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연휴에 심하게 앓았다.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 계속 비몽사몽. 정신이 혼곤한 와중에 잠깐씩 깰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도 보고 책도 들췄는데, 사람들의 봄 나들이 자랑불타버린 대한문 앞 쌍차 분향소, 책 속의 아름답고 비통한 이미지들이 마구 뒤섞여 꿈속으로 몰려들어왔다. 깨어 있는 상태와 꿈 속이 분간이 안 될 지경....

 

그렇게 읽은 책이 서경식의 '나의 서양음악순례'. 내가 좀비 같은 상태여서 제대로 읽었는지나 의심스럽고,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참 좋은 책 (이렇게 말하려니 좀 황당하긴 하다..). 

의도한 건 아닌데 10여 년에 걸쳐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 '나의 서양미술순례', '나의 서양음악순례'를 다 읽게 됐다. 세 권의 책을 늘어놓으면 섬세한 내면, 다소 우울한 감수성을 지닌 빼어난 문장가가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가는 생의 행로를 보는 듯도 하다.

 

꿈 속에까지 밀려 들어온 책 속의 강렬한 이미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여성 수인 오케스트라에서 음악을 연주해야 했던 한 유대인 여성의 고백.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벌거벗은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가 '인간성의 최종적 파괴'라고 그녀는 치를 떨며 저항했지만 '오케스트라냐 징벌노동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수용소 당국의 강요 앞에서 그녀는 결국 오케스트라를 택하고 만다. "그 때 나는 패배한 겁니다"라고 그녀는 80세가 되어 고백한다......

 

책 속에 비극적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서경식과 성향이 전혀 다른 아내 F의 음악적 취향의 차이도 소소하게 재미있고, 10년 넘도록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참석해온 경험담, 윤이상, 말러, 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KBS FM 93.1에서 장일범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책에도 장일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에고~ 독후감을 길게 쓸 기운도 없다. ㅠ.ㅠ 다만, 서경식이 책 말미에 다루지 못해 아쉬운 음악가로 꼽으며 소개한 리히터의 1977년 영국 앨드버러 공연 장면 (일본 NHK 방송)을 유튜브에서 찾아 뿌듯하다. 서경식은 이 연주를 두고 '첫 화음이 울려퍼지자마자 경이롭다'고 썼는데, 그보다 나는 뭐랄까, 나를 알아봐주는 상대를 만난 듯 맘이 안도감으로 착 가라앉는 기분. 

지난해 앙코르와트에서 후배가 들려준 리히터, 그리고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슈베르트. 두 거장이 만난 곡을 서경식의 책에서 발견하니, 몇 겹의 우연이 겹쳐 만난 Serendipity처럼 혼자 흡족하여 음악을 듣고 또 듣고 하다가 더 자주 들으려고 여기 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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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이 책은 원제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보다 번역제목과 부제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가 훨씬 좋다.

게다가 비통, 민주주의, 마음...대선 이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키워드들이 아닌가. 대선 전에 한 번 읽은 책이지만, 대선 이후 마음이 요동칠 때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왜 그렇게 마음이 심란했을까. 평소에 별 관심 없던 정치가 왜 나의 일상적 감정에 그토록 큰 영향을 끼친 걸까. 개인적으로는 대선 다음날 내가 작은 사고를 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선 결과로 뭐라 말할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에서 회의에 갔다가, 나보다 연배가 한참 높은 분과 언쟁 끝에 그에게 아주 거칠게 대했다. 그 분 의견이 말도 안 되게 들려 열이 오르기도 했지만, 새누리당을 찍었을 거란 짐작 때문에 내 태도가 더 적대적이었던 듯하다어색하게 수습한 뒤 며칠 후, 그 분이 나를 따로 불러 말했다. "상대가 악당도 아닌데 무조건 틀렸다고 단정하고, 약한 고리를 콕 찍어 후벼 파는 식으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황망했다. 잔뜩 모가 난 내 마음이 갑자기 내 밖의 어떤 거칠고 흉한 물질로 외화되어 눈 앞에 들이밀어지는 듯했다.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비통한 마음 (brokenhearted)이 부서져 열리는 (broken open) 대신 부서져 흩어져 버린 (broken apart) 상태, 그 바람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구 파편을 튀기는 그런 상태인 것만 같았다.

