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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22 지리산 일출
  2. 2015.02.03 제주올레_5_6 코스 (2)
  3. 2013.10.15 제주올레_8_9_10코스 (2)
  4. 2013.07.29 알함브라, 이스파한, 타지마할 (4)
  5. 2013.06.24 제주올레_14-1 코스 (4)
  6. 2013.04.12 4월의 눈 (6)
  7. 2013.02.26 제주올레_3코스_14코스 (7)
  8. 2013.02.18 제주올레_12코스 (6)
  9. 2012.12.30 겨울 한라산 (6)
  10. 2012.09.08 숲길 소리

지리산 일출

세상구경 2016.12.22 23:59

12월 15, 16일 지리산 종주.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선명하게 보았다. 자꾸 보면 좋은 기운이 생기지 않을까 하여 블로그에 걸어놓는다.

15일 백무동행 심야버스를 타고 출발. 16일 새벽 4시40분쯤 산행 시작. 장터목 -> 천왕봉 -> 장터목 -> 세석 (1박) -> 촛대봉 일출 -> 세석 -> 벽소령 -> 음정의 코스.

일출 사진보다 나는 이게 더 좋다. 수채화로 그린 듯한 이 자연의 색감이란! 날씨가 추운 걸 제외하면 워낙 쨍하니 맑아서 시야가 더 넓어져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지리산 종주는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도 그렇고 이번에도, 나는 직장을 그만둔 뒤에 지리산에 가는구나. 우연치고는 참…7년 전에 그랬듯 이번에도 지리산의 영기가 앞으로의 나를 이끌어주겠지.

첫 번째 종주 후 블로그에 끼적인 메모를 보니 그 후 7년간 나는 당시 계획했던 대로 살지 않았다. 불과 6,7년도 예측할 수 없는데 계획따위 다 무슨 소용이람. 방향만 잊어버리지 말고 지금 당장 가장 최선인 것에 몰두하면 된다. 친구 L모씨 말마따나 인생 전체로는 되는대로. 

 

지리산에 함께 간 친구들의 배려를 잊지 말 것. 한 친구는 지리산 종주를 스무 번 가까이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스틱도 없이 심지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 험한 길을 휙휙 다닐 정도로 '산신령'급들인데, 늘 한 사람은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내 상태를 살피고, 내가 힘이 들어 멈춰서면 같이 서서 기다려주고, 어려운 길을 만나면 건너는 방법을 알려줬다. 식사 시간 전 구간을 걸을 때면 다른 두 명은 먼저 내려가서 식사 준비를 시작, 늦게 오는 사람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해줬다. 내 음식을 자기 배낭으로 가져가 짊어져 준 친구는 마지막 내리막길 임도에서 발톱이 아파 고생하던 나와 보조를 맞춰 걸어주기도 했다. 천천히 걷느라 따분했을 텐데... 착한 친구들. 같이 산에 다니며 늙어갈 착한 친구들이 있다니,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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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6코스 제지기 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하루 전만 해도 날이 흐려 눈 덮인 위쪽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날은 운이 좋았다.

제주도에 꽤 자주 가는 편인데 한동안 사진으로도, 글로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제주 올레도 전체를 다 걸어보고 싶단 생각은 있지만 완주의 기록을 굳이 '달성'해보려는 목적 없이 여러 코스를 반복해 걷기도 하고 일부 구간만 걷기도 하다 보니, 어디를 몇 번 갔는지 가보지 않은 곳은 어디인지 그런 것들이 가물가물 잘 생각나지 않는다. 2년 전만 해도 코스를 좔좔 외우고 다녔는데......

 

그러고 보니 원고청탁을 받거나 일 때문에 꼭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글을 쓰지 않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 페이스북에 가끔 끼적이긴 하지만 글이라 하기도 뭐한 장난기 어린 낙서들. 그곳의 낙서나 블로그의 낙서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약속한 기한을 훌쩍 넘긴 책 계약 건도 떠올릴 때마다 빚진 사람 심정이고, 글을 계속 안 쓰면 급기야는 못 쓰게 될 거란 조바심 때문에 뭐가 됐든 목적 없는 글이라도 써보려 한 적이 종종 있었지만, 늘 몇 시간을 넘기질 못했다. 그럴 때마다 점점 자주 느끼는 위기감, 이렇게 세계가 나에게 비좁아져 갈 것이란 위기감으로 맘이 서늘해진다.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 없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익숙한 대상에만 함몰되는 일상. 별 생각 없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 딱 이런 것이겠다 싶다.

