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10.04.11 경계도시2-건망증과 수치심 (3)
  2. 2009.05.02 박쥐-즐거웠어요, 신부님! (10)
  3. 2008.08.11 4년 전의 최민호 선수
  4. 2007.09.07 데쓰 프루프 - 애들은 가라! (8)
  5. 2007.09.03 사랑의 레시피 - 배려의 방식 (16)
  6. 2007.05.31 밀양-살려고 하는 생명 (4)
  7. 2007.05.20 그리스인 조르바 (18)
  8. 2007.03.30 타인의 삶 (20)
  9. 2007.03.04 바벨 (14)
  10. 2007.01.14 미스 리틀 선샤인=패배자를 위한 찬가 (14)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2'에서 -


영화를 보고 1주일쯤 지난 뒤 위의 내레이션을 찾고 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사와 달랐다. 엉뚱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위의 내레이션이 "그때 우리는 과연 무슨 짓을 한 것일까"로 남아 있었다. 그의 죄보다는 우리의 죄로 더 선명하게 마음에 남은 영화라서 그랬던 걸까.

이 영화를 볼지 말지 한참 망설였다. 2003년 입국한 송두율 교수가 북한 조선노동당 서열23위 김철수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해방이후 최대거물간첩'딱지를 붙이더니 급기야 가짜교수의혹까지 제시하며 미친 듯 몰아붙이던 검찰과 언론의 마녀사냥이 못마땅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송 교수에 대해 '그러게 왜 거짓말을 하고 그러나…'하는 불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머릿속 생각까지 검열하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그 법에 의해 한 사람이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다.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이 남과 북의 한쪽에서는 용인되고 다른 한쪽에는 발도 디딜 수 없었던 그간의 정치적 상황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식인 전반에 대해 갖고 있던 회의와 불신을 그에게서도 확인받는 듯한 느낌으로 상황을 시니컬하게 지켜봤을 뿐이다. 그 뒤, 그 사건을 잊었다. 2008년 대법원은 송 교수에게 제기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는데, 그 선고 내용조차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한 사람의 머릿속을 단죄하고 발가벗긴 뒤 내팽개치고 잊어버리는 이 잔인한 건망증...그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힘이 들었다. 그를 초대한 소위 '진보 진영'조차 송 교수가 평생 견지해온 '경계인'을 우스꽝스러운 개념쯤으로 취급하면서 그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장면에선 차라리 눈을 감았다. 송 교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언론의 횡포는 내가 그 업계를 떠났다고 해서 남의 일처럼 바라보기 어려웠다. 같은 사건이 2010년에 벌어졌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마 더 하면 더 했지 나아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7년 전의 일을 다룬 영화를 보는 일이 불편하고 괴로운 이유는 그 일이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가능성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2003년에 내가 느꼈던 불편함, 내 안의 레드 콤플렉스를 다시 건드리면서 너는 얼마나 달라졌느냐, 달라질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것도 결국은 송 교수 사건의 흐름보다는 그 사건을 보며 불편해하고 거슬려하고, 이곳 아니면 저곳을 강요하는 이분법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그를 무릎 꿇린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1주일 전쯤 영화를 보고 난 뒤 뜬금없이 떠올라 머릿속을 빙빙 도는 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홍상수 감독의 저 유명한 대사,"우리, 인간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였다. 인간이 될 가능성은 없더라도 적어도 괴물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수치심일 것이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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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 영화 ‘박쥐’에서 -


영화 ‘박쥐’를 보기 직전에 읽어서 그런지, 영화관에 가면서 블로그 이웃인 inuit님이 쓴 한 줄짜리 촌평 의 앞머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우가 닭 먹는 게 죄야?”


