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10.23 10월 23일 (4)
  2. 2012.04.29 네팔에 지은 학교 (26)
  3. 2007.12.29 김인배에게. (28)

10월 23일

그냥... 2013.10.23 22:43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장석남 '水墨정원 9 - 번짐' -

--------------------------------------------------------------------------------------------------------------- 

그렇게 번진 날.

6년 전 오늘 떠났으나, 번져서 내가 되고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고 부모가 된, 한 녀석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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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TAG 김인배

4월 둘째 주, 네팔에 다녀왔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다시 차를 타고 1시간을 가는 시골인 반케 지역 나우바스타 마을에 새로 지은 초등학교를 보러 나선 길. 내가 일하는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소개로 이 학교를 지은 한국의 후원자를 모시고 다녀왔다.

 

내게는 특별했던 출장이다. 모시고 간 한국의 후원자가 내 부모님이셨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5년 전 세상을 뜬 내 남동생이 후원자이다. 아들이 남긴 유산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이 돈을 의미 있게 쓸 곳을 찾고 싶어 하셨고, 내가 일하는 단체를 통해 연이 닿아 네팔에 초등학교를 지었다

 

처음 소개를 받을 때부터 이 학교는 여러 모로 마음이 쓰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 군과 마오이스트 사이에 10년 가량 이어진 내전을 피해 도망쳐 온 이주민들이다. 카스트 제도의 맨밑바닥 불가촉 천민인 달리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인데다 이주민인 탓에, 처음엔 아이들의 출생등록증도 받지 못해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네 명 중 한 명 꼴로 문맹인 마을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했다. 주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짚과 흙으로 허름한 학교를 짓고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흙집은 비가 오면 지붕이 새고, 화장실도, 식수 시설도 없었다. 그나마 2학년까지밖에 없어 3학년이 되면 3km나 떨어진 옆 마을 학교로 걸어 다녀야 했다.

이런 학교에 부모님은 1~3학년 교실 3개와 교무실 1, 화장실과 물탱크, 식수시설, 시소와 미끄럼틀을 갖춘 놀이터를 짓고 교육 자재를 선물했다. 아래 사진 왼쪽이 이전의 흙집 학교, 오른쪽이 부모님의 후원으로 새로 지은 학교 건물이다.

 

 

아래는 새로 지은 학교의 교실과 놀이터 풍경.

 

학교 완공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기뻐하셨지만, 직접 보러 가실 계획까진 없었다. 아버지는 생색내기 방문은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셨고,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셨다. 그런데 사양하고 말기엔, 후원자를 만나고 싶다는 주민들의 요청이 내가 약간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간곡했다.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너져 가는 흙집 학교로는 더 이상 안되겠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새 학교를 지어줄 후원자를 찾으려고 흙집 사진을 찍어 도시로 나가 여러 단체나 기업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외진 곳이고 최하층 계급이라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하기를 1년 반. 마침내 먼 나라의 낯선 후원자를 만난 거였다. 설움에 북받쳐 그간의 과정을 설명해주던 마을 아저씨의 격정적인 말투와 몸짓만 보아도 1년 반의 고생이 짐작 가고도 남았다. 이런 경우가 이례적이었던지, 학교 준공식엔 네팔의 4개 매체가 취재를 하러 와서 부모님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학교 준공식은 아예 마을 잔치였다. 주민들이 환영의 뜻으로 앞다퉈 이마에 붉은 염료인 티카를 발라주는 바람에, 부모님 얼굴은 붉은 티카 범벅이 되었다. 축하 인사를 하던 아버지는 아래 대목을 읽던 도중 목이 메었던지 자주 말씀을 멈추셨다.

 

"지금 이렇게 학교 신축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우리가 왔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아들의 심부름을 대신 한 것입니다. 이 학교의 신축 기금을 후원한 김인배는 우리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아들 김인배는 4 5개월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중략>...우리 아들 김인배도 이렇게 자신이 남긴 유산으로 네팔의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을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축사를 영어->네팔어로 통역해주던 세이브더칠드런 지역사무소장은 위의 대목을 통역하던 도중 끝내 울어버렸다. 나중에 자리로 돌아와 내게 "통역이 차분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말할 때에도 그의 얼굴은 눈물범벅인 채였다.

 

위의 사진은 아이들의 축하 공연 (왼쪽), 준공식에 모인 사람들과 기념 촬영 

 

동생이 지은 학교를 직접 본 것이상으로 뿌듯한 사실은 이 학교가 교육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된 거였다. 지역 교육청이 다음달에 1개 교실을 더 짓고 내년에 1개를 더 지어 5학년 (네팔의 초등학교는 5학년제다) 까지 학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교사들 급여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지역의 학교였는데, 동생의 후원이 학교가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셈이다.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학교라서 운영위원회에 주민들의 참여도도 높았다. 새 건물을 지을 때에도 주민들은 학교 건축위원회와 구매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주민들 스스로 '우리 학교'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그게 보기 좋았다.

 

이 학교의 이름인 스리딜람은 정부 군과 마오이스트의 내전 와중에 희생된 아이인 딜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딜람과 김인배. 지금은 세상에 없는 소년과 청년. 그 둘의 마음이 만나 127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지어졌다. 세상의 일들은 이렇게 연결되기도 한다. 여행 기간 내내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던 어머니는 학교와 아이들을 보고 계속 "참 감사하다"고 하셨다. 이런 인연에, 나도 깊이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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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인배야.

