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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7 페루(2)-리마의 센트로 (10)
  2. 2008.03.16 페루(1)-리마의 해변 (4)

흰 양복을 빼입은 이 ‘빽구두 신사’들이 서 있는 곳은 리마 시내 한복판의 카지노 앞이다.
리마엔 카지노가 정말 많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약 30분 거리의 대로변에서 여행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물은 카지노들이다.
대부분 자유의 여신상을 간판에 그려넣거나, '뉴욕뉴욕'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간판을 내걸어 미국풍 분위기를 내려고 애쓴 티가 역력했다. 카지노가 미국에도 쌨는데, 여기까지 도박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페루는 사막과 고산, 밀림 이렇게 3개의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죄다 사람 살기가 수월치 않은 곳들이다. 페루, 하면 마추피추, 나스카가 상징하는 고대문명을 떠올리지만, 리마에선 그런 분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막 지대에 해당되는 리마의 구시가지 (센트로) 엔 스페인 통치시절에 건립된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했다. 고풍스러운 유럽형 건물들이 햇볕에 바래고 먼지로 뒤덮인 듯한 모양새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산마르틴 광장. 산마르틴은 페루 독립운동의 영웅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거리인 아르마스 광장. 황금을 찾아 이곳에 온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지은 곳이다.
사진 속 오른쪽 건물은 시의회. 사진 밖 오른쪽엔 대통령 궁이 있다. 정부 건물들이 모인 관청가이고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도 이 사진 맞은 편에 있다. 관청가 치고 참 예쁜 거리인데....


바로 옆 대통령궁 앞은 장갑차까지 세워져 있어 분위기가 꽤 살벌했다.
그런데 맞은편 대성당 계단에서 한참 지켜보니 장갑차는 거의 폼 같다. 이 광장에서 어슬렁 거리는 동안 정오가 되어 대통령 궁 안에서 위병 교대식이 있었다. 관광객들이 궁 바로 앞까지 바짝 모여들어 교대식을 구경할 수도 있고, 플래카드를 들은 사람들 한떼가 지나가기도 했다. 장갑차가 있는 풍경은 위압적이지만 실제 공간의 분위기는 느슨하고 편안했다.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 안. 황금을 좇아 여기에 온 정복자 피사로가 지은 성당 답게,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 이 성당이 특이한 건, 내부에 피사로 기념관이 있다. 피사로의 유체도 여기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기념관 벽면에는 사자가 F자를 들고 있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건 프란시스코 (F) 피사로가 스페인 왕실 (사자)보다 더 높다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장식이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지위를 과시하고 싶었으나 그는 성당 초석을 놓은 뒤 7년 밖에 살지 못했다. 그것도 암살당해 일생을 마감했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사람들이 높은 지위를 구하려 달려드는 동기에 대해 쓴 대목이 생각난다.
모든 것을 다 갖고도 더 위로, 위로 올라가려는 탐욕의 동기를 대개 돈, 명성, 영향력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고들 설명하는데, 알랭 드 보통은 그 모든 걸 한마디로 요약해 "사랑"때문이라고 했다.
오로지 다른 사람의 관심, 호의적 눈길과 존중, 즉 사랑을 얻기 위해 더 높은 지위를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심리를 '인정욕구'라는 말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정욕구나 사랑이나 그게 그건데, 그게 다 "사랑"때문이라는 보통의 설명을 들은 뒤로 명성과 지위를 드높이려 안달복달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볼 때면, 괜히 사랑에 굶주린 자, 강요에 의해서라도 외부의 관심을 끌어오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약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괜히 저 'F'자도 빈약해보였다.

점심 때 페루 식당에서 세비체를 먹다. 생선살과 해물을 레몬즙과 향신료로 버무린 회무침 같은 요리. 아주 맛있다.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 듯.

식당이 있던 곳은 페루의 중산층 쯤이 산다는 주택가 근처였다. 집 담벼락 색들이 예쁘다.


색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보니, 교통신호등과 교통경찰이 일하는 길거리 박스 색도 예쁘다.
그건 그렇고 월요일날 여길 온 내가 바보다. -.-; 박물관이 문닫는 날이라 리마의 그 유명한 박물관들을 하나도 못봤다. 언제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ㅠ.ㅠ

산크리스토발 언덕인가, 그렇다. 언덕 이름을 적어놓은 메모지가 찢어진 탓에 정확하게 모르겠다. -.-; 어쨌건 나무도 거의 없이 헐벗은 저 언덕의 꼭대기엔 대형 십자가가 들어서 있는데, 그 아래론 빈민촌처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십자가는 구시가지 번화가에선 고개만 돌려도 잘 보이는 위치에 있지만, 그 아래 사는 사람들에겐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좀 위압적일 것같았다. 구원도 정작 필요한 사람에겐 잘 오지 않는 현실이 저 언덕 풍경 위로 겹쳐져 보였다.