 

 

5코스로 넘어가 거꾸로 걷다가 앉아 쉰 큰엉의 해변. 어제 오후 이 바다를 보면서 곧 서울에 돌아가야 한다는 게 어찌나 싫던지......

 

나는 중요한 국면에 종종 문을 열고 나가는 방식을 선택해왔지만, 세계의 축소에 저항하는 방식이 꼭 박차고 나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연초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조르주 모란디 전을 다녀왔는데 도록에 적혔는지 다큐멘터리에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에 남은 모란디의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것."

평생 방 안에서 정물을 그렸다던 은둔의 화가가 같은 물병과 잔을 이리저리 다르게 배열하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그 때에 가장 마땅한 사물의 존재감을 찾아내어 그린 그림들. 언뜻 보면 다 비슷비슷한 그림들의 미세한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모란디의 일상은 고독했겠지만 작은 사물을 통해 그가 구축한, 결코 작지 않은 세계는 윤기 나는 고독으로 충만했을 거란 느낌이다.

 

원고료를 받는 글만 보관용으로 올려놓던 블로그에 오래간만에 쓰는 글이 매우 불성실한 포스팅이지만, 하여튼. 중요한 건 성실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고 싶다, 올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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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코스_송악산에서 본 형제섬

 

가을 제주. 좋았다. 말그대로 힐링 여행.

일부러 정해둔 것은 아닌데, 지난해 말부터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제주 올레를 걷는다. 뭔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절박한 느낌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 충동적으로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는데, 그게 묘하게도 서너 달에 한 번씩이다. 얼추 그 간격으로 항아리에 물이 차듯 스트레스가 넘실넘실 차오르는 걸까.

 

이번에도 그랬다. 야근을 하던 중, 6월에 제주를 같이 갔던 후배가 가을 제주를 보러 가겠다는 트윗을 띄운 걸 보고 곧장 연락해 후다닥 날을 잡고 일사천리로 표를 끊었다. 이번엔 아예 월요일 휴가를 내고 기간을 길게 잡았다. 덕분에 올레 9, 10코스를 걷고 8코스도 역방향으로 걷다.

 

9코스_솔밭길

 

9코스를 걷기 시작한 날 아침,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지 좁은 오솔길에 거미들이 빼곡히 거미줄 집을 지어놓았다. 난데없는 큰 동물들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화들짝 거미들도 도망치고, 새들도 푸드득 요란하게 달아난다. 숲에 작은 파란을 일으키며 도착한 고즈넉한 솔밭. 들끓던 마음이 비로소 가라앉다.

 

8코스_대평포구

 

대평리 바닷가에 선 해녀상. 투명한 몸 안으로 바다가 흐르고 파도가 밀려온다.

 

표면으로는 별 일 없어 보이나 마음이 들끓는 나날.

3년 전 지금의 일을 시작한 이래 요즘 가장 회의가 깊다. 운동장에서 고개를 처박고 바닥에 금을 긋고 있는데 이 금이 애초에 가고자 했던 나무 쪽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불안하고, 고개를 들어도 목적지인 나무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느낌. 금은 점점 삐뚤삐뚤.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자기의심은 커져가고, 날 따라오던 사람들 사이에선 원망이 쌓여간다.

 

8코스_어딘지는 까먹었음.

 

덧붙여 허영이라고 스스로 매도하고 밟아 없애려 해도 계속 고개를 들이미는 어떤 열망에 대한 확인. 사람이 왜 이리 미련한가, 싶다가도 어쩌겠나, 그게 나인 것을. 나 아닌 것을 구하지 않을 만큼은 이제 스스로를 받아들인다어정쩡한 흉내쟁이로 살기엔 남은 인생이 짧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 혼가 고민하지 말고 연대를 구하되 엉뚱한 관계에서 연목구어하지 말고, 애매한 상태도 견뎌보기. 돌이켜보면 애매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내 조급증이 최근의 화를 부채질했다. 답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을 제대로 잘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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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초에 다녀온 이란 여행 사진과 메모를 여태 정리 못했다.

이슬람 전문가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님을 따라 다녀온 여행.

