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06.24 제주올레_14-1 코스 (4)
  2. 2013.02.26 제주올레_3코스_14코스 (7)
  3. 2013.02.18 제주올레_12코스 (6)
  4. 2008.12.07 제주 올레길_7코스와 10코스 (24)

 

 

제주도 서쪽 저지곶자왈을 지나는 14-1 코스는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난이도가 ''으로 분류돼 있고 아마 가장 많은 주의사항이 적힌 코스가 아닌가 싶다.

길을 잃을 위험이 있으며 식당 상점이 전혀 없고, 통신장애도 발생할 수 있으며, 여자 혼자는 위험하다... 출입이 제한된 문을 더 열어보고 싶은 것처럼 올레코스를 고를 때마다 이 코스를 자주 기웃거렸더랬다. 여긴 언제 가보나...

그러던 중 우연히 제주올레 행사 안내 메일에서 22일 14-1 코스 함께 걷기 행사를 발견하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비행기 표를 샀다. 엄마 칠순 기념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지 2주밖에 안되었는데, 그땐 렌트카 여행이라 올레를 걷지 못했으니까 빼먹은 걸 하러 가야지 하는,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은 이유로 여행을 결정.

표를 사고 나니 주말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 꼭 만나야 할 친구의 얼굴, 얼른 만들어야 할 강의자료 등이 뒤늦게 줄줄이 눈앞에 어른거렸으나... 일단 가자, 했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14-1 코스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양 왜 그렇게 마음이 절박했던지.

 

 

위험한 길이라니 함께 걷기 행사를 따라가려고 온 건데,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먼저 출발. 사람들이 뒤에 따라올테니 안심이라고 생각하며 먼저 출발했는데, 도착지에선 우리가 꼴찌였다. 올레꾼들이 '놀멍쉬멍 걸으멍'하는 대신 거의 달리는 수준의 걷기 달인들이란 걸 실감. -.-;;;

위의 사진은 시야가 탁 트이는 문도지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곶자왈이다. 멀리 보이는 저지오름과 또 다른 오름. 제주를 자주 다니다 보니 이 섬의 느낌을 특징 짓는 가장 중요한 풍경은 바다보다 오름이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사진작가 김영갑 씨가 왜 그렇게 오름에 몰두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순하게 엎드린 생명체의 잔등과도 같은 오름들이 없었다면 '평화의 섬'이라는 헌사도 어색하고 서걱거렸을 거 같다.

 

곶자왈 올레를 걸으러 간다고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그렸던 풍경은 지난해 친구들과 함께 갔던 거문오름의 곶자왈 숲이었다. 그 때 울창한 숲 속에서 온 몸이 서늘해지는 기운이 잊히지 않아서, 이번에도 컴컴하고 자궁처럼 깊숙하며 '원령공주'의 등장인물들이 막 튀어나올 것 같은 숲을 상상했다. 몸이 달아 절박하게 달려왔던 것도 생명의 근원지 같은 곳에서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깊은 기운에 휘감겨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달까.

 

 

하지만 누구나 걷도록 길을 낸 올레코스가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 거문오름의 곶자왈 숲과 같을 수는 없겠지... 아쉽게도 내가 그리던 깊고 서늘한 기운은 없었다. 수풀과 돌들이 뒤섞여 어지러운 숲 속에서 적당히 터프한 6시간 짜리 트레킹을 마친 느낌. 약간 아쉬웠지만 동행한 후배와 시시덕거리는 농담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까지 종횡무진 오가며 나눈 대화가 즐거웠고 최근 드물게 코스를 완주한 작은 성취감도 좋았다. 가기 전에 괜히 절박했던 마음도, 길을 걷고 돌아오니 평온하다.