음, 그러니까 ‘박쥐’는 닭 먹으면서 죄책감 느끼는 여우, 죄가 아니라고 우기며 마구 닭을 먹는 여우, (죄의식이 있든 없든) 닭 먹고 사는 여우에게 돌 던지는 사람들, 아니 불쌍한 닭들, 뭐 그런 동물 농장이 무대인갑다…. 신부가 뱀파이어가 되어 친구의 아내를 탐한다는 설정 정도는 미리 알고 있었으니, 닭 먹으면서 죄책감 느낄 여우는 당근 이 신부이겠고, “여우가 닭 먹는 게 죄냐”고 우기는 자는 누구일지 궁금했다. (알고 싶으면 영화를 보시라~~~)


영화를 보는 내내 키득거렸다.
영화보고 밥 잘 먹고 돌아와서 포털사이트에서 ‘박쥐’를 다룬 어떤 기사 제목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


글쎄다......,
박찬욱 감독의 오래된 주제인 ‘죄의식’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불가항력으로 주어진 죄(원해서 뱀파이어가 된 것도 아닌데)도 내 죄인가 하는 질문도 그렇고, 깊은 죄의식과 새로 눈을 뜬 탐욕 사이에서 헤매던 인간의 말로도 그렇고, 보기에 따라선 ‘본질’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뭐, ‘깊은 고민’ 씩이나….-.-;;;


내 눈에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였다. 쫌 양심적인 흡혈귀도 어쨌건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 구차함, 뱀파이어와 70년대 분위기의 한복집, 뽕짝 음악과 마작, 보드카, 그런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부딪혀 생성되는 독특한 공기가 팽배하고, 연극적 무대 위에서는 ‘심오한 질문’ 대신 심각한 대목을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으로 비트는 엉뚱한 유머가 펼쳐진다.


시작할 때부터 죽어가는 환자의 말에 생뚱맞게 “당근이죠”라고 대답하는 신부, 자살하겠다는 수녀의 고해성사에 ‘거, 떠난 남자 잊어버리라’고 경박하게 충고하다가 면박이나 당하는 신부를 보면서 이 영화가 ‘심오한 질문’ 따위와 거리가 멀 것이라고 기대했고, 실제로 그랬고, 그래서 웃겼다.
어느 잡지에서 감수성 풍부한 어떤 리뷰어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도 찔끔 났다던데, 나는 왜 뒤죽박죽 골 때리는 B급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떠오르던지….
불이 켜진 영화관을 걸어 나오며 화면을 바라보고 이런 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즐거웠어요, 신부님!”

덧1. 영화 보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핏빛에 홀린 탓인지 저녁도 시뻘건 떡볶이를 먹었다능....


덧2. 박찬욱 감독은 여배우 발탁에 일가견이 있는 듯. ‘박쥐’ 최고의 발견은 김옥빈이다. 티 없이 맑은 표정과 요부의 관능을 동시에 갖춘 김옥빈의 얼굴을 보며 ‘올드 보이’의 강혜정이 떠오르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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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시즌.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올림픽 중계를 거의 못봤지만, 잇딴 승전보에 기분이 좋군요.

오늘 어떤 분이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 선수에 대해 4년 전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으셨다면서 “놀랐다"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 솔직히 4년 전에 제가 뭘 썼는지도 가물가물해서 이게 무슨 말이지…하고 한참 얼떨떨했습니다.

영문인즉슨,
이 블로그에도 방을 만들어 모아두었지만 4년 전에 ‘영화 밑줄긋기’라는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열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쳤던 최민호 선수의 말이 인상적이어서 그걸 모티브 삼아 칼럼을 썼습니다. 최 선수의 말과 마침 봤던 영화, 올림픽에 나가는 10대들을 취재했던 경험 등을 잡탕으로 끌어다 쓴 건데요. 최민호 선수 이야기는 맨 마지막에 나옵니다. 간단한 코멘트를 인용한 것이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가 이룬 오늘날의 성취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칼럼 바로가기 클릭)


…예전 걸 다시 읽어보니 제가 써놓고도 ‘근데 넌 왜 그렇게 못사는 건데?’하는 타박이 절로 나옵니다. 에혀~

이름도 안 밝히고 4년 전 글을 상기시켜준, 업뎃 뜸한 블로그에 포스트 거리 하나 만들게 해준 ‘한 독자’분께 감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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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잖아~ ㅠ.ㅜ”

- 영화 ‘데쓰 프루프’에서 커트 러셀이 울상이 되어 -

사이코 변태 마초 악당 커트 러셀이 징징대며 저 웃찾사스러운 대사를 내뱉을 때 어찌나 웃기던지!