저자인 파커 파머는 "'우리' '너희'를 흑백의 구도로 나누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너그러움의 여백이 있어야 민주주의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창조적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을 일상에서, 내 일터와 가족, 동네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다른 어디에서도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부서져 마음이 열리는 (broken open) 상태는 갑자기 포용력이 확 커지는 게 아니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않았던) 것들을 보려는 노력에서 시작될 터이다. 대선과 작은 사고 이후 체념과 수치심으로 마음을 닫는 대신, 갈등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따르려 노력해본다. 모순과 부조리는 바깥의 현실에만 있지 않았다. 이런저런 경험 때문에 내 안에 질기게 남아 있는 옳고 그름에 대한 편협함, 어줍짢은 엘리트주의, 어처구니 없게도 스스로를 선의 편에 동일시하는 도덕적 우월감 등등..... 차이와 다양성의 인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솔직히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그걸 인정하는지...그렇다고 단언할 수 없다.

 

저자는 차이의 인정이 관용이나 매너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차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거라고 강조한다. 머릿속에서야 어렵겠는가. 문제는 실제 현실과 일상생활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다. 저자는 낯선 이를 환대하는 공간을 물리적으로 회복하는 것의 필요성, 공적인 삶과 시민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깊이 공감하지만 개인으로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좀 막막하다.

 

이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아주 사적인 나 자신의 일에서부터 대선 결과처럼 커다란 정치적 사건 사이를 마구 오간다. 저자가 '마음'을 개인 삶의 차원과 공적인 영역, 역사 등 다양한 배경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가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갖자고 말할 때, 이는 개인의 삶에서 "내 안의 황금과 찌꺼기 둘 다를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공적인 삶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개인적 삶과 정치적 삶을 분리하지 않는 저자의 시각이 이 책의 미덕인 동시에, 한계처럼 보인다. 다 좋은 말이지만 현실에선 별 힘을 갖기 어려워보이는 모호함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개인이 내면의 모순, 바깥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기가 속한 곳에서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게을리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세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이건 너무 순진한 기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떨칠 수 없다.... 어쩌면 읽는 내가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애매함과 긴장을 불편해하는 고질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쓸쓸한 사실이지만, 그건 그럴 것이다. 지난 한 해동안 김상봉 교수가 어디엔가 쓴 말을 수첩 맨 앞 페이지에 적어두고 종종 들여다 보았었다.

"추수에 대한 희망 없이 씨앗을 뿌리기, 희망 없이 인간을 사랑하기,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세계에 대한 의무를 다 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비극적인 세계관 속에서도 언제나 기뻐하는 법을 배우기"

그런 세계관으로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본다면, 사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지 않은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큰 힘은 나지 않는다. 뭘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다만, 부서져 흩어져 사방으로 파편을 날리는 내 마음을 그러모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당장 선명한 답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차이, 갈등 앞에서 마음을 닫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런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진 않겠지만, 내가 속한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으로, 내겐 충분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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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블로그에 놀러 오신 분들께 알립니다~

제가 번역하고 해설한 책 '푸른 눈, 갈색 눈'의 저자와의 만남 열립니다.

 

10 17 () 저녁 7시반.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1층 카페 통인입니다.

참여연대 가을문화프로그램으로, '참여연대와 한겨레출판이 함께 하는 저자와의 만남'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행사 제목은 '저자와의 만남'인데, 사실 '저자'가 아니고 '번역 & 해설자'라서 좀 쑥스럽긴 하네요.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았던지 옮긴이 해설을 워낙 길게 써놓은 바람에, '저자' 틈에 끼워준 모양이에요. ^^;

 

사람들 앞에서 오래 이야기하는 게 영 적성에도 맞지 않고 익숙해지지 않아서 어지간하면 이제 강연 같은 거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소개한 실험 이야기는 좀 많은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어요.

얼마 전에도 경북다문화지원센터 주최 특강에 가서 이 책의 실험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점점 심해지고 소위 '다문화'라는 용어가 더 왜곡되게 쓰이는 터라, 듣는 분들이 흥미로워들 하셨어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고 주제, 소재가 구체적이기 때문에 말하는 저도 재미있었고요. ^^

 

참여연대 카페통인은 크지 않은 규모이니 오손도손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해둔 사이트에 가셔서 신청하시길~ 제 책 말고도 흥미로운 저자와의 만남이 더 있으니 다른 행사들도 살펴보셔요~

참여연대 가을문화프로그램 내용 보기와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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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한밤중에 폭풍우를 만나 집을 향해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가는 뱃사공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 곁에 꼭 붙어 있던 어린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금방 위로 떠올랐다가 금방 또 밑으로 가라앉아 보이는 저 바보 같은 작은 불빛은 도대체 뭐예요?"