언제부턴가 정기적으로 도시를 떠나 오래 걷거나 산에 오르며 적당히 도전적인 환경을 몸의 긴장과 이완으로 겪는 경험을 해야 일상을 꾸려갈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하다. 밖에 나가 방전을 해야 충전이 된다니 좀 희한한 방식이긴 하지만, 나 자신이 그렇다는 게 괜히 안심이 된다. 생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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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천리 바닷가 신천목장 (올레 3코스)

 

제주 표선 해수욕장 (올레 3코스)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해수욕장 (올레 14코스)

 

제주 바다의 서로 다른 색채. 동쪽 올레 3코스의 신천리 바닷가와 서쪽 올레 14코스의 협재 해수욕장. 1.5일의 짧은 일정에 제주도 한복판에 자를 대고 가로로 금을 그으면 맞닿을 만큼 동서로 떨어진 곳을 다녀온 이유는.......미련하기 때문이다.

14코스 쪽에 숙소를 잡고도, 1주일 전 한겨레신문에 나온 신천리 바닷가 풍경 (바로 이 기사)에 홀딱 빠져 동쪽 올레 3코스를 걸어야지 했다.

문제는 그러면 숙소를 취소하고 동쪽으로 잡아야 하는데, 선불로 숙박료를 모두 납부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단 점.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일로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을 못했다. 게다가 신천리 바닷가에 가자고 길을 나선 순간에야 제주도 정반대쪽이란 걸 알아차리고도 계획을 변경하기는커녕, 우리 둘 다 "그런다고 일정을 바꾸냐. 교통비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자"고 희희낙락하는 무대책형 인간들인 탓에 짧은 일정에 동서를 가로지른 여행이 되었음. 이동시간이 길었지만 시시콜콜 별별 수다의 시간이 되었으니 그 또한 좋은 일. 사실 나나 친구나, 일이 턱에까지 차서 헉헉대다 나선 여행이라 뭐든 아무래도 좋았다. 바다, 오름, 현무암 사이에 핀 수선화, 동물이 우다다다 몰려가듯 바람에 흐르는 억새풀들, 맛있는 음식, 하릴 없이 걷는 것, 그 자체만으로 충분했다.

 

완주할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으므로 3코스 출발점에서 통오름까지만 걷고, 그 뒤엔 택시를 타고 이동한 뒤 신천목장 바닷가에서 표선까지 걸어감. 다음날 14코스도 마찬가지. 숙소에서 금능해변까지 짧은 구간만 맛뵈기로 걸었다.

금능해변 근처 동네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제대로 된 커피를 파는 예쁜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 '릴리스토리'까지 덤으로 발견.

내가 묵은 숙소는 협재의 플래닛게스트하우스였는데, 바다 바로 앞이라 이번처럼 바람이 꽤 불고 쌀쌀한 때보다 햇볕 쨍쨍 한여름에 더 어울린다.

 

14코스를 슬렁슬렁 걷던 날일요일 아침답게 사람들은 기지개를 켜지 않았고 개들만 골목에 나와 있는 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한 집에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이모들!"하고 소리쳐 부르며 뛰쳐나왔다. 바다를 보러 가냐고 묻더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따라오라 손짓하며 앞장서 걷는다. 아이는 쉴새 없이 저 하얀 개가 닭을 물어갔다는 둥, 저 개는 새끼를 얼마 전에 낳았다는 둥, 저 빈집엔 사람은 살지 않고 양파만 있다는 둥, 50만원에서 5만원을 갚으면 얼마가 남냐고 묻더니 그럼 남은 돈에서 할아버지가 1400원으로 소주를 두 병 살 거라는 둥 계속 종알댄다.

손에 쥔 사탕을 우리에게 나눠준 뒤 자기만의 공사장이라며 집 옆 모래밭으로 우리를 데려간 아이는 장사 놀이하자면서 김밥과 라면을 파는 분식집 흉내를 냈다. 김밥 마는 시늉, 아이가 손에 쥐어준 모래를 먹는 시늉을 하다가 어쩌다 엄마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가 "엄마 없어요" 한다. "아침 일찍 어디 가셨나 보구나?" 했더니 "원래 없어요. 육지에 갔대요"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질문을 한 게 뜨끔했다. 실컷 잘 논 뒤 사탕을 준 데 대한 답례로 초콜렛을 주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마구 손을 흔들며 집 안으로 사라진 아이는 우리가 길모퉁이를 돌 즈음 뒤에서 "이모들, 잘 가요"하고 소리친다...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짠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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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 얼른 자야 할 시간에, 안 잘 거면 밀린 일을 하는 게 나을 시간에, 이런 사진이나 올리고 있다니... 뭔 짓이람. .