Posted by sanna
TAG 리마, 페루

지구 반대편인 페루를 향해 갈 때 나도 모르게 떠올랐던 이미지는 ‘세상의 끝’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용보다 제목이 더 유명한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때문이다.

고단한 비행을 끝낸 새들이 돌아와 죽는 곳. 새들 뿐 아니라 실패한 혁명가인 주인공도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친 뒤 세상을 등지고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페루 리마 북쪽의 해변에 깃든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페루 해변이 세상의 끝이라는 걸까. 소설을 읽어도 모르겠다. 서양인이 덧씌운 환상의 너울 같아 약간 마뜩찮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한 환상의 힘은 컸다. 페루의 해변엔 뭔가 비장한 로맨틱함이 있을 것 같은 일말의 설렘이 사라지지 않았다. 리마에 밤늦게 도착해 다음날 해변으로 가면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사장의 띠, 무한일 것만 같은 광막한 바다조차 계속 와 부딪혀 몰락하는 해변을 상상했다.

하지만 웬걸, 땅이 수면 위로 불쑥 솟은 리마의 해변은 세상의 끝이라기엔 위풍당당해보인다.
솟아오른 땅 위에 건설된 빌딩들은 '끝'보다는 '시작'의 기운을 풍겼다. 하늘엔 죽으러 온 새떼 대신 패러글라이딩을 탄 '인간 새'들이 떠다녔다. 바다 위엔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이 고개를 높이 쳐들고 엎드려 파도를 타고 있었다. 
평화롭고 느긋한 해변. 하긴, 대표적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지구의 해변에서 세상 끝의 이미지를 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가까이서 본 해안절벽. 리마는 해안단구 위의 사막지대에 들어선 도시다.
퇴적층이 아슬아슬해보여도 연간 강수량이 70mm미만이어서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절벽 위엔 해변을 따라 예쁜 공원들이 많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을 흉내내 만든 듯한 연인들의 공원. 한 가운데 거대한 키스 조각상이 떡 하니 들어서 있다. 왠지 모르게 '역시 남미'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조각.
그런데 이 공원 바로 옆엔 투신자살을 너무 많이 해 '자살다리'라고 불리는 다리가 있다. 자살이 계속되는 바람에 다리 난간에 저렇게 보호막을 씌워놓았다는데.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여간 '사랑 공원' 옆에 '자살 다리'라... 각각 어떤 절정이라는 점에서 그럭저럭 어울려보이기도 한다. 

나스카의 지상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독일 수학자의 이름을 본따 만든 마리아 라이헤 공원. 나스카 지상화 모양을 그대로 축소해 잔디밭 위에 도형을 그려놓았다. 이 모양은 콘돌 지상화를 축소한 것. 사진에선 작아 보이지만 축소 도형도 꽤 큰편이다. 옆 담장 위에 올라가 줌으로 당겨 찍었다. 이번 여행에선 나스카를 갈 수 없어 지상화는 이걸로 대신하는 수밖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때문인지, 계속 새들만 눈에 띈다. -.-;
지상화에서도 콘돌만 보인다던가...해변엔 라르코마르 Larco Mar 라는 꽤 큰 쇼핑몰 같은 곳이 있는데, 그 앞의 한 가게 위에서도 새를 길들이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여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인간 새'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도 찾기 어려울 것같다. 뛰어내리기 위해 짐을 짊어지고 산 위에 올라갈 필요도 없다. 해안 절벽 위에서 그냥 가볍게 뛰어 발만 떼면 바로 바다 위이므로.

남들이 하는 패러글라이딩을 넋놓고 구경하다가 너무 해보고 싶어 그냥 한번 질러보기로 했다. (음...시간 대비 가격을 따지면 쫌 비싸다. 하지만 한번 해보니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교관 앞에 의자를 하나 더 달고 함께 비행하는 방식. 우산에 가려 안보이지만, 중앙에서 막 출발하는 팀의 앞쪽에 매달려 있는 게 나다.

새떼들이 몰려와 죽었다는 페루의 해변에서 새가 되어 날아오르다.
패러글라이딩은 예상외로 편안했다. 의자에 푹 파묻혀 앉아 하늘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 새의 눈높이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도시는 소음이 지워져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한참 하늘을 나는데 내 눈앞으로 검은 새 한마리가 스쳐 지나갔다. 괜히 반가워 소리쳐 부를 뻔 했다. 이봐, 나도 날고 있다구!

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