아버지는 다음날 설명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날이 밝자 그것은 등대불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나운 파도 때문에 위아래로 흔들리며 오르내렸던 눈에는 그 등대불이 때로는 아래로 때로는 위로 보였던 것이다.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자기 전에 잠깐 펼쳐 본 책. 평지에 발 딛고 사는데도 ''의 감각을 좀처럼 느낄 수 없다나 역시 앞이 보이지 않고 격렬하게 요동치는 바다에서 노 저어가는 기분. 눈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자주 흔들리곤 하는 저 흐린 불빛은, 아이가 본 것처럼 바보 같은 작은 불빛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잊지않고 주시하면 결국 나를 해안으로 데려다 줄 등대의 불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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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브레인붓다 브레인 - 6점
릭 핸슨 & 리처드 멘디우스 지음, 장현갑.장주영 옮김/불광
 

나는 깨달음, 명상 같은 단어들에 약간 거리감을 느끼는 터라, 어쩌다 한 번씩 참석하는 독서 모임에서 고른 책이 아니었더라면 '붓다 브레인'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고 절절 매던 때
, 명상에 관심을 쏟은 적이 있었지만 도무지 몸에 붙지 않아 관뒀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책들도 한 때 탐독하다 흥미를 잃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승려가 종교에 귀의한 덕분에 누리고 있다고 믿는 행복은, 그가 어쩔 수 없어서 도로청소부가 되었더라도 누릴 수 있었던 행복에 불과하다"고 썼다. 규칙적 수도생활에 쫓겨 자신의 '영혼'을 잊어버린 덕분에 행복해질 수 있었을 거라는 거다. 나는 이 말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문제 삼아 불행해진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자기 마음을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관심을 자기 외부로 돌려야만 하지 않을지. 빅터 프랭클은 "자기 아닌 타인 또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일 때에만 나도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썼다. "자기실현은 자기초월의 부산물"로서만 나타나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손에 넣을 수 있는 표적이 아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과도하게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희망, 행복, 자기존중,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주장들도 나는 좀 불편하다.

'붓다 브레인'은 그렇게 내가 삐딱하게 바라보던 마음 다스리기, 즉 괴로움을 어떻게 다스리고 평정심은 어떻게 찾을지 등을 뇌 과학, 심리학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한 책이다. 반쯤은 귀가 솔깃했고, 반쯤은 여전히 미심쩍다.

먼저 솔깃한 대목부터. 이 책의 골자는 뇌가 마음을 지배하지만, 마음 다스리기를 통해 뇌에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전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외운 런던 택시기사들의 뇌 구조 중 시각-공간 기억의 중추인 해마가 일반인들보다 크듯, 정신적 활동은 실제로 뇌의 신경 구조를 새로 만들어 낸다. 특정한 경향의 생각을 자주 하면 뇌 속에 그런 시냅스가 활성화된다. 실패를 떠올리며 가혹하게 자신을 비난할수록 부정적 사고방식이 몸에 배겠지만, 같은 기억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기억의 씨실과 날실 사이로 그 영향이 스며들어 생각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 경향으로 치닫는 뇌의 작동에 대한 설명도 쉽고 재미있다. 나도 새로 길을 닦듯, 긍정적 생각 훈련으로 뇌 속에 긍정의 길을 트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이제 미심쩍은 대목. 진화과정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도록 세팅된 두뇌의 작용을 바꾸는 요령으로 이 책이 주로 제시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신경 심리학자이자 명상 지도자인 저자들은 각 장마다 다양한 연상의 방법과 마음 챙김, 명상과 이완의 요령을 소개한다. 가령 부교감신경계를 자극하면 이완이 가능한데, 그 방법으로 심호흡과 입술 만지기를 들려준다. 입술을 만지면 부교감신경계를 자극하여 마음을 진정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내게도 뭔가 불안할 땐 입술을 만지는 버릇이 있다. 의식하지 못한 소소한 행동에 그런 기능이 있다니.