이교수님의 열정적 강의를 메모한 수첩을 다 써서 중요한 내용을 컴퓨터에 옮겨 적으려고 수첩을 펼치니......차 안에서 흔들리면서 쓴 내 글씨를 내가 알아보지도 못하겠고, 무엇보다 옮겨 적기에 내용이 너무 많다. ㅠ.ㅠ 정말 엄청난 강의를 하셨단 걸 실감.

 

내용 정리를 거의 포기하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있다가 눈에 띈 대목.

아름다운 도시 이스파한의 모스크에서 이 교수님이 이슬람 문화의 전파 경로를 들려주면서, "페르시아 문화가 토착 문화를 주워담으면서 서쪽에 가서 꽃을 피운 것이 알함브라, 동쪽에 가서 꽃을 피운 것이 타지마할"이라고 설명하셨다.

운 좋게도 나는 세 곳을 다 가봤다.

위의 사진 왼쪽이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내부, 가운데가 이란 이스파한의 모스크, 그리고 오른쪽이 인도 타지마할 궁전의 외벽이다. 

알함브라와 타지마할 모두 오리지널인 페르시아의 정교함엔 못미치는 듯.

괜히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알함브라의 장식과 색채엔 8세기를 살아온 반도에서 쫓겨나는 무어인들의 슬픔이 배어 있고, 페르시아의 장식엔 융성한 국가의 위풍이 있다.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타지마할은 뭐랄까, 무덤답게 창백하다.

......근데 형편없이 촬영한 사진들이라 직접 목격했을 때의 경이로움이 전달되기는커녕 옹색해보인다. 이러지 않았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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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쪽 저지곶자왈을 지나는 14-1 코스는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난이도가 ''으로 분류돼 있고 아마 가장 많은 주의사항이 적힌 코스가 아닌가 싶다.

길을 잃을 위험이 있으며 식당 상점이 전혀 없고, 통신장애도 발생할 수 있으며, 여자 혼자는 위험하다... 출입이 제한된 문을 더 열어보고 싶은 것처럼 올레코스를 고를 때마다 이 코스를 자주 기웃거렸더랬다. 여긴 언제 가보나...

그러던 중 우연히 제주올레 행사 안내 메일에서 22일 14-1 코스 함께 걷기 행사를 발견하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비행기 표를 샀다. 엄마 칠순 기념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지 2주밖에 안되었는데, 그땐 렌트카 여행이라 올레를 걷지 못했으니까 빼먹은 걸 하러 가야지 하는,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은 이유로 여행을 결정.

표를 사고 나니 주말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 꼭 만나야 할 친구의 얼굴, 얼른 만들어야 할 강의자료 등이 뒤늦게 줄줄이 눈앞에 어른거렸으나... 일단 가자, 했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14-1 코스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양 왜 그렇게 마음이 절박했던지.

 

 

위험한 길이라니 함께 걷기 행사를 따라가려고 온 건데,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먼저 출발. 사람들이 뒤에 따라올테니 안심이라고 생각하며 먼저 출발했는데, 도착지에선 우리가 꼴찌였다. 올레꾼들이 '놀멍쉬멍 걸으멍'하는 대신 거의 달리는 수준의 걷기 달인들이란 걸 실감. -.-;;;

위의 사진은 시야가 탁 트이는 문도지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곶자왈이다. 멀리 보이는 저지오름과 또 다른 오름. 제주를 자주 다니다 보니 이 섬의 느낌을 특징 짓는 가장 중요한 풍경은 바다보다 오름이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사진작가 김영갑 씨가 왜 그렇게 오름에 몰두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순하게 엎드린 생명체의 잔등과도 같은 오름들이 없었다면 '평화의 섬'이라는 헌사도 어색하고 서걱거렸을 거 같다.

 

곶자왈 올레를 걸으러 간다고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그렸던 풍경은 지난해 친구들과 함께 갔던 거문오름의 곶자왈 숲이었다. 그 때 울창한 숲 속에서 온 몸이 서늘해지는 기운이 잊히지 않아서, 이번에도 컴컴하고 자궁처럼 깊숙하며 '원령공주'의 등장인물들이 막 튀어나올 것 같은 숲을 상상했다. 몸이 달아 절박하게 달려왔던 것도 생명의 근원지 같은 곳에서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깊은 기운에 휘감겨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달까.