어제 겨울 산에 혼자 올랐다.

쨍하게 시린 공기가 내 안으로 스며들어와 몸속을 맴도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더구나. 막혀있던 것이 툭 트이는 기분. 산에 오길 잘했구나, 생각했어. 인적이 끊긴 등산로에 낙엽이 쌓여 드러눕고 싶을 만큼 푹신하더라. 이파리를 벗어버린 길고 가느다란 나무들이 정직해보였다.

중턱에 올라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봤어. 가만히 널 불러보았다. 인배야, 잘 지내니? 그곳은 춥지 않니? 우린 모두 잘 지내려 애를 써. 그러니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고 부디 편히 쉬렴….


네가 간지도 벌써 석 달째에 접어드는구나. 전화를 받고 미친 듯이 달려가던 그 가을날, 괘종시계의 추가 멈추듯 내겐 모든 게 정지되어 버렸다. 그날 이후 벌어진 일들이 아득하고 나쁜 꿈처럼 느껴져…. 그런데도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서 그동안 계절이 바뀌고, 이제 해가 바뀌려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네게 작별인사를 꼭 해야 하겠다는 조바심에 편지를 써.
작별인사, 라고 말하고 나니 속에서 저항감이 치밀어 올라온다. 어떻게 널 보낸단 말인지….

어떻게 널 잊겠니. 누나가 작별하고 싶은 건, 널 잃은 슬픔을 너를 앞세운 내 운명에 대한 한탄으로 은근슬쩍 바꿔치기 하려드는 나 자신의 청승에 대해서다. 시간이 빨리 흘러 어서 늙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문득 흐르지 않는 건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아차렸어.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너도 원하는 바가 아니겠지. 이젠 내가 흘러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일상의 윤곽을 다시 그리려고 애를 쓰는 요즘도, 무심히 걷다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아,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발작처럼 가슴이 조여 온다. ‘심장이 오그라들 것 같다’는 말이, 물리적으로 이해가 되더구나….

꿈 많고 건강하던 너의 목숨이 왜 30여 년 만에 끝나야 했냐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대답 없는 질문을 붙들고 못난 누나는 오래 몸부림쳤다. 부모님의 참혹한 고통을 지켜볼 때마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하늘에 대고 종주먹질을 해댔어. 왜, 도대체 왜 이래야 했냐고.

지금도 그 질문이 날선 비통과 함께 불쑥 찾아오면, 대답할 말이 없어 가슴을 움켜쥐고 쩔쩔맨다. …다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고 되뇔 뿐이다. 성경 속의 욥이 말했듯 ‘내 머리로 헤아릴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더 이상 지껄이지 말자고, 탄식은 할지언정 자기연민에 빠져 징징거리지는 않았던 욥처럼, 이제 받아들이자고….


인배야.

내 안의 일부가 너와 함께 죽어버렸지만, 동시에 너의 어느 한 부분은 내 안에 살아있다는 걸 느껴.

며칠 전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도 그랬다. 함께 모여 밥을 먹을 때, 좋은 걸 볼 때, 먼 길을 갈 때, 넌 우리 옆에 앉아있거나 같이 감탄했고 같이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 널 실제로 만질 수 없어 서러웠지만 그렇게라도 느껴지는 네 존재감이, 좋았어.

못견디게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누나는 눈을 감고 상상한단다.

네 각막을 이식받은 사람이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웃는 모습, 네 심장판막을 이식받은 아이가 더 이상 가쁜 숨을 몰아쉬지 않고 편안하게 들이마실 겨울 공기. 단단하던 너의 뼈는 어떤 이의 몸 안에서 함께 나처럼 겨울 산을 오를지도 모르겠다.

조직기증을 할 땐 네가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도록 해주자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널 그리워하는 가족에게 더 좋은 일이었지 싶다. 네가 숱한 생명 속에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네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는 것만 같아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구나.


인배야.

하와이 원주민들은 인생을 파도라고 생각한다더라. 파도가 자신이 바다의 일부분이라는 걸 모른다면 바위에 부딪혀 깨질까봐 두렵고, 앞서 바위에 부딪혀 사라진 다른 파도의 죽음을 슬퍼할 테지. 하지만 바다의 일부분임을 깨닫는다면 슬퍼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얼마 전 무심히 사진 파일을 훑어보다 지난해 아버지 칠순 기념 가족여행길에 찍은 네 스냅사진을 봤어.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우비도 훌러덩 벗어던지고 웃음을 터뜨리던 네 얼굴. 폭포 앞을 유영하던 새들과 함께 네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은 착시에 눈앞이 흐려진다.

인배야.

그렇게 크게 웃으며 훨훨 날아가렴. 부딪혀 깨져도 사라지지 않는 폭포의 물줄기가 되렴. 이 지상에서 오로지 너만이 선물할 수 있었던 기억을 안고 누나도 바다에서 함께 흐르마.
네가 살아있을 때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인사를 뒤늦게 전한다. 나의 동생, 김인배.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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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