소도시 심야영화관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를 봤습니다. 역시 타란티노!

별 생각 없으나 무지 재미있는 싸구려 펄프 픽션 한 권 읽은 기분입니다. 아, 당연히 성인용이구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루하다가 끔찍하다가 약간 긴장되다가 다시 지루해지려고 하는 찰나 심장박동이 치솟으면서 손에 땀을 쥐다가 점점 황당해지면서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리는 영화'입니다. (음....무슨 한마디가 이렇담......-.-;)

허름한 동시상영관에서 킬킬대며 보면 딱일 영화이니 이 영화에 대한 글들은 가급적 읽지 말고 그냥 보세요. (저도 그만 쓸랍니다 ^^) 이 영화 관련 글들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읽어야 훨씬 재미있더군요.

영화의 절반이 넘는 언니들의 끝없는 수다는 다 듣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졸아도 됩니다. 차들이 부릉부릉 달리기 시작할 때만 깨어 있으면 됩니다.

‘트랜스포머’를 보고 난 뒤엔 극장 앞의 차들이 다 벌떡벌떡 일어날 것 같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올 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중인 차들의 엔진 소리가 죄다 전력질주를 준비하는 몸풀기 신호처럼 들려서 가벼운 흥분까지 느껴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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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진창으로 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무슨 일이 있든 언제나 네 곁에 있으리라는 건 약속할게.

조이: …이모?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으로 하진 않아요.

- 영화 ‘사랑의 레시피’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아마도) 30대 싱글여성이 언니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어린 조카를 키우게 됐다. 성질이 불같고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드높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선량한 사람이며 조카에게 정말 잘 해주고 싶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질 않고, 때론 조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 같은 걸 깜빡 잊어버리기도 한다. 버릇이 되지 않아서다.

너무나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으니 자신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자책하는 이모에게 조카는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준다.

...어린 조카 말이 맞다. ‘모든 일’을 다 잘하고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든 통제해 뜻대로 하려는 강박이 심한 사람일수록 ‘모든 일’을 다 잘하고 싶어 하고, 조금만 삐끗하면 ‘모든 일’이 다 글러먹었다고 자책하곤 한다.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얻을 수는 없고, 무엇이 자신에게 이로운지를 스스로가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꽤 오랜만에 본 영화 ‘사랑의 레시피’는 별 (5개 만점에서) 3개쯤을 주고 싶은 로맨틱 드라마다. 러브 스토리의 전개과정에 뻔한 면이 많아 흠잡기도 쉬운 영화이지만, 배려가 뭔지 생각하게 만든 몇 장면들 덕분에 (그리고 예쁘고 기품있는 캐서린 제타 존스,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론 에크하트 때문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뉴욕 맨해튼의 일류 요리사인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가 조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차려준 아침 밥상은 일류 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는 완벽한 농어구이였다. 내가 봐도 아이가 먹기엔 좀 거시기했다. ^^; 초등학생에게 복 지리 한상 차려준 꼴이다. 접시 위에 입을 벌린 생선을 보는 순간 질려버린 아이의 얼굴이라니. ^^ 케이트가 생각하기엔 최상이었겠지만 아이는 음식을 보고 질려 손도 안대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반면 레스토랑의 부주방장 닉 (아론 에크하트)은 어떤가.

케이트를 따라와 주방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조이를 보더니 그냥 옆으로 쓱 다가가서 야채를 다듬는 척 하며 “이건 바질이야” 하고 말을 건넨다. 심심한 아이에게 이파리를 하나씩 따는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

조금 있다가 스파게티 한 접시를 들고 온 그는 바질 잎 다진 것을 뿌려 아이 옆에 서서 그냥 맛있게 먹는다. 한두입 먹다가 저쪽에서 새로운 주문을 외치자 바쁜 척 하며 아이에게 그릇을 안겨주고 “잠깐 들고 있어”하고 사라진다. 잠시후 스파게티 그릇에 코를 박고 먹고 있는 아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자신의 일에 엄격한 케이트의 배려는 농어구이처럼, 자기가 할 줄 아는 최고의 것을 해주는 것이었다.