 

 

하지만 누구나 걷도록 길을 낸 올레코스가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 거문오름의 곶자왈 숲과 같을 수는 없겠지... 아쉽게도 내가 그리던 깊고 서늘한 기운은 없었다. 수풀과 돌들이 뒤섞여 어지러운 숲 속에서 적당히 터프한 6시간 짜리 트레킹을 마친 느낌. 약간 아쉬웠지만 동행한 후배와 시시덕거리는 농담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까지 종횡무진 오가며 나눈 대화가 즐거웠고 최근 드물게 코스를 완주한 작은 성취감도 좋았다. 가기 전에 괜히 절박했던 마음도, 길을 걷고 돌아오니 평온하다.

언제부턴가 정기적으로 도시를 떠나 오래 걷거나 산에 오르며 적당히 도전적인 환경을 몸의 긴장과 이완으로 겪는 경험을 해야 일상을 꾸려갈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하다. 밖에 나가 방전을 해야 충전이 된다니 좀 희한한 방식이긴 하지만, 나 자신이 그렇다는 게 괜히 안심이 된다. 생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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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세상구경 2013.04.12 00:38

 

4, 산수유와 진달래 위에 내린 눈.

지난 주말 친구들과 영주 여행을 다녀왔다. 소수서원-부석사-소백산의 희방사를 둘러보고 단양에 들러 돌아온 길.

소백산 희방사 가는 길에 저렇게 예쁘게 눈꽃이 피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서 죽령옛길 걷기도 포기했지만, 산수유와 눈꽃이 한 공간에 있는 비현실적 풍경이 추위도 잊게 하는지... 희방사까지 걷기 시작.

 

 

꽃이 피는 계절에 갑자기 눈 덮인 산 속을 걸으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에 시간 이동을 한 듯한 느낌. 

 

여행 출발할 때부터 '강풍과 폭우' 예보가 있었는데, 이 날씨에 괜찮을까, 내가 걱정하자 친구들은 호기롭게 말했다. "날씨 궂어 사람들이 덜 오면 한갓지고 더 좋지 무슨 걱정이야!"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일행 다섯 명 중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좀 희한한 집단날씨가 궂거나 말거나 대범한 내 친구들은 아무 걱정을 안 한다....^^

첫째날 소수서원과 부석사에 갔을 땐 눈 대신 비가 내렸는데 친구들 말대로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한옥 담장, 장독대 위로 내리는 비가 제법 운치 있다.

 

 

부석사,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글이 최순우 전 박물관장이 쓴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다.

비가 오는 날 인적이 끊긴 부석사. 해쓱한 얼굴로 반기는 무량수전. 호젓하고 신산스러운 아름다움.

우리가 갔던 날도 마침 딱 그런 날이었다. 해쓱한 부석사 중에서도 지붕 추녀의 고운 선이 이번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에서 내려다 본 소백산 줄기. 늦게 올라간 김에 6~6시반 사이에 한다는 사시예불 소리공양을 들으려고 비오는 날의 한기에 벌벌 떨면서도 기다렸다. 모두 떠나고 우리 일행만 남은 부석사. 기다린 보람이 있어 법고로 시작해 목어, 운판, 범종으로 이어지는 소리공양을 듣다. 법고가 이렇게 난타처럼 빠른 리듬으로 치는 것인 줄 미처 몰랐다. 법고 소리만 채집해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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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부석사

제주 신천리 바닷가 신천목장 (올레 3코스)

 

제주 표선 해수욕장 (올레 3코스)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해수욕장 (올레 14코스)

 

제주 바다의 서로 다른 색채. 동쪽 올레 3코스의 신천리 바닷가와 서쪽 올레 14코스의 협재 해수욕장. 1.5일의 짧은 일정에 제주도 한복판에 자를 대고 가로로 금을 그으면 맞닿을 만큼 동서로 떨어진 곳을 다녀온 이유는.......미련하기 때문이다.

14코스 쪽에 숙소를 잡고도, 1주일 전 한겨레신문에 나온 신천리 바닷가 풍경 (바로 이 기사)에 홀딱 빠져 동쪽 올레 3코스를 걸어야지 했다.

