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멋졌다'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6.11.13 R.I.P 레너드 코헨 (2)
  2. 2016.11.13 2016년 11월 12일 그날
  3. 2016.11.10 2016년 11월 잊지 못할 기록
  4. 2012.08.26 위로의 아들
  5. 2012.04.29 네팔에 지은 학교 (26)
  6. 2011.09.19 어머니의 사진들 (13)
  7. 2011.08.22 아버지의 꽃 컵과 채송화 (12)
  8. 2011.07.09 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 . 김진숙 (4)
  9. 2011.06.05 정유정 작가를 만나다 (10)
  10. 2010.08.15 음악의 안부 (9)
정신없는 와중이지만 기록해두고 싶다. 10일 레너드 코헨이 세상을 떴다. 향년 82세.

 

14년 전, 코헨의 노래를 거의 매일 듣던 시기가 있었다.
이혼 직전 무렵. 회복해보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던 관계의 위기를 피해 밤봇짐 싸 달아나는 사람 마냥 우연한 미국 연수 기회를 덜커덕 붙잡아 LA에 갔더랬다. 얼떨결에 1년짜리 MBA 과정을 다니게 되었는데 수업이 그렇게 빡빡한 줄 모르고 갔다가 거의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 했던 시간.

 

그래도 어쨌거나 LA 아닌가. 10분이면 해변에 갈 수 있고 사시사철 화사한 곳. 그럭저럭 즐겁게 지냈지만...우울한 날들이 더 많았다. (당시엔 그 뒤에 더 많은 나쁜 일들이 생길 줄 몰랐던 때라) 인생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고, 비뚤어진 심사에 심지어 LA의 화창한 날씨도 곧잘 거슬렸다.내 인생은 이리 망가져가는데 세상은 나랑 상관없이 저 화창함과 함께 매일 웃고 있는 듯한 기분. 그 뒤로 나는 힘들어 하는 사람을 만날 때 (나도 같이 힘들기 때문에 ‘힘 내자’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힘 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있는 힘을 다 짜내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힘 내’라는 말은 얼마나 무성의한가. 나야 기분이 어떻든 말든 저 혼자 웃고 있던 LA의 태양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지만) 세상 모든 반듯하고 따뜻하고 살가운 것들에게서 외면당한 듯한 기분에 휩싸여 있던 내게 당시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게 코헨의 노래였다. 친구가 연수가던 나에게 선물해준 코헨의 CD를 듣고 또 듣다가 울며 잠든 날이 부지기수... 낮게 읊조리는 그의 음울한 노래들이 마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같이 버텨주고 같이 울어주는 친구 같았달까.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그 감정들은 어찌 해결되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해결’이 안되어 그냥 끊고, 묻고, 잊기로 체념했던 듯도 하다. 기억나는 것은 그 시절에 가장 많이 들었던 ‘bird on the wire’에서 코헨이 노래하듯, 나도 내 식대로 애썼다는 것 뿐. 자유로워지려고 (I have tried in my way to be free).

 

R.I.P 레너드 코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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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참가한 광화문 촛불집회를 공중에서 바라본 영상. 저 안에 있었지만 저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
87년 6월항쟁 때도 이만큼은 아니었다.이 마음들이 어떻게 수렴될지, 자랑스럽고 뿌듯한 한 편으로 조바심을 내며,
이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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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같이 준비하고 선언문을 작성했던 과정 자체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기록삼아 여기 남겨놓는다. 



보도한 기사들:

민중의 소리

머니투데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노컷뉴스

중앙일보

그리고 기사는 아니지만, 우리 선언문을 계기로 쓴 '산하의 오역' 글

마지막으로 내가 심심풀이땅콩삼아 카톡방에 올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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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 . 김진숙  (4) 201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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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사진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글.

두어 달 전 성당에 갔다가 매일미사 책에서 보고 사진을 찍어두었던 걸, 잊고 있었다.

그리운 바르나바를 위하여....

 

6 11.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바르나바 성인은 키프로스의 레위 지파 출신으로, '바르나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성인의 본 이름은 요셉이며 (사도 4.36 참조) 마르코 성인의 사촌이다 (콜로 4.10 참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칭송받는 바르나바 사도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뒤 자신의 재산을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60년 무렵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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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 . 김진숙  (4) 201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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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둘째 주, 네팔에 다녀왔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다시 차를 타고 1시간을 가는 시골인 반케 지역 나우바스타 마을에 새로 지은 초등학교를 보러 나선 길. 내가 일하는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소개로 이 학교를 지은 한국의 후원자를 모시고 다녀왔다.

 

내게는 특별했던 출장이다. 모시고 간 한국의 후원자가 내 부모님이셨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5년 전 세상을 뜬 내 남동생이 후원자이다. 아들이 남긴 유산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이 돈을 의미 있게 쓸 곳을 찾고 싶어 하셨고, 내가 일하는 단체를 통해 연이 닿아 네팔에 초등학교를 지었다

 

처음 소개를 받을 때부터 이 학교는 여러 모로 마음이 쓰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 군과 마오이스트 사이에 10년 가량 이어진 내전을 피해 도망쳐 온 이주민들이다. 카스트 제도의 맨밑바닥 불가촉 천민인 달리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인데다 이주민인 탓에, 처음엔 아이들의 출생등록증도 받지 못해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네 명 중 한 명 꼴로 문맹인 마을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했다. 주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짚과 흙으로 허름한 학교를 짓고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흙집은 비가 오면 지붕이 새고, 화장실도, 식수 시설도 없었다. 그나마 2학년까지밖에 없어 3학년이 되면 3km나 떨어진 옆 마을 학교로 걸어 다녀야 했다.