반면 자유분방한 닉의 배려는 스파게티처럼, 상대방이 부담 없이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순 없다. 케이트의 방식은 고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최고일 것이고, 닉의 방식은 배짱 좋은 지지자가 필요할 땐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해본 몇 번의 배려(?)가 상대방 입장에선 어떠했을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해주면서 그에 상응하는 보답 또는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해 안달복달하지는 않았나? 내가 ‘대단한 희생’을 감수하며 100을 주었는데 상대방은 내 기대의 50에도 미치지 못할 때 분개하지 않았나?
그런 태도의 베풂은 배려라기보다 고작 자기만족을 위해 상대방을 ‘증인’으로 끌어들이려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배려의 핵심은 어쩌면 ‘내가 이렇게 너를 생각한다’고 하는 그 마음의 크기보다, 받는 상대방이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좌우를 살피고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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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우리가 어디 뜻보고 삽니까. 그냥 살지예”

- 영화 ‘밀양’에서 종찬의 대사 -

  (스포일러 없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 고통이라니요.

‘밀양’을 보고나면, ‘밀양’에 대해 말하려면, 난감해집니다. 화창한 날, 구질구질한 내 삶도 화사해질 수 있다는 어이없는 기대를 품어보기도 하는 날, 이렇게 피 흘리는 상처라니요.


예고없이 덮쳐온 고통 앞에서 ‘나한테 왜?’라는 질문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밀양’은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각자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요. 비교할 수도 없는 거구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사람의 고통을 가스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텅 빈 공간에 가스를 주입하면 가스는 공간이 크든 작든 그 공간을 구석까지 균일하게 채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통도 크건 작건 간에 사람의 의식을 가득 채우고 마는 것이다.'...


‘밀양’에서 종찬(송강호)은 ‘뜻으로 사나요. 그냥 살지요’ 했지만, 정반대로 신애(전도연)는 ‘뜻으로’ 살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여자입니다.

뜻을 찾기 위한 신애의 안간힘이 지독하고 무모해 입이 떡 벌어지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그 싸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뜻이 필요하니까요. 무의미함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의미가 필요하지요. 누구든 사람은 그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겠지요.


얼마 전까지 다니던 스포츠센터 화장실의 휴지걸이엔 슈바이처의 말이 조잡하게 인쇄돼 있었습니다.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절실하게 다가와 입속말로 가만가만 따라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걸 다 잃어도, 살아가기 위한 어떤 ‘뜻’도 찾아내지 못했다 해도,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더군요.
암 투병중인 친한 선배가 “내 몸 안의 암세포도 알고 보면 살려고 기를 쓰는 ‘생명’이 아니냐”며 웃던, 쓸쓸한 표정도 떠오르구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밀양’을 보면서 그 말을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탁월한 배우 전도연의 그 어떤 광기어린 연기보다, 저는 그 처절하고 안스러운 장면이 못내 잊혀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밀양’이 보여주는 그 모든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신애라는 여자를,  ‘살려고 하는 생명’으로 기억하렵니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힘, ‘은밀한 햇볕(密陽)’으로요.


※ ‘밀양’을 한번 썼다가 지워버렸는데 다시 올립니다. 이 영화 때문에 몹시 우울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회복되는군요. 저 역시 ‘살려고 하는 생명’인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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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틀 선샤인=패배자를 위한 찬가  (14) 2007.01.14
Posted by sanna
TAG 밀양, 영화

“날 크레타로 데려가 주시겠소?”(조르바)

“왜요?”(배즐)

“그놈의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거요? 그냥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됩니까?”(조르바)

-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말인 어제 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에서 상영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러갔습니다. 꼭 보고 싶은 옛날영화이지만 국내에 DVD도 출시되지 않아 안타까웠던 참에, 이게 웬 떡이랍니까. 게다가 무료 상영! 공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판에 이걸 놓칠 리가 없죠~.