하지만 대체로 이완하고, 좋은 느낌과 경험을 떠올리고, 집착하지 말라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조언을 읽다 보니 나중엔 '운동은 몸에 좋다'처럼 하나마나한 말로 들려 별로 와닿지 않았다. 예컨대 연민의 신경망 강화를 위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조언하는데, 그런 말을 듣자마자 "진정한 사랑? 진정의 기준이 뭐지?"하는 생각부터 자동으로 떠오르는 나 같은 인간에겐 이런 주문이 효용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책을 읽은 소득이 있다면 다시 오래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는 거다
. 이 책에선 하루에 한번 이상 찾을 수 있는 쉼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쉼터는 경계를 내려놓고 과도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사람일 수도 있고, 공간 또는 행위일 수도 있다. 내 쉼터는 뭘까 생각해봤는데 답이 금방 떠올랐다. 내 쉼터는 '혼자 오래 걷기'. 약간 빠른 걸음으로 오래 걷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잡다한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책에서 '쉼터'에 대한 질문을 읽고 난 뒤 이틀에 한 번 꼴로 한 시간 이상 걷기를 하고 있다. 오래 안 하던 운동을 다시 하느라 뻐근하지만, 몸의 세포들이 아우성을 치며 다시 깨어나고 예전에 도보여행을 할 때처럼 홀로 충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좋다. '혼자 오래 걷기'를 시작하고 난 뒤에 책의 마지막 장 '자아 내려놓기'를 읽었는데 거기엔 '걸으면서 몸을 수용하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무엇을 알아차리고 느끼라는 지침들이 가득한데, 이런 지침들을 전혀 모르고서도 오래 걷기를 하면서 '자아 내려놓기', 즉 스스로를 잊기가 조금은 가능했다. 의도하지 않고도 '걷기 명상'을 했달까. 고로, 뇌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싶고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게 이 책의 제안에 대한 내 맘대로의 결론이다.

 

덧말 1.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 저자가 대학 때 요세미티에서 추운 날씨에 1800미터 고지에서 달랑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길을 잃었을 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순간, 예기치 않게 강렬한 감각이 엄습했다. 마치 야생동물이 된 것처럼, 한 마리 매처럼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반드시 여기서 살아 돌아가리라는 격렬한 결의였다...(중략)...나는 그때의 느낌을 잊어본 적이 없으며, 힘이 필요할 때면 그때의 기억에 의지하곤 한다."
내가 강한 존재라는 걸 몸으로 기억하기. 그 신체적 감각을 가끔 떠올려 보는 게 정말로 힘이 된다. 다행히,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덧말 2. 독서모임 중 어떤 상태일 때 '몰두' 또는 '집중'의 경험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사람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과제를 하면서 약간 이완된 상태가 되어야 집중이 잘 된다고 했다. 나는 정반대로 약간 버거운 과제를 수행하는 긴장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집중이 되는 쪽이다. 사람마다 정말 다르다는 걸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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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감옥 - 10점
이건범 지음/상상너머

지금 들으면 넋 나간 소리 같지만, 한 때 나는 학생운동을 하다 붙잡혀 징역을 산 '빵잽이'(전과자를 부르던 속어)에 대한 기묘한 열등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 말대로 80년대 학생운동에 뛰어든 20대에게 징역은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낙인을 찍고 존재를 갈아타는 환승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게도 그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뒤꽁무니에 붙어 다녔는데, 어찌어찌 별 탈 없이 20대를 넘겼다. 기득권을 포기하지도 않았지만, 고 채광석 시인의 말마따나 '앓아 누운 사람들 사이에 따라 누워 신음 소리만 흉내 내다' 말았다는 죄책감과 열등감도 오래 잊히지 않았다.

저자는 그처럼 내가 경외를 품고 바라보던 '빵잽이'였다. 저자 이력을 보면 경외감은 더 커진다. 혁명을 꿈꾸다 두 번의 옥살이를 한 뒤 창업하여 연 매출 100억 원 대의 기업을 일궜으나 12년 뒤 쫄딱 망했다. 눈이 나빠져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는데도 지난해 600쪽 넘는 '좌우파사전'을 펴내고 한국출판문화상을 탔다. 그런 사람이 쓴 '내 청춘의 감옥'이라......인간 승리의 비장한 이야기일까?


