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스테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02 음악의 약속 (14)
  2. 2009.01.17 베네수엘라의 호세 (22)
  3. 2008.12.16 아브레우 박사-클래식으로 아이들을 구원하다 (12)

음악의 약속

그냥... 2009.08.02 23:59

후배 블로그에서 보고 따라쟁이 컨셉으로 퍼온 공연 동영상. 
멕시코 작곡가 아르뚜로 마르께스의 ‘단쏜 2번’. 요즘 내가 열공 중인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지난해 말 한국에 와서 유명세를 탄 그 ‘엘 시스테마의 가장 큰 오케스트라다. 지휘자는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인 구스타보 두다멜.

며칠 전 이들을 다룬 DVD를 본 뒤 계속 콧노래로 흥얼거리던 곡이었는데 오늘 무심코 들른 후배 블로그에서 또 만나다니, 이건 무슨 계시인가, 하는 엉터리 생각도 해본다. 심지어 오늘 본 영화 ‘업’에서도 비행기 티켓에 선명히 찍혀 있던 ‘베네수엘라’ 글자가 유독 눈에 띄더라는…. -.-;; (옆길로 새면 ‘업’은 하도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초반 30분가량을 지나고 난 뒤부터는 별 감흥이 없고 그저 그랬다. 픽사 스튜디오가 다른 주옥같은 영화들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링 능력을 생각하면 이건 그냥 범작이다.)


이 동영상에서도 DVD에서 본 얼굴들이 눈에 띄어 혼자 반가웠다. 가령 동영상의 1분30초 어름에 화면에 잡힌 바이올리니스트는 23살 난 조안나 시에르랄타다. (이름이 Jhoanna 인데 스페인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라서 일단 조안나로…) 그녀는 금으로 된 목걸이 같은 걸 하고 나갔다간 곧장 빼앗기고 만다는 우범지역에 산다. 집 맞은 편 산등성이의 판자촌을 가리키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의 아이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거나 오케스트라의 보호를 받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런가하면 5분46초 어름에 잠깐 솔로 연주자로 등장하는 플루티스트는 카트리나 리바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개인 악기를 살 돈이 없어 오케스트라가 대여해주는 악기로 연주를 배웠고, 총을 든 괴한들이 출몰하는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오가며 “위험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면서” 아슬아슬하게 산다.


그런 이들이 “음악은 내 삶이고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할 때, 그 울림은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악기를 갖고 개인지도를 받으며 성장한 음악가들의 열정과는 사뭇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조안나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바이올린 연주 뿐 아니라 사람을 빈부, 피부색, 나이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도 했다.

음악이 어떻게 이들을 바꾸고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음악은 본디 위대하다는 흔한 설명은 나 같은 문외한에겐 별 설득력이 없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한두사람이 아니라 특별히 음악적으로 두드러질 것도 없던 카리브해의 한 나라에서 30년간 무수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었던 음악의 힘, 그게 도대체 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했을까. 요즘 내가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들이다.
DVD에서 이 '단쏜 2번'이 흘러나올 때 화면은 카라카스의 허름한 뒷골목을 걸어가는 어린 소녀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돌아다닐법 하지 않은 길거리를 볼품없는 옷차림새로 걸어가던 소녀의 찰랑거리던 검은 머리를 보면서, DVD의 제목인 '음악의 약속'과 가장 잘 어울리는 화면이 아닌가 생각했다. 왠지 저 아이 곁에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단쏜의 처연한 곡조가 보이지 않는 보호막처럼 그 아이를 부드럽게 휘감아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 묘한 안도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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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
오래 전 스페인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볼 때 들었던 이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영화 안에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블랑쉬 역할을 맡았던 늙은 여배우가 무대 위, 무대 밖에서 두번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땐 낯선 이의 친절 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늙은 여배우의 고독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영화의 맥락과 무관하게 내겐 점점 더 이 말이 어떤 인간도 완벽하게 혼자가 아니며,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로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특히 그랬다. 스페인에서 갑작스레 내린 눈으로 추위에 떨 때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아일랜드 할머니는 자기 방 욕조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담그라고 난생 처음 본 내게 방 열쇠를 내밀었다. 여행지를 떠올릴 때면 멋진 경치, 맛있는 음식보다 그런 짧은 만남들이 먼저 생각난다. 두번 다시 만날 기약조차 없는 낯선 이들이 서로 스쳐지나가며 전달해주는 온기. 언젠가는 모두 혼자가 된다고 해도, 이 이상 뭘 더 바래, 하는 심정이 되곤 했다.