막상 가보니 ‘그리스 걸작 영화제’라는 행사 명칭에 걸맞지 않게 작은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앞사람들 머리 사이로 몸을 기울이고 보느라 허리 아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


원작이 있는 영화는 대개 원작보다 못하거나 낫거나 이지만 이 영화와 책은 서로를 잘 받쳐주는 드문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실존인물이었다던 조르바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저는 앤서니 퀸 말고 조르바를 연기할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열린책들에서 2000년에 새로 출간된 책 ‘그리스인 조르바’의 표지에도 앤서니 퀸이 연기한 조르바가 실렸죠.


같은 대상을 반복해 보더라도,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나 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 때였는데 (책 제목이 ‘희랍인 조르바’였던 듯…), 그 땐 제 눈에 조르바가 제멋대로인 마초의 표본으로밖에 안보였어요. 뭐 이런 재수없는 남자가 다 있나…. 조금 읽다 말고 책을 휙 던져버렸지요.


두 번째 만난 건 서른이 넘었을 때쯤입니다. 조르바의 자유분방함과 그 원시적 배짱에, 작중 화자처럼 저도 놀랐습니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니요.

20대의 저를 지배했던 말은 “자네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네”라고 말하던, 프랑스 소설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에 나오는 충고였습니다.
들뜬 대학 신입생에게 던져진 이 충고는 개인 이전에 전체를 보게 했지만, 그만큼 개인에겐 억압적인 명령이기도 했지요.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선언하고, 체중을 실어 온 몸으로 삶을 음미하는 조르바를 다시 만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하니?’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 시작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게 30대 초반이었으니…. 한참 덜 떨어진 거죠. ^^;


나이가 더 들어 이번에 영화를 볼 땐,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자세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아주 단순화해 말한다면 크레타 섬에 광산을 개발하러 떠난 두 남자의 실패담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가진 돈을 다 털어 조르바가 산에서 목재를 아래로 굴리는 장비를 만들었지만 결과는 대재앙이었지요. 이 재난은 책에서보다 영화에서 가속도를 타고 내려와 행사장을 엉망진창을 만드는 통나무로 실감나게 묘사되더군요.

그러나 주인공이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건, 이처럼 모든 것이 어긋나고 끝나버린 순간이었습니다. 방에서 혼자 어색하게 스탭을 밟아볼지언정 한번도 춤을 춰보지 못했던 그는 모든 게 다 끝났을 때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참패했지만 그로 인해 영혼이 부서지지 않았으니, 그는 스스로 정복했다고 생각하고 흥에 겨워 춤을 춥니다.
영화는 흥겨운 음악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어깨동무하고 춤을 추는 것으로 끝나지만. 책에는 이렇게 써있습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집에 돌아와 다시 소설을 뒤적이다 보니, 아래와 같은 대목도 눈에 띄는 군요.

나는 어느날 아침에 본, 나무 등걸에 붙어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주었다. 열심히 데워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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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 이런 모습 안어울려요.”(비즐리)

“(힘없이 피식 웃으며) 이 꼴이 진짜예요….”(크리스타)

“그래도 난 당신의 관객입니다. …당신은 멋진 배우인데 그걸 몰랐어요?”(비즐리)

- 영화 ‘타인의 삶’에서 술집에서 마주친 비즐리와 크리스타의 대화 -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언젠가 사는 의욕이 안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중이 없으니까 흥이 안나.”

그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었는데, 뭘 잘 해도, 잘못 해도, 지켜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뭘 열심히 하려는 마음도 먹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사람에겐 몇이 됐든 관중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가 말하는 관중이란 ‘친밀한 타인’일 터…. 그의 말이 외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짐짓 난 그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관중이 꼭 가까운 사람이어야 해?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는 말도 있다구.”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탄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낯선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관객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낯선 이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이 서로에게 서서히 침투해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가능할까.