웬걸, 신세 망쳤다는 영탄이 뒤덮어도 시원찮을 감옥이 배경인데 이 책엔 '변형 바이러스'같은 웃음이 넘쳐난다. 저자는 엄숙한 정치범 사동에서 스포츠지 구독을 시작으로 물을 흐리더니, 잡생각을 물리친답시고 '수학의 정석'을 풀던 '범생'과 급기야 지루박 스텝을 밟는가 하면, 요리법 개발 경쟁을 벌이다가도 만두를 빚어 교도관까지 한 밥상에 둘러앉아 조촐한 한 끼를 같이 먹는다. 저자가 그 안에서 칼을 만들지 않나, 종이로 문짝과 빗장까지 달린 장롱, 선반, 책상을 만드는 장면에 이르면 감탄이 절로 난다.
상상력을 발휘해 징역의 칙칙함을 벗겨내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함께 웃을거리를 찾아내던 저자의 징역살이를 키득거리며 읽다 보니, 묘하게 요즘 청춘들, 무슨 '투쟁'이니 하는 살벌한 단어 아래에서도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춤추며 놀 줄 아는 아이들이 머릿속에 오버랩 됐다. 그렇지......쇠창살보다 더한 그 무엇으로도 완전히 가둘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웃음. 그게 청춘이지.

그렇다고 설마 20대에 치른 두 번의 옥살이가 마냥 가볍기만 할까. 하고 싶은 일은 떠올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아야 할 삶' 10년 청춘을 걸었는데, '동지'들은 떠나갔고 저자는 1.4평 안에 갇혔다. 증오와 고통은 가장 먼저 자신의 표정부터 일그러뜨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떠난 이들을 미워하던 자기 마음의 밑바닥부터 직시하는 힘겨운 작업을 비켜가지 않았다. 흰 벽을 바라보며 홀로 목놓아 울던 숱한 시간을 보낸 뒤, 저자는 "고통을 끌어안는 법", 남에 대한 미움 또는 자책으로 치닫지 않고 고통을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만만치 않은 고난을 겪었으면서 "삶이 나날이 흥미롭고 즐겁다"고 말하는 저자의 힘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유쾌하면서도 때론 울컥해지는 책을 덮으며 저자가 보여준 웃음의 힘을 다시 떠올려 본다. 불친절한 운명을 원망하는 대신 가볍게 웃으며 세상을 통과하기, "세상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행복은 아주 짧게 스쳐갈 뿐"이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은밀하고 뜨겁게 꿈틀거리며 강한 힘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그 짧은 행복의 기억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그리고 계속 웃기. 그가 감옥에서 배웠듯 "웃음의 가벼움이야말로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므로.

그나저나 다 읽고 나니, 오래 전에 잊었던 '빵잽이'에 대한 열등감이 다시 살아난다. , 이렇게 재미있는 경험인 줄 그 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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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나는 들짐승이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뭇가지에서 얼어붙어 떨어지는 작은 새도 스스로를 동정하진 않는다.”
 
-       D.H. 로렌스 -

꽤 알려진 작가가 최근 펴낸 여행에세이를 겨우 다 읽다. 글쓰기 생각쓰기를 쓴 윌리엄 진서는 여행기가 어려운 것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작가들이 대부분 이 분야에서 자신의 최악의 작품을, 나아가 한마디로 끔찍한 작품을 써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에세이를 읽고 그 말에 공감했다. (이렇게 안 좋게 봐서 차마 책 제목을 쓰진 못하겠다.) 더불어 나도 여행에세이 나부랭이를 출판한 전력이 있는 터라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내 책도 남들이 읽으면 이렇게 진부하겠지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워쩔……

위에 적은 시는 에세이에 인용된 문구다. 저런 시를 인용하고도 정작 글엔 자기연민이 넘쳐난다. 작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상투적 여행에세이라 생각하면 그만인데 영 못마땅한 이유가 그런 점 때문이다. 글의 앞부분에서 나는 아픈 아이였다운운을 읽는 순간, 초반에 가졌던 호감이 뚝 떨어졌다.

내 안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찾아 돌보기.’ 심리학 대중화의 폐해를 하나만 들라면 나는 이것을 꼽겠다. 두려움이나 불안, 반복되는 실수의 근원을 내면의 아이에서 찾으려 드는 성인들이 넘쳐난다. 성인의 마음 안에 어린아이가 왜 없겠나. 하지만 현재 직면한 문제의 근원을 억압된 의식, 그 의식이 생겨난 유년 시절에서 찾으려 들면 늘 징징대는 자아도취적 아이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건,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과연 정확한지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예전에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겠다고 버티다 못해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상담가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떠올려보라기에 애써서 몇 가지 이야기들을 생각해냈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적어간 기억을 상담가와 함께 이야기하며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이런저런 해석과 진단을 받았다. 얼마 후 엄마와 이야기하다 내 딴엔 어렵게 말을 꺼내어 그때 왜 그랬어?”하고 물었더니 웬걸, 엄마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셨다. 황당한 마음으로 퍼즐 맞추듯 기억을 대조해보았는데 결론은 내 기억이 심하게 왜곡되었다는 거였다.

