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3.03 나의 서양음악순례 (12)
  2. 2007.08.11 궁지에서 탈출하는 한두가지 방법 (4)
  3. 2007.03.11 쁘리모 레비와 빅터 프랭클 (14)

모처럼의 연휴에 심하게 앓았다.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 계속 비몽사몽. 정신이 혼곤한 와중에 잠깐씩 깰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도 보고 책도 들췄는데, 사람들의 봄 나들이 자랑불타버린 대한문 앞 쌍차 분향소, 책 속의 아름답고 비통한 이미지들이 마구 뒤섞여 꿈속으로 몰려들어왔다. 깨어 있는 상태와 꿈 속이 분간이 안 될 지경....

 

그렇게 읽은 책이 서경식의 '나의 서양음악순례'. 내가 좀비 같은 상태여서 제대로 읽었는지나 의심스럽고,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참 좋은 책 (이렇게 말하려니 좀 황당하긴 하다..). 

의도한 건 아닌데 10여 년에 걸쳐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 '나의 서양미술순례', '나의 서양음악순례'를 다 읽게 됐다. 세 권의 책을 늘어놓으면 섬세한 내면, 다소 우울한 감수성을 지닌 빼어난 문장가가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가는 생의 행로를 보는 듯도 하다.

 

꿈 속에까지 밀려 들어온 책 속의 강렬한 이미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여성 수인 오케스트라에서 음악을 연주해야 했던 한 유대인 여성의 고백.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벌거벗은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가 '인간성의 최종적 파괴'라고 그녀는 치를 떨며 저항했지만 '오케스트라냐 징벌노동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수용소 당국의 강요 앞에서 그녀는 결국 오케스트라를 택하고 만다. "그 때 나는 패배한 겁니다"라고 그녀는 80세가 되어 고백한다......

 

책 속에 비극적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서경식과 성향이 전혀 다른 아내 F의 음악적 취향의 차이도 소소하게 재미있고, 10년 넘도록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참석해온 경험담, 윤이상, 말러, 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KBS FM 93.1에서 장일범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책에도 장일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에고~ 독후감을 길게 쓸 기운도 없다. ㅠ.ㅠ 다만, 서경식이 책 말미에 다루지 못해 아쉬운 음악가로 꼽으며 소개한 리히터의 1977년 영국 앨드버러 공연 장면 (일본 NHK 방송)을 유튜브에서 찾아 뿌듯하다. 서경식은 이 연주를 두고 '첫 화음이 울려퍼지자마자 경이롭다'고 썼는데, 그보다 나는 뭐랄까, 나를 알아봐주는 상대를 만난 듯 맘이 안도감으로 착 가라앉는 기분. 

지난해 앙코르와트에서 후배가 들려준 리히터, 그리고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슈베르트. 두 거장이 만난 곡을 서경식의 책에서 발견하니, 몇 겹의 우연이 겹쳐 만난 Serendipity처럼 혼자 흡족하여 음악을 듣고 또 듣고 하다가 더 자주 들으려고 여기 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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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헤엄을 쳐서 건너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된다. 다리는 사회 전체에 절대로 데우스엑스마키나 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와 땀, 두뇌 속에서 태어나야 한다."
-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에서 재인용 -

데우스엑스마키나 (Deus ex machina) = 소설과 희곡 영화 등 모든 서사의 종결부에서 갑작스레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우며 안이한 방식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 고전극에서 자주 활용되던 극작술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인공이 궁지에 빠졌을 때, 기계장치로 만든 신이 갑자기 등장하여 위기를 타개하고 주인공을 구원하며 결말을 맺는 연출방식. 중세의 종교극에 이용되면서 일반화되었다.

*   *   *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끄집어내어 뒤적거리다가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에서 눈길이 머무른 대목. 철렁해진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인민이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를 고민했던 파농의 화두를 설명하며 이 대목을 인용했지만, 난 엉뚱하게 삶에서 데우스엑스마키나를 바랐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궁지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 궁지에 빠진 것같은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서 안스럽게 지켜볼 때, 얼마나 자주 데우스엑스마키나를 꿈꾸었던가...... 물론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쪽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았던 파이도 데우스엑스마키나를 바랐더라면 아마 호랑이에게 물려죽든, 물에 빠져죽든 했을 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배에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너무 많이 갖는 것도 그만둬야 했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수 없었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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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두 사나이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오디세우스'들... 이들의 귀환은 어떠한 폭압도 인간성을 완전히 말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였더라면 해피 엔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둘 중의 한 사람, 늘 쾌활하고 낙관주의자였다던 한 사람은 68세에 돌연 자살하고 만다....그는 왜 그랬을까.

서경식 교수가 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다. 작고 분량이 두텁지 않은데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엄습하는 아릿한 통증 때문에 도리없이 여러 번 책장을 덮어야 했다. 읽기 힘들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같다.
이 책을 덮고보니 몇년 전에 읽은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가 떠올랐다. 두 권을 같이 읽으면 어떨까 싶다. 전자가 던지는 비통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후자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쁘리모 레비.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화학자였던 그는 2차 대전 말기 반 파시즘 운동을 벌이다 체포돼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됐다. 전쟁이 끝난 뒤 극적으로 살아 돌아와 자신의 경험과 그곳에서 본 인간의 여러 유형을 증언하는 글을 썼다. 항상 삶을 긍정하는 낙관주의자였다던 그는 1987년 돌연 자살하고 만다.



