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3.26 페루(4)-마침내 마추픽추 (16)
  2. 2008.03.19 페루(3)-잉카의 고도 쿠스코 (20)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가슴이 두근 거렸다. 살아서 한번은 꼭 보리라 다짐했던 곳, 마추픽추.
하지만 오랜 동경의 대상을
눈앞에 맞닥뜨린 순간은 의외로 담담했다.

비가 내린 직후, 구름이 서서히 걷혀져 가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뒤 400년이 넘도록 버려진 도시의 폐허치곤 여전히 견고했다. 마추픽추 Machupicchu 의 뜻이 ‘오래된 봉우리’라더니, 숱한 전투와 패배에도 위엄을 잃지 않은 늙은 전사를 보는 듯 했다. 제대로 경의를 표하려면 잉카 트레일을 3박4일간 걸어 찾아와야 제격이지만… 아쉽게도 기차와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쿠스코 근처 오얀타이 탐보에서 1시간반 가량 기차를 타고 올라가면 마추피추를 오르기 직전의 도시에 도착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흔히들 '마추픽추 타운'이라고 부르는 이 도시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Aguas Calientes 라는 곳인데 동네 옆을 흐르는 강 이름이기도 하다.  마추픽추에 오르려면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마추픽추를 향해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다. 산봉우리들이 방패처럼 첩첩이 쌓여 있었다. 한 구비를 돌 때마다 '이번엔....'하는 심정으로 목을 길게 빼고 둘러보았지만, 쉬운 접근은 바라지도 말라는 듯 산봉우리들이 계속 나타나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구비를 돌기 몇 차례, 거의 산정상에 올라올 즈음이 되자 마추픽추는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입구 쪽에 가까운 농부의 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마추픽추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지라던데 그럴만도 하다. 3면이 강, 4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계단식 농지에 앉아 쉬는 여행자들. 여기서 아래 주거용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마추픽추의 해발 고도는 쿠스코보다 낮은 2400여m. 고산증 염려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입구까진 간신히 도착했지만 더이상은 도저히 안되겠던지 입구 아래쪽에 주저앉은 한 할머니는 "여기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못올라가다니...."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추픽추 주거지역의 중앙 현관. 사진용 포즈를 잡은 페루의 부자가 엉뚱하게 내 카메라에 잡혔다. ^^; 아버지와 아들이 꽤 닮았다. 같은 얼굴의 찌푸린 버전과 웃는 버전이랄까. 비가 내리고 2월 비수기인데도 줄을 서서 돌아봐야 할 정도로 여행자들이 많았다.

계단식 농지에서 내려다본 주거지역 전경. 잉카의 건축이 모두 그렇듯 커다란 돌들을 이음매가 거의 없이 꽉 맞물린 방식으로 쌓아 견고한 벽을 세웠다. 이 돌들은 산에서 나는 게 아니고 옮겨온 것인데 어디서 어떻게 옮겨와 다듬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잉카인들이 왜 산 정상에 이런 도시를 세웠는지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마추픽추는 미국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이 황금이 감춰진 비밀의 도시 빌카밤바를 찾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황금의 저장소라고 보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스페인의 추격을 피해 서둘러 건설한 최후의 도시라고 보기엔 너무 견고하고 크다.  마추픽추가 처음 발견됐을 때 나왔던 유골 중 80%가 성인 여자의 유골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성처녀 수련장처럼 종교와 관련된 곳이었다는 설도 유력하다고 한다.