일례로 나는 고집이 너무 센 죄로 무서운 유치원 수녀님께 끌려가 1주일간 수녀원에서 감금 당해 살면서 새벽에 일어나 마룻바닥 걸레질을 하던 기억이 촉감까지 생생하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미쳤다고 너를 1주일간 수녀원에 보내냐고 펄펄 뛰셨다. 엄마 기억으론 내 발로 좋다고 수녀님을 쫄래쫄래 따라가 수녀원에서 놀겠다고 우겨서 꼴랑 한 시간인가 과자 얻어 먹고 잘 놀다 왔다는 거다. 정황상 엄마의 기억이 더 이치에 맞다. 그럼 도대체 마룻바닥과 젖은 걸레의 촉감, 세모난 유리창에 비치던 아침 햇살의 생생한 느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추측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서는 그때 내가 맨날 소공녀같은 그림책을 읽으며 울고 짜고 했다는 점뿐이다.

유년 시절의 다른 기억에 대해서도 엄마랑 합동 분석 결과 내가 현실과 환상을 마구 뒤섞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나는 내 기억을 신뢰하지 않는다. 대개의 사람들이 나처럼 기억력이 나쁘진 않겠지만, 많은 기억의 맥락과 느낌은 현재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에 따라 계속 달라지고 윤색되기 마련 아닐까.

기억은 바뀐다. 기억력이 카메라처럼 정확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어떤 대상을 기억하는 자신의 태도는 끊임없이 바뀐다는 건 인정할 것이다. 마르께스의 말마따나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처받은 성인은 과거의 기억에서 늘 상처받은 아이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돌보고 직면해야 할 대상은 징징대는 내면의 아이가 아니라 현재 문제가 발생한 관계 속에 놓인 성인으로서의 자기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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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쑥스러운 공지 하나.
제 책 [내 인생이다]를 주제로 독자와의 만남 갖습니다. 
같은 주제로 강남의 크링 시네마에서 11월과 12월 두 차례 열릴 예정인데요. 다행히 이 두 번의 만남은 저 혼자 하지 않고 제 책에 등장하신 분과 함께 해요.
11월25일에는 국제개발NGO인 ‘세이브더칠드런최혜정 부장님과 함께 합니다. 저도 10월부터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옆구리를 쿡쿡 찌르신 분이십니다 ^^
그래서 어쩌다보니 11월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는 두 언니가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가 되겠습니다~ 최혜정 부장님이 워낙 말씀도 잘하고 경험이 많으셔서 인생전환, 새로운 설계에 대해 좋은 이야기 들려주실 수 있을 겁니다.
행사 안내, 신청 페이지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알라딘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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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1년반 전 겨울 무렵 처음 알게 되어,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번역한 책이 나왔습니다!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입니다.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신 분들은 엘 시스테마의 이야기(요기, 그리고 요기), 그리고 제가 이 책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요기)를 아마 알고 계시겠지요. 책 번역해 펴내는 일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전 감개무량합니다. 이 책은 제가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그리고 딱 한 번 우연히 만났을 뿐인 낯선 이들의 친절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꽤나 감동적인 방식으로 이 책을 제게 전해준 호세에게 드디어 책이 나왔다고 어제 메일을 보냈더니, 호세 할아버지는 느린 우편을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면서 48시간 이내에 배달해주는 DHL로 받아볼 수 없겠냐고 흥분하시더군요.^^  세상의 많은 책들이 그러하듯, 혼자서는 불가능했고 숱한 사람의 꿈과 수고를 모아 만든 이 책을 이제 세상 속으로 내보냅니다.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아래 옮긴이 후기를 붙였습니다. 쓸데없이 후기가 긴 탓에 접었으니 펼쳐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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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고 나서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폭력에 노출된 가난한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처음부터 개인 교습이 아닌 그룹 단위로 클래식 음악을 가르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음악으로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바꾼 엘 시스테마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진한 감동에 뒤이어 떠오른 의문이었다. 나 자신이 문외한인지라 클래식 음악은 일부에 국한된 취미라는 편견이 있었던 데다, 잠깐 피아노를 배웠던 경험으로 미루어 개인 교습이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악기 연주를 배울 수 있는지 감이 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소한 호기심이 결국 이 책을 찾아내어 우리말로 옮기는 인연으로까지 이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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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오늘 아침자 한겨레 신문 '문화칼럼'에 쓴 입니다.....