빅터 프랭클. 유대인이자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였던 그도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3년간 수감됐다.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그는 실존분석적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시해 유럽의 대표적 정신의학자가 된다.

두 사람이 내던져진 비인간적인 조건의 혹독함은 아우슈비츠가 어떤 곳인지를 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간 이하이기를 강요하는 그 곳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두 사람이 안간힘을 썼던 일 중의 하나는 '문명의 형식'만이라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었다.
종종 문화, 문명의 형식은 마치 배부른 자의 여유처럼 생존의 문제 아랫줄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문화, 문명은 생존 다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레비는 '모든 권리를 빼앗겨도 남아있는 한 가지 능력, 즉 (인간 이하, 동물이기를 강요하는 그곳의 폭압과 열악한 환경에) 동의하기를 거부하는 능력'을 전력을 다해 지키려 애썼다. 그 방식은? 아무리 물이 더러워도 아침엔 꼭 세수를 하고, '신곡'을 암송하며, 노래를 부르고, 수용소 어디에도 쓸모없던 외국어를 동료 수인을 통해 배우려 애쓰는 것이다.
프랭클 역시 노래와 시에 의존했으며 유머를 자기 보존을 위한 정신의 무기로 삼았다.  그는 "강제수용소가 인간에게서 모든 자유를 다 박탈하더라도 단 한가지 자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같은 생각은 그가 이후 '로고테라피'를 창안하는 씨앗이 되었다.


두 사람에 대한 책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대목 중의 하나는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이다.
가해자가 아니라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피해자들인데도, 이들을 괴롭히는 감정은 분노와 적개심 이전에 수치심과 죄의식이다.

프랭클은 '정말로 양심적인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가라앉은 어조로 술회한다.
레비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예민했던 것같다. 그는 생존자들의 죄의식에 대해 '누구나가 그 형제들에게 카인이다'라고 쓴다.
거의 모든 생존자는
수용소에서 자신보다 더 연약하고 교활하지 못하며 더 늙고 혹은 너무 어린 사람들을 돕지 못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에 소홀했다는 죄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타자, 그것도 더 마음이 넓고 현명하며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살고 있다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자신이 요령 혹은 행운에 의해서 심연의 바닥까지 가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수치스러워 한다. 그 깊숙한 곳에 빠져 메두사를 보고 만 자는 이미 증언하기 위해서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간인 것에 죄가 있다고 느끼는 수치심을 견뎌내기에 레비의 절망감은 너무 깊었던 것일까....서경식 교수가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의 경험(그는 재일교포다), 인간 이하이기를 강요당하는 모진 환경에 대한 간접체험(군사독재에 저항하다 고문을 당하고 십수년 감옥살이를 했던 서승, 서준식 형제가 그의 형들이다)을 넘나들며 레비의 죽음을 추적하지만,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부 인간은 인간 이하’라는 생각과 행동이 지구상에 온존하는 한, 레비가 겪은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고 레비의 죽음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얼마 전에 일어났던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사건만 보더라도 2007년의 오늘, 우리는 '인간이라는 척도'가 복원되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가 과연 우리는 비인간을 극복했는가, 하는 비통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면, '삶의 의미를 찾아서'는 고통을 이겨낼 개인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책이다.


수용소라는 모진 현실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목표의식을 잃지않을 때 사람은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다. 프랭클 박사는 그 버팀목이 주로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미래 의식이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는 특이한 존재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어도 그에게는 미래라는 도피처가 있다. 이 경우에는 착각도 힘이 될 수 있다.

프랭클 박사가 갇혀있던 수용소에서는 1944년 크리스마스에서부터 그해 연말까지 한주일동안 사망자의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원인은 단 하나, 상당수의 수감자들이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평범한 소망을 품고 있었는데 전황이 여전히 오리무중이자 커다란 절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인간의 저항력을 와해시키는 무서운 힘은 폭압도, 비인간적 환경도 아니고 절망이었다.
사람은 그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어떤 것',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


두 권 모두 평이한 문체로 쓰여졌지만 읽기 녹록치 않다. 하지만 꼭 읽어볼 가치가 있다.
개인의 안위 이외엔 관심이 별로 없고 세상이 많이 살만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권한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 많이 버거울테지만, 불편한 질문에 맞서보는 경험을 통해 삶의 지평을 한뼘쯤 넓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통과 무기력감 속에서 길이 안보인다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권한다. 몇년 전 불안감에 시달리던 나는 이 책 덕분에 동어반복적 자기계발서들의 산더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족이지만 나는 삶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면 '마시멜로 이야기'니 뭐니 하는 쓰잘데없는 자기계발서들 대신, '삶의 의미를 찾아서' '몰입의 즐거움' ' 아직도 가야할 길' 이렇게 세 권만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삶의 의미를 찾아서  빅토르 프랑클 지음, 이희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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