새해 첫날부터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이유로 시작된 경미한 우울이 밑도끝도 없이 깊어지던 터였다. 넘어섰다고 생각했던 장애물에 또 발이 걸렸다는 낭패감에 아득해지던 때, 그래도 다시 일어서볼만 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건 기대하지도 않았던 낯선 이의 친절이었다.

지난달에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다녀간 뒤 (그 때의 일은 '아브레우 박사 이야기' 로 블로그에 썼다), 그들의 이야기가 영 잊혀지지 않았다. 사람마다 유난히 꽂히는 코드가 따로 있는데 내 경우는 그게 자기 삶 안에서 '다름'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클래식으로 빈민촌 아이들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다리를 놓아준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아마존을 뒤져도 책이 없는데 그래도 틀림없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엘 시스테마'에 무작정 메일을 보내 영어로 된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차피 '아님 말고'니까.

다음날 호세 (Jose)라는 사람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런저런 영문자료를 첨부해 보내면서 베네수엘라에서 출판된 책 영어 번역본이 달랑 2000권 나오고 절판됐는데 자기가 스캐닝을 받아놓았다면서 원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보내주면 좋겠다고 답장을 보낼 때만 해도 압축 파일로 만들어 보내줄 줄 알았다.
웬걸, 그 다음날부터 호세의 메일 융단폭격이 시작됐다. 메일 1개에 책 1페이지를 스캐닝한 jpg 파일 1개씩을 첨부해서 잇따라 보내는 거였다. 


그렇게 182 페이지 짜리 책 한 권을 받는데 3일이 걸렸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 그냥 없다고 했을 텐데... 낯선 사람에게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3일간 182번이나 'send' 버튼을 누르는 짓을 하다니. 디지털 문서를 다루는 방법이 서툴러 그렇기도 했겠지만 내겐 꽤나 감동적이었다.
답례로 선물을 보내고 싶은데 주소를 알려달라니까 호세는 감사 메일로 충분하니 선물은 됐다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왜 그를 청년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력을 들어보니 60은 훌쩍 넘었을 것 같다. 호세는 뉴욕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80년에 조국 베네수엘라로 돌아갔다.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 신포니카 베네수엘라'에서 20년간 일했고 친구인 아브레우 박사(69)가 빈민촌 아이들의 손에 총 대신 바이올린 활을 쥐어주며 '엘 시스테마'를 만들 때 그를 도왔다.  메일에서 그는 조국 베네수엘라, 친구인 아브레우, '엘 시스테마', 무엇보다 여길 거쳐간 아이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어디 내세우고 인정받으려는 종류의 자부심이라기보다 순수한 기쁨으로 반짝이고,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자부심.

책 한 권을 다 보낸 뒤에도 호세는 계속 베네수엘라에서 '엘 시스테마'를 다룬 글들을 영어로 번역해 내게 보내주고 있다. 내 메일함은 '엘 시스테마' 온라인 데이터베이스가 되어버렸고 나는 아마 베네수엘라 바깥에서 '엘 시스테마' 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오늘도 컴퓨터를 끄기 직전 메일함을 열었는데 호세가 보낸 '엘 시스테마' 관련 메일이 2개 더 눈에 띄었다. 빙그레 웃음이 나와서 이 글을 쓴다. 이렇게,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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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한 사람이 꿈을 품었을 때 얼마나 많은 일이 달라지는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을 칠 때, 어떤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낸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 14, 15일 있었다. 이 오케스트라와 그들의 산파 역을 맡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 대해서 몇 달 전 우연하게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그들이 내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그들의 일정을 챙겨보다가 아브레우 박사의 강연회에 가게 되었다.

정작 ‘앙꼬’인 공연은 보지 못한 채 아브레우 박사를 따라다니고 오픈 리허설을 구경한 게 전부이지만, 한 사람의 꿈으로 이렇게 많은 변화가 가능했다는 증언을 듣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아래는 아브레우 박사에 대해 끼적거린 글.


“오케스트라에서 아이들은 인내심과 협동심, 연민과 공동체의 가치, 인생을 배웁니다. 악기를 다루면서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도 생겨나지요. 음악가가 안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연주하고 싸우는 것 (To Play and To Fight)’. 이것이 우리 모토입니다. 음악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자는 것이지요.”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반평생 음악을 통해 빈민가의 아이들을 구원해온 마에스트로는 “33년 전 뿌린 첫 씨가 오늘날 나무가 되었다”고 감회에 잠겼다.