     *     *     *     *     *


이런 책들이 꽂힌 책장이 있다. 『내 몸 사용 설명서』 『우먼 바디 포 라이프』 『기적의 휘트니스 30분』 『달리기와 부상의 비밀, 발』…. 혹시 ‘몸짱 아줌마’의 책꽂이?  또 이런 책장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 『죽음 앞의 인간』『죽음과 죽어감』『떠남 혹은 없어짐』…. 이건 우울증 환자의 책장?


둘 다 내 책장의 이웃 칸에 나란히 꽂힌 책들이다. 나는 몸짱 아줌마도, 우울증 환자도 아니다. 몸 쓰는 일, 죽음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몰두했던 한때의 관심사, 변덕스러운 취향의 흔적이 책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 둘 중 하나의 리스트만 갖고 내 취향을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려 든다면 몹시 억울할 것이다. 소지품이나 생활공간의 특성으로 사람 성향을 판별하는 심리 기법인 ‘스누핑(snooping)’에서도 특정 단서가 늘 특정 성격을 가리킨다는 따위의 완벽한 답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기본 전제다.


    사진출처=한겨레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씨 서재의 책들이 요즘 구설에 올랐다. 그가 문화방송 ‘피디수첩’과 인터뷰할 때 배경에 비친 책들이 『한국 민중사』『현대 북한의 이해』『혁명의 사회이론』등 평범하지 않아 문제라는 거다. 글쎄다. 스누핑 기법을 설명한 베스트셀러 『스눕』을 읽고 난 뒤 내 눈엔 그 책장이 이렇게 보였다.
‘서재 전체의 10분의 1도 안될 분량의 책 제목만으론 현재 정치 성향은 알 수 없고, 출간된 지 죄다 10년이 넘는 책들을 주제별로 꽂아놓은 걸 보면 꼼꼼한 장서가인데 그 사이에 주제와 관련 없는 『슬픈 열대』가 뜬금없이 끼어있는 걸로 봐선 자주 이용하지 않는 책장이 아닐까….’ 

엉터리 스누핑은 이쯤에서 접고, 의사가 경제평론가가 되고 공무원이 소설가가 되는 멀티태스킹의 시대에 기업인이 합법적으로 출판된 역사, 사회과학 책 좀 읽었기로서니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공들여 화면 흐림 처리를 한 ‘피디수첩’도 괜한 짓을 했다. 정작 놀라운 것은 제목이 확인된 책 10권 남짓을 갖고 한나라당 대변인처럼 그가 “특정 이념에 깊이 빠진 편향된 사고의 소유자”라고 단정 짓는 판단의 신속함이다.


면밀한 관찰과 이해의 수고를 피하려는 사람들의 비합리적 신념의 형성 과정은 사소한 단서가 발견되면 이를 근거로 전체가 참이라고 판단하는 비약 논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현대에도 마녀사냥이 흔한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 인류학자 브루스 노프트(Bruce Knauft)가 80년대에 연구한 게부시(Gebusi)족의 마녀 조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들에게 마녀는 나뭇가지 뭉치로 마법을 부리는 사람들이다. 조사 대상자의 거주지 근처에서 나뭇가지 뭉치가 발견된다. 그럼 그 사람은 마녀다. 나뭇가지 뭉치야 숲속 공터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데도 이 허술한 증거를 들어 게부시 족은 숱한 사람을 처형했다. 어리석다고? 이들의 믿음과 “좌편향인 사람은 ‘혁명’ ‘북한’ 관련 책을 읽는데, 김 씨의 책장에서 그런 책들이 발견됐으니 그는 좌편향”이라는 논리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설령 김 씨가 서재 전체를 혁명, 북한에 대한 책으로 다 채웠다고 해도 그가 관심 분야가 협소하고 지루한 사람이라는 인상은 줄지언정 불법사찰을 받아 마땅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취향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험한 꼴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건 야한 옷차림의 여자는 성추행을 당할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해자에게 범죄 발생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불법사찰만큼이나 비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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