이 영화는 그게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몰래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스스로 변화하고, 상대의 삶을 변화시킨다.


배경은 통일 전 동독. 감시가 일상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눌렸던 그곳에서 비밀경찰인 비즐리는 사찰 대상인 극작가 드라이만, 그의 연인인 여배우 크리스타가 함께 사는 집을 도청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비즐리는 비밀경찰 양성학교에서 잠도 재우지 않고 고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냉혹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좀처럼 사람을 믿지 않는 그가, 도청 대상인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육체를 탐하는 문화부장관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크리스타를 안타까워 하던 비즐리는 급기야 술집에서 마주친 크리스타에게 다가가 “나는 당신의 관객”이라며 제발 망가지지 말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도청 대상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비즐리의 감시는 어느덧 보호로 바뀌고 비즐리는 이들을 몰래 돕기 시작한다.


스릴러적 특성이 가미되고 반전이 거듭되는 영화라서, 혹시 보실 분이 있을까봐 줄거리를 더 자세히 쓸 수가 없다. ㅠ.ㅜ 밑줄을 긋고 싶은 더 멋진 대사가 있지만, 그것도 반전에 속하는 것이라 쓸 수가 없다.OTL

좌우간 강추!!!
연출이나 연기 모두 요란하지 않고 잔잔한 영화이지만, 참 좋다. 뒤로 갈수록 더 좋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눈빛을 지금도 난 잊지 못하겠다. 이렇게 딱딱한(?!) 소재로 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 영화에서 인간말종으로 나오는 동독 문화부장관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일어서면서 나는 사람의 선의에 대한 이 영화의 믿음에 주저하지 않고 동의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그것도 ‘낯선 이의 친절’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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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영화 밑줄긋기 2007.03.04 01:24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차마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이가세트 -

이름도 낯선 이 철학자의 말을 요즘 통렬하게 절감한다.
항상 일이 벌어져버린 후에야, 누군가가 떠나버린 후에야 깨닫게 된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전하지도 못했는데....
그러나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상대에게 가닿지 못했던 내 마음은, 입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저 혼자 떠돈다.


영화 '바벨'을 보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떠들다 끝내 탑이 무너져 버렸다는 성경 속의 이야기처럼, 영화 속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서너개의 이야기 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가 상황의 핵심에 놓여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모로코의 낯선 땅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아내를 지켜봐야 하는 미국인 여행객, 사소한 태도 때문에 불법 체류자로 몰려 난데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사막을 헤매야 했던 멕시코 여인,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잔뜩 독기를 품은 청각장애인인 일본 소녀....
이 영화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은 언어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것만은 아니다. 경찰은 상대의 설명을 전혀 듣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하고, 심지어 '같은 언어'로 말하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조차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절박한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으며 앰뷸런스도 보내지 않고 미적댄다.

영화를 보며 가슴이 터질 것처럼 미어졌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뭔가를 시도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지는 이런 관계에서 도대체 소통이란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무구한 관계에 대한 희망, 그런 건 환상에 불과한 걸까.
다행히도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자그마한 희망의 여지를 열어놓았다.
난데없는 총격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인 부부는 그전에 이미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관계였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세상에 대해 날을 세우던 일본 소녀는 낯선 형사를 붙들고 오열한 뒤 아버지와도 화해하려는 작은 몸짓을 보인다.

내가 보기에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상황들의 공통점은, 등장인물들이 '바닥을 쳤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너무나 절박할때, 더 이상 계산할 무엇, 패를 돌려볼 카드가 내 손에 남아있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서는 살아가는 일이 도저히 불가능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남의 말을 곡해하지 않고,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어떤 관계의 상실을 후회하고 있는 나는 아직 절박하지 않아서, 손해보지 않으려고 먼저 이해득실부터 따져보는 장삿꾼같은 속셈 때문에, 사람을, 기회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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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바벨, 영화

“패배자가 되면 어떻게 하죠? 아빠는 패배자를 싫어해요…” (올리브)
“얘야, 패배자가 뭔지 아니? 지는 게 두려워 아예 도전조차 안하는 사람이야.” (할아버지)
  -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할아버지와 손녀 올리브의 대화 -

최근에 본 가장 재미있는 영화로 난 주저 없이 ‘미스 리틀 선샤인’을 꼽겠다.