위의 두 사진은 3개의 현관문들 group of the three doorways 이라고 불리는 지역. 계단식 대지 위의 집들은 저장고로 추정되는데 서로 연결하는 3개의 문들이 있다. 여기서 회반죽, 아랫마을에서 가져온 진흙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도자기같은 것을 만들고 보관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왕의 무덤 터. 바로 위엔 태양의 신전이 있다. 왕의 무덤 터만 지어놓았을 뿐 실제 왕이 이곳에 매장된 흔적은 없다.
.....이쯤에서 내가 아주 불성실한 기록자였음을 고백해야겠다. 콘돌의 신전과 꼭대기의 제례대인 인티파타나 등 마추픽추의 유적을 더 이상 촬영하거나 기록해두지 못했다. 다시 비가 내려 판초 비옷을 뒤집어 쓴 탓에 카메라나 수첩을 매번 꺼낼 정성을 발휘하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이유이지만, 난 그다지 기록에 능한 여행자는 못되는 것같다. 무엇에 정신이 팔리면 그걸 나중에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은 안중에도 없어진다. 여행을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와 수첩을 챙기지만 제대로 기록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전보다는 꽤 기록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 역시나 제버릇 남 못준다고....돌아와서 보니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많이 빠뜨렸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주민들이 사라진 폐허엔 라마가 주인 같았다. 몇 개의 계단식 경작지에 라마들이 서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여행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식 농지 위를 걸어 마추픽추를 빠져 나오며 산을 계단 모양으로 깎고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돌벽을 쌓던 잉카인들을 상상했다. 마추픽추에선 이런 계단식 농지와 신전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하게 고요하고 질박한 느낌이다.
스페인 정복자의 손에 훼손당하지 않은 잉카 신전에는 인간의 긍지와 영광을 상징하는 화려한 표상이라곤 전혀 없었다. 단정하게 잘라내어 다듬은 돌들이 꼼꼼하게 쌓여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던 시절에도 여기가 황금으로 화려한 도시일 것 같진 않았다. 신보다 인간의 영광이 넘치는 이집트, 그리스의 압도적인 신전에 비한다면 아주 초라하지만, 되레 그 초라한 정성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세상구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 여행의 끝  (41) 2008.06.21
다녀오겠습니다 :)  (21) 2008.04.09
페루(5)-하늘호수, 티티카카호  (11) 2008.04.02
페루(4)-마침내 마추픽추  (16) 2008.03.26
페루(3)-잉카의 고도 쿠스코  (20) 2008.03.19
페루(2)-리마의 센트로  (10) 2008.03.17
페루(1)-리마의 해변  (4) 2008.03.16
미국 서부 종단(4)-산타바바라에서 샌디에고로  (14) 2008.03.09
Posted by sanna

드디어 잉카제국에 발을 들여놓다! 페루가 매혹적인 이유도 덧없이 몰락했으나 아직까지도 신비에 쌓인 제국 때문 아니던가.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걸려 쿠스코 Cuzco 에 도착했다. 중심가인 엘 솔 El Sol 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잉카제국의 몰락을 그려 넣은 대형 길거리 벽화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있다. 해발 2500m 이상의 고지대에 단시간에 도착했을 때 대부분 고산증을 겪게 된다고 해 미리 고산증 예방약인 다이아막스를 처방받았다. 약도 먹고 아주 느릿느릿 걸었지만 숨이 가쁜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코리칸차 (Qorikancha 태양의 신전). 잉카인들의 신전인 이곳을 스페인 정복자들이 허물고 그 잔해 위에 산토 도밍고 교회를 지었다. 정복자들의 유산인 이 교회 안에는 잉카인들의 수난을 그린 벽화들이 전시돼 있다.
스페인이 점령한 뒤 제작된 종교화에는 태양신 문양이 숨은 그림처럼 꼭 들어가 있다. 예수의 발치에, 성모마리아의 옷자락 한 구석에. 그렇게라도 암호를 새겨넣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 했을 잉카인의 결연한 얼굴이 떠오른다. 


코리칸차의 석벽 유적. 잉카인들의 석벽 쌓는 솜씨는 대단하다. 지진이 났을 때 산토 도밍고 교회는 무너졌지만, 잉카의 석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저렇게 서로 맞물리는 홈이 파였던 거라는데, 너무 현대적 건축자재 같아 믿기지가 않는다.

잉카인들의 석벽 쌓는 솜씨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석벽이 죽 이어진 거리에 있는 이 12각 돌.
모서리가 12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문 화강암으로 쌓은 거라는데, 이음매가 어찌나 꼭꼭 들러붙어 있던지 얇은 종이 한 장도 들어갈 틈이 없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크다.