문제는 그러면 숙소를 취소하고 동쪽으로 잡아야 하는데, 선불로 숙박료를 모두 납부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단 점.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일로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을 못했다. 게다가 신천리 바닷가에 가자고 길을 나선 순간에야 제주도 정반대쪽이란 걸 알아차리고도 계획을 변경하기는커녕, 우리 둘 다 "그런다고 일정을 바꾸냐. 교통비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자"고 희희낙락하는 무대책형 인간들인 탓에 짧은 일정에 동서를 가로지른 여행이 되었음. 이동시간이 길었지만 시시콜콜 별별 수다의 시간이 되었으니 그 또한 좋은 일. 사실 나나 친구나, 일이 턱에까지 차서 헉헉대다 나선 여행이라 뭐든 아무래도 좋았다. 바다, 오름, 현무암 사이에 핀 수선화, 동물이 우다다다 몰려가듯 바람에 흐르는 억새풀들, 맛있는 음식, 하릴 없이 걷는 것, 그 자체만으로 충분했다.

 

완주할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으므로 3코스 출발점에서 통오름까지만 걷고, 그 뒤엔 택시를 타고 이동한 뒤 신천목장 바닷가에서 표선까지 걸어감. 다음날 14코스도 마찬가지. 숙소에서 금능해변까지 짧은 구간만 맛뵈기로 걸었다.

금능해변 근처 동네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제대로 된 커피를 파는 예쁜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 '릴리스토리'까지 덤으로 발견.

내가 묵은 숙소는 협재의 플래닛게스트하우스였는데, 바다 바로 앞이라 이번처럼 바람이 꽤 불고 쌀쌀한 때보다 햇볕 쨍쨍 한여름에 더 어울린다.

 

14코스를 슬렁슬렁 걷던 날일요일 아침답게 사람들은 기지개를 켜지 않았고 개들만 골목에 나와 있는 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한 집에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이모들!"하고 소리쳐 부르며 뛰쳐나왔다. 바다를 보러 가냐고 묻더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따라오라 손짓하며 앞장서 걷는다. 아이는 쉴새 없이 저 하얀 개가 닭을 물어갔다는 둥, 저 개는 새끼를 얼마 전에 낳았다는 둥, 저 빈집엔 사람은 살지 않고 양파만 있다는 둥, 50만원에서 5만원을 갚으면 얼마가 남냐고 묻더니 그럼 남은 돈에서 할아버지가 1400원으로 소주를 두 병 살 거라는 둥 계속 종알댄다.

손에 쥔 사탕을 우리에게 나눠준 뒤 자기만의 공사장이라며 집 옆 모래밭으로 우리를 데려간 아이는 장사 놀이하자면서 김밥과 라면을 파는 분식집 흉내를 냈다. 김밥 마는 시늉, 아이가 손에 쥐어준 모래를 먹는 시늉을 하다가 어쩌다 엄마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가 "엄마 없어요" 한다. "아침 일찍 어디 가셨나 보구나?" 했더니 "원래 없어요. 육지에 갔대요"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질문을 한 게 뜨끔했다. 실컷 잘 논 뒤 사탕을 준 데 대한 답례로 초콜렛을 주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마구 손을 흔들며 집 안으로 사라진 아이는 우리가 길모퉁이를 돌 즈음 뒤에서 "이모들, 잘 가요"하고 소리친다...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짠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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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 얼른 자야 할 시간에, 안 잘 거면 밀린 일을 하는 게 나을 시간에, 이런 사진이나 올리고 있다니... 뭔 짓이람. .

턱 밑까지 들어찬 일들을 어서 해치우고 저곳으로 떠나고 싶다

주말 제주 비행기표를 예약해놓았다

인천 앞바다에 배만 들어오면, 하는 심정으로 이번 주만 지나면! 을 되뇐다. (그럴 시간에 일할 생각은 안하고...) 상상만 해도 질릴 분량의 일들이 눈 앞에 놓여 있지만...... 

어쨌든 이번 주만 지나면!

 

지난해 말 한라산에 가기 전날 걸었던 제주올레 12코스

생이기정 바당길에서 차귀도를 내려다보며 함께 간 친구가 만들어준 위스키 커피를 마셨다. 그 맛이란

이번 주말엔 내가 다른 친구를 위해 그걸 준비해서 가야지

 


올해는 되는대로 제주올레를 다 걸어볼까 한다

처음엔 패스포트를 사서 출발과 도착 확인 도장도 찍어가면서 걸어야지 했는데, 그렇게 시작하면 기필코 완수해야 할 ""로 만들어버리는 내 성격을 잘 아는지라 그 계획은 일부러 접었다

슬렁슬렁, 놀멍쉬멍, 하다 싫증나면 말고, 그렇게 되는대로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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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끝자락에 오른 겨울 한라산.