베네수엘라가 낳은 세계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4, 15일 이틀간 내한 공연을 가졌다. 오늘날 이들이 있기 까지는 33년 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소외된 아이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가르치는 국가 조직 ‘엘 시스테마’를 만들어 이끌어온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69)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아브레우 박사는 15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음악교사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예술 교육을 주제로 강연회를 갖고 ‘엘 시스테마’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엘 시스테마’를 거쳐 간 아이들은 27만 5000명. 현재 베네수엘라 전국에 120여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 정도로 거대하게 성장했지만, 그 출발은 1975년 어느 날 수도 카라카스의 한 지하주차장에 모인 11명의 아이들이었다.


경제학자이자 음악가로 베네수엘라 국가경제원 계획 및 조정 관리를 맡기도 했던 아브레우 박사는 빈민가 아이들을 범죄와 마약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총 대신 악기를 들게 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 교육자의 딱딱한 훈육 대신 “열심히 익혀서 같이 멕시코로 공연을 가자”고 아이들을 북돋았다고 한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도 기회를 갖지 못했던 아이들은 아브레우 박사의 자선 레슨을 제 발로 찾아왔고 11명은 다음날 25명, 그 다음날 46명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불어나는 제자들을 더 이상 지하 주차장에서 가르치기가 어려워지자 아브레우 박사는 정부에 탄원서를 냈고 간신히 지원을 얻어 몇 달 뒤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창단되기에 이른다. 멕시코 공연이 빈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4년 뒤인 1979년에는 ‘엘 시스테마’를 설립해 클래식 음악 무료 교육을 조직적으로 펼쳐나갔다.


‘엘 시스테마’ 설립 당시 베네수엘라에는 오케스트라가 달랑 두 개 뿐이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이 부유층의 고상한 취미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론적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도, 1대1 개인수업도 아니고 처음부터 음악을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아브레우 박사의 교육 방식은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전통적, 체계적 교육방식을 따랐더라면 지금보다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면서 “이론 대신 실제에 기반한 시스템이 우리의 강점이다.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 일단 가능한 악기부터 시작하고 보는 게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아이들은 2살 때부터 ‘엘 시스테마’에서 타악기를 두드리고 함께 놀면서 리듬감을 배운다. 가르칠 사람도 모자라 먼저 배운 아이들이 나중에 들어온 아이들을 가르쳤다. 15일 공연에 나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렇게 ‘선배’들에게 배운 세 번째 세대 출신이라고 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50년대에 내가 음악을 배울 때는 1대1 레슨을 받고 혼자 공부했을 뿐 함께 생활하는 기쁨은 체험하지 못했다”면서 “베네수엘라에서는 음악을 배우는 것이 폭력과 마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며, 거리의 갱단과 극과 극인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도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엘 시스테마’는 전문 음악인 양성 보다 빈곤의 악순환을 깨뜨리려는 사회운동 쪽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아브레우 박사는 “가난하면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 계속 가난하게 사는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지지만,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됨으로써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해도 정신적으로 풍요해질 수 있다. 꿈을 품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싸우기 시작하게 된다”고 들려주었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고 스타는 이번에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그는 미국 LA필하모닉의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상태다. 또 베를린 필하모니의 최연소 더블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스도 ‘엘 시스테마’의 간판 스타다.

아브레우 박사는 “많은 아이들이 작곡가 감독 밴드 교사로 진출하고 있으며 브라질 에콰도르 등 다른 남미 국가에도 파견돼 ‘엘 시스테마’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교사들을 교육시키는 ‘서브-시스테마’도 운영하고 있으며 살사 대중음악도 교육 내용에 포함시켜 더 다양한 기량을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내년 10월에는 UN 청소년 음악단 네트워크 구성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전 세계 청소년들이 한 무대에서 평화를 위해 연주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브레우 박사의 꿈이다.

그는 “이번 아시아 투어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 자리에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를 베네수엘라에 공식 초청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강연회에서는 ‘엘 시스테마’의 현재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영됐다. 이 영상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최연소 더블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스는 가난한 소년이었던 자신에게 음악이 어떤 힘을 전해주었는지를 이렇게 들려주었다.


“…낮은 음을 연주할 때면 나는 신을 느낀다. 신의 분노, 어둠, 위대함, 그리고 힘을 느낀다. 우리 모두가 갖기를 원하는 힘. 이 힘이 내 손, 내 악기, 내 영혼에서 비롯된다는 느낌이 나로 하여금 음악에 집중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나는 조국에 책임감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상류층의 삶을 살 순 없다. 독일에서 배운 것을 돌려주고 아이들로부터 더 배우기 위해 나는 수시로 조국에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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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