석벽은 아예 관광상품이 되었다. 잉카 로카 거리엔 맞은 편 석벽에서 이런 퓨마의 형상을 찾아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쿠스코 도시 전체가 이런 퓨마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참 벽을 노려보고도 결국 찾는데 실패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저 모양이 보였다.

사진 찍는 걸 까먹었지만, 쿠스코에도 한인 식당이 있다! 고산증으로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먹는 김치찌게 맛은 정말 별미다. 고도 때문에 쉽게 끓지 않아 오래 끓여서 맛있는 거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고산증이라는, 시식자들에게 듬뿍 쳐진 최고의 양념 덕택같다. ^^;

쿠스코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 가장 활기찬 곳이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여기서 노닥거릴 때 리마 대형 운송업체의 쿠스코 진출을 반대하는 중소버스 운영업자들의 가두시위가 한차례 쓸고 지나가기도 했다.
페루 거리를 돌아다닐 때마다 유난히 하늘이 눈에 띄었다. 어디를 가든 하늘이 두드러지게 푸르고 맑다. 고산지대라선지 구름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날씨가 변화무쌍해 여름인데도 겨울 점퍼를 들고 다녔지만, 햇볕은 피부가 아플 정도로 따갑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이 대성당 역시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시대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지은 것.

쿠스코는 작고 예뻐 느릿느릿 돌아다니기에 좋다. 시장에 가서 소금도 사고, 빵도 사고...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주저앉고 싶은 곳. (고산증만 없다면. -.-; )  

쿠스코 근교에도 잉카인들의 유적이 많다. 삭사이와만 (Sacsayhuaman)은 쿠스코 동북부를 지키는 잉카인들의 요새 겸 제례의식을 행하던 곳. 6월엔 여기서 남미 3대 축제 중 하나라는 태양신 축제가 열린다.
커다란 돌들이 건물 2~3층 높이로 쌓여 퍼즐처럼 꽉 맞물린 채 길게 이어져 있다. 이음새는 역시 빈틈이 없다. 잉카인들은 석벽 쌓기에 거의 편집증적 열정을 지니기라도 한 것같다.  
석벽만 보면 얼마나 거대한 구조물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테지만, 옆 사진을 보면 돌 하나의 크기가 짐작갈 것이다. 돌 크기를 보여주려 일부러 찍었다. ^^;  돌 한 개의 높이가 2m는 훌쩍 넘는다.  
삭사이와만의 말 뜻이 재미있다. '배부르게 먹은 새'. 남미에서 단일 구조물로는 가장 큰 거라고 하던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축 자재로 마구 뜯어가 지금 원래 석벽의 절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삭사이와만 옆엔 리오데자네이로의 거대 예수상을 본뜬 예수상이 쿠스코를 굽어보고 서 있다. 이곳에 정착한 팔레스타인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웠다고 한다. 거대한 잉카 유적 옆의 예수상이라...쿠스코를 굽어보는 황량한 언덕에서 예수와 태양신이 팽팽히 겨루는 듯한 느낌. ^^;

이후로도
바위를 깎아만든 유적인 켕코 Qenqo, 성스러운 샘이라 불리던 탐보마차이 Tambo Machay, 북쪽을 지키는 요새인 푸카푸카라 PukaPukara 등을 쭉 들렀는데, 돌들, 그 엄청난 돌들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산증 탓도 크다. 예방약도, 산소통도 별 소용이 없다. 고산증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는 고산증에 좋다는 코카차, 코카캔디를 다 섭렵했지만 별 무소용.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알콜을 적신 솜. 그 솜으로 관자놀이를 마사지하고 알콜 냄새를 계속 맡는 게 고산증 증세를 가라앉히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다.

저녁엔 해발 2800m에 있는 우르밤바 계곡의 피삭 pisac 으로 이동했다. 피삭의 로얄 잉카 호텔.  지친 눈에도 어라, 예쁘네, 감탄이 나온다.  

내가 묵은 방. 방마다 같은 색의 문, 벽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시설은 영~ 아니올씨다 였다. 욕실은 습기가 빠지지 않아 눅눅하고 바닥은 어찌나 선득거리던지. 이럴땐 고단함이 약이다. 뭘 더 바래, 하는 심정으로 풀썩 주저 앉다...

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