원래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려던 계획은 무산됐고, 히말라야 몫으로 아껴둔 휴가를 한라산행에 썼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오르지는 않았고 윗세오름까지. 영실-> 윗세오름 -> 어리목의 코스

국립공원 홈페이지와 여러 사이트들 검색해보니 4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는 코스인데 나는 6시간이 걸렸다. 두리번 거리며 구경하고 느릿느릿 걸었는데 몸에 무리가 없고 적당하다.

한라산의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해서 영실에서 올라갈 때만 해도 자욱한 구름 때문에 백록담이 있는 봉우리도 못볼 줄 알았다. 그런데 구상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두둥~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

 


운무가 몰려오고 휘몰아 사라지는 변화의 속도가 장난 아니다. 영실에서 올라갈 땐 구름(운무인지, 가스인지, 눈보라인지…)이 몰려들어 500장군봉이고 뭐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앞의 길만 희미하게 보일 뿐인 구름바다. 바람 속에 잠깐 앉아 쳐다보는 동안,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 사이 봉우리 하나가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도 거세 고개를 숙이고 오르던 길에선 뜬금없이 계속 황지우의 시 눈보라마지막 구절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다시 처음부터큰 잘못은 없지만 자잘한 실수가 많은 한 해였다. 그리고 연말 대통령선거의 결과. 정치가 내 일상적 감정에 그토록 큰 영향을 끼칠 줄 몰랐는데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까.


 

한라산 윗세오름 부근의 구상나무 숲엔 눈이 쌓이질 않아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은 볼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멀리서 본, 몇 그루의 눈 덮인 구상나무. 백석은 갈매나무를 노래했지만 그 이미지엔 갈매나무보다 구상나무가 더 잘 맞는 듯

산에서 내려와 비가 내리던 제주의 밤. 초가집의 아랫목에 앉아 창호문 밖의 파도소리,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 그리고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다시 읽다. 4년 전에 끼적인 낙서까지.

매번 실망하면서도 같은 시도를 반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내 미련한 심성이 지겨워진 요즈음. 그래도 기운을 차려 다시 처음부터 걸어보겠다는, 애매한 기대가 스물스물 생겨나는 걸 보면.....맞다. 완전히 절망하기란, 희망을 품는 것보다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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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3일간 친구들과 제주 여행.

강정마을을 함께 다녀오고, 올레길 20코스를 함께 걷고, 용눈이오름, 섭지코지, 두모악 갤러리, 거문오름, 곶자왈 숲길, 사려니숲길을 돌아다니고, 함께 사우나를 하고, 흑돼지구이의 맛에 감탄했던 여행.

열아홉 살 때 만나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이다. 트렌드에 발맞춰 살아가는 데에는 영 관심 없는 아이들이라, 그 흔한 트위터, 페이스북 하는 애들도 없다. 얘네들과 함께 있으면 트위터도 블로그도 하고, 한참 전 탈퇴해버렸지만 페이스북도 했었고, 이메일도 자주 체크하는 내가 엄청나게 디지털 문화에 빠삭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기분.

끼리끼리 논다고, 죄다 나처럼 무뚝뚝하고, 살가운 감정 표현 같은 거 없고, 심지어 이메일이나 문자에 답신도 거의 안해서 가끔 울화통이 터지지만, 서로 뭐가 필요한지 빨리 알아차리고 필요한 일들 알아서 척척 분담하는 바람에 같이 지내는 동안 거슬릴 게 없었다. 한 공간에 어울려 며칠을 함께 지내도 불편하지 않고, 좀 떨어져 혼자 있겠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들. 젊은 시절 서로의 모습을 다 기억하면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들이 있어서 좋다....그러고보니 이 썰렁한 아이들과 함께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도 못했구나...;;;

 

아래는 혼자 사려니 숲길을 걸을 때 마음에 들었던 숲길 소리. 내 발걸음이 아무렇게나 타박타박 형이라 녹음해놓고 보니 맛이 잘 살지 않아 아쉽다.

 

 

 

아래는 올레 20코스를 걷다 마주친 월정리 해변. 청녹색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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