 곳이 있는데, 그 앞의 한 가게 위에서도 새를 길들이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여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인간 새'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도 찾기 어려울 것같다. 뛰어내리기 위해 짐을 짊어지고 산 위에 올라갈 필요도 없다. 해안 절벽 위에서 그냥 가볍게 뛰어 발만 떼면 바로 바다 위이므로.

남들이 하는 패러글라이딩을 넋놓고 구경하다가 너무 해보고 싶어 그냥 한번 질러보기로 했다. (음...시간 대비 가격을 따지면 쫌 비싸다. 하지만 한번 해보니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교관 앞에 의자를 하나 더 달고 함께 비행하는 방식. 우산에 가려 안보이지만, 중앙에서 막 출발하는 팀의 앞쪽에 매달려 있는 게 나다.

새떼들이 몰려와 죽었다는 페루의 해변에서 새가 되어 날아오르다.
패러글라이딩은 예상외로 편안했다. 의자에 푹 파묻혀 앉아 하늘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 새의 눈높이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도시는 소음이 지워져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한참 하늘을 나는데 내 눈앞으로 검은 새 한마리가 스쳐 지나갔다. 괜히 반가워 소리쳐 부를 뻔 했다. 이봐, 나도 날고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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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