턱 밑까지 들어찬 일들을 어서 해치우고 저곳으로 떠나고 싶다

주말 제주 비행기표를 예약해놓았다

인천 앞바다에 배만 들어오면, 하는 심정으로 이번 주만 지나면! 을 되뇐다. (그럴 시간에 일할 생각은 안하고...) 상상만 해도 질릴 분량의 일들이 눈 앞에 놓여 있지만...... 

어쨌든 이번 주만 지나면!

 

지난해 말 한라산에 가기 전날 걸었던 제주올레 12코스

생이기정 바당길에서 차귀도를 내려다보며 함께 간 친구가 만들어준 위스키 커피를 마셨다. 그 맛이란

이번 주말엔 내가 다른 친구를 위해 그걸 준비해서 가야지

 


올해는 되는대로 제주올레를 다 걸어볼까 한다

처음엔 패스포트를 사서 출발과 도착 확인 도장도 찍어가면서 걸어야지 했는데, 그렇게 시작하면 기필코 완수해야 할 ""로 만들어버리는 내 성격을 잘 아는지라 그 계획은 일부러 접었다

슬렁슬렁, 놀멍쉬멍, 하다 싫증나면 말고, 그렇게 되는대로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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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야자수와 함께 있는 곳.

이런 길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말로만 듣던 제주 올레길 을 다녀오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토요일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종일 눈이 내린단다. 눈보라가 치는 길을 어떻게 걸을까 걱정하면서 출발했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눈덮인 외돌개 산책로를 조금 벗어나니 야자나무가 즐비하게 들어선 산책로가 나타난다.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것만 같다. 

눈을 맞는 들국화와 귤나무.  

(기억이 맞다면) 범섬을 바라보며 걷는 올레코스. 들국화와 억새 덕분에 이 코스는 가을길 같다.
맑은 날 제주도 걷기 여행도 멋질 테지만, 눈보라가 치던 날 올레길 걷기도 근사했다.
다른 방식으로는 도저히 겪을 수 없는 사계절을 짧은 시간 안에 두루 체험하는 기분이다.

바다의 모양이 이렇게까지 다채로울 줄 몰랐다. 한 고비를 돌 때마다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 덕에 나중엔 모서리를 돌 때마다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렐 정도였으니.

용머리 해안을 향해 걸어갈 때, 눈내리는 바다에 서 있던 배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다 위에 정박해있던 고깃배들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막 건너온 배들, 혹은 영계를 향해 막 떠나려는 배들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른어른한 물안개 너머로 배들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코끝이 시린 추위도 잊혀지고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주 올레길은 기자생활을 오래했던 서명숙 씨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온 뒤 국내에도 그런 길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으로 고향에 내기 시작한 길이다. 그녀의 경험담은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 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한 사람이 꿈을 품은 덕분에 이렇게 멋진 길을 걸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그녀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이 길을 걸으며 행복한 사람은 우리 일행만이 아니었다.
아침에 출발할 때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 일행을 마주쳤다. 올레길을 여러번 걸으셨던 모양인지, 어느 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시면서 쉬엄쉬엄 풍경을 즐기면서 가라고 조언하셨다.
외돌개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다시 걷기 시작할 때 그 중의 한 어르신이 뒤에서 걸어오다 "이 길은 그렇게 그냥 지나가시면 안됩니다"하고 낮고 엄숙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왜 사진도 안찍고 그냥 가느냐, 혹은 이 길에 얽힌 전설 같은 걸 아느냐는 말씀이신가 싶어 쳐다보았는데, 갑자기 그 분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승무 춤사위를 선보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좋은 길, 춤 추며 지나가야죠"
...코믹하지만 꽤 감동적이었던 그 분의 춤사위. 올레길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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