(원제가 ‘리틀 미스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인데 왜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국내 개봉 제목을 바꿨는지 당최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어린이 미스코리아 대회를 ‘리틀 미스 코리아’, 라고 부르지 않았었나???)


저예산 영화로 소품 규모인데도 지난해 미국 영화연구소(AFI)등에서 뽑은 ‘올해의 영화 10’ 리스트에 꽤 많이 올랐던 영화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영화는 ‘패배자 (Loser)’에게 바치는 따스한 찬가라 할만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류의 격려성 영화여서가 아니다. 이 영화는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 두 종류의 인간만 있다”고 믿는 미국식 성공관념을 기분 좋게 뒤집는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 전복의 힘은 연민과 삶에 대한 긍정에서 나온다.


이 집안, 꼴이 가관이다. 올리브의 아버지는 ‘인생불패 9단계 비법’을 만들어 성공학 강사로 뜨고 싶어 안달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짜증 만땅인 엄마는 밥상에 허구헌 날 프라이드치킨만 올려놓으며 남편이 대박을 터뜨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올리브의 오빠 드웨인은 좀 이상한 얼간이 같다. 열렬한 니체의 추종자이자, 비행조종사가 되기 위해 아홉달동안 침묵시위중이다.

그뿐인가. 할아버지는 색골에 마약을 하다 양로원에서 쫓겨났고, 외삼촌 프랭크는 자칭 최고의 프루스트 전문가이나 인정받지 못하고 게이 애인마저 빼앗겨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 마저 실패한다.

이 가족이 함께 ‘울며 겨자먹기’로 장거리 여행에 나서도록 만든 올리브는 미인대회의 환상에 푹 빠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출전하지만, 실상은 그런 대회 출전자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유난히 뱃살이 볼록하고 커다란 안경을 쓴, 촌스럽고 귀여운 꼬마일 뿐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이 가족은 고물차를 몰고 함께 길에 나서고, 그들은 괴롭지만 보는 이는 계속 웃을 수밖에 없는 길 위의 개그가 시작된다. 온갖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므로 그냥 코믹 로드 무비로 보아도 좋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은 (무엇보다 일단 영화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단 한순간도 메시지를 전하려고 목소리에 힘을 주거나 억지스러운 화해, 해피엔딩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이 길 위에서 뭔가를 크게 깨닫거나, 과거와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 실패하고 뭔가를 잃고 허둥댄다. 영화 막바지에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을 보상해줄 멋진 한 방을 집어 넣을만도 하건만, 감독은 영리하게 그런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의 유혹을 피해갔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의 ‘닭짓’을 끝까지 계속하며 관객을 웃긴다.

누구 하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갈등은 여전하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들은 계속 허방다리를 짚으며 살아갈 것이지만, 그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삶이라는 느낌, 각자 자신의 방식과 그 나름의 개성을 버리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무한한 긍정을 갖게 만드는 영화다.


보고 나면 인생에 승리 혹은 패배, 그런 게 어디 있겠어, 안그래? 라고 묻는 듯한 영화의 톤에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중요한 건 승리 혹은 패배가 아니라 고통까지 포함해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 터.... 자칭 ‘프루스트 전문가’인 외삼촌 프랭크는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싶다’는 조카 드웨인의 푸념에 이렇게 답해준다.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야 말로 완전한 패배자야. 게이에다 아무도 안읽는 책을 20년 동안 썼지. 그래도 나중에 그는 ‘고통 속에서 보낸 나날이 그대를 만들었으니 그 때가 가장 행복했노라’고 말했어. 고등학교야 말로 고통의 최고봉인데 가장 행복한 시절을 건너뛰면 어떻게 하니. 고통이 없으면 고통을 추억할 수 있는 즐거움도 사라지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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