이런 학교에 부모님은 1~3학년 교실 3개와 교무실 1, 화장실과 물탱크, 식수시설, 시소와 미끄럼틀을 갖춘 놀이터를 짓고 교육 자재를 선물했다. 아래 사진 왼쪽이 이전의 흙집 학교, 오른쪽이 부모님의 후원으로 새로 지은 학교 건물이다.

 

 

아래는 새로 지은 학교의 교실과 놀이터 풍경.

 

학교 완공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기뻐하셨지만, 직접 보러 가실 계획까진 없었다. 아버지는 생색내기 방문은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셨고,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셨다. 그런데 사양하고 말기엔, 후원자를 만나고 싶다는 주민들의 요청이 내가 약간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간곡했다.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너져 가는 흙집 학교로는 더 이상 안되겠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새 학교를 지어줄 후원자를 찾으려고 흙집 사진을 찍어 도시로 나가 여러 단체나 기업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외진 곳이고 최하층 계급이라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하기를 1년 반. 마침내 먼 나라의 낯선 후원자를 만난 거였다. 설움에 북받쳐 그간의 과정을 설명해주던 마을 아저씨의 격정적인 말투와 몸짓만 보아도 1년 반의 고생이 짐작 가고도 남았다. 이런 경우가 이례적이었던지, 학교 준공식엔 네팔의 4개 매체가 취재를 하러 와서 부모님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학교 준공식은 아예 마을 잔치였다. 주민들이 환영의 뜻으로 앞다퉈 이마에 붉은 염료인 티카를 발라주는 바람에, 부모님 얼굴은 붉은 티카 범벅이 되었다. 축하 인사를 하던 아버지는 아래 대목을 읽던 도중 목이 메었던지 자주 말씀을 멈추셨다.

 

"지금 이렇게 학교 신축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우리가 왔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아들의 심부름을 대신 한 것입니다. 이 학교의 신축 기금을 후원한 김인배는 우리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아들 김인배는 4 5개월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중략>...우리 아들 김인배도 이렇게 자신이 남긴 유산으로 네팔의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을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축사를 영어->네팔어로 통역해주던 세이브더칠드런 지역사무소장은 위의 대목을 통역하던 도중 끝내 울어버렸다. 나중에 자리로 돌아와 내게 "통역이 차분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말할 때에도 그의 얼굴은 눈물범벅인 채였다.

 

위의 사진은 아이들의 축하 공연 (왼쪽), 준공식에 모인 사람들과 기념 촬영 

 

동생이 지은 학교를 직접 본 것이상으로 뿌듯한 사실은 이 학교가 교육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된 거였다. 지역 교육청이 다음달에 1개 교실을 더 짓고 내년에 1개를 더 지어 5학년 (네팔의 초등학교는 5학년제다) 까지 학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교사들 급여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지역의 학교였는데, 동생의 후원이 학교가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셈이다.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학교라서 운영위원회에 주민들의 참여도도 높았다. 새 건물을 지을 때에도 주민들은 학교 건축위원회와 구매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주민들 스스로 '우리 학교'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그게 보기 좋았다.

 

이 학교의 이름인 스리딜람은 정부 군과 마오이스트의 내전 와중에 희생된 아이인 딜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딜람과 김인배. 지금은 세상에 없는 소년과 청년. 그 둘의 마음이 만나 127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지어졌다. 세상의 일들은 이렇게 연결되기도 한다. 여행 기간 내내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던 어머니는 학교와 아이들을 보고 계속 "참 감사하다"고 하셨다. 이런 인연에, 나도 깊이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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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말 서울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어머니가 참여한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타국에 사는 가족에게도 사진을 보여줄 겸 전시회 열리기 전에 블로그에 띄워야지 생각했는데... 게으른 딸년은 무려 한 달 가까이 지난 이제야 쓴다. -.-;;;

어머니한테는 사진을 배우는 대학의 평생교육원 복도에 전시한 것 이외에 화랑에서 제대로 열린 첫 번째 전시회였다. 사진을 가르치는 교수가 이끈 베이징 촬영여행을 토대로 열렸고 전시회 제목은 'Beijing Now'였다. (위의 사진이 전시회에 출품한 것으로 제목은 '북경도심'. 아래의 사진들은 전시회에 출품했던 것은 아니고, 엄마가 찍은 것 중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이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어머니가 쓴 소개 글은 이랬다.

 

"우연히 사진 갤러리에 들러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은 자연 풍경을 보게 되었다. 바람까지도 담아내는, 상상할 수 없었던 아름다움과 그 안에 깃든 신비함에 매료되어 늦게나마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해보니 생각보다 쉽지는 않으나 무심히 지나치던 풍경도 렌즈를 통해 찾아볼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설렘에 젖는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 한다."

 


어머니가 사진을 배우신지는 1년이 좀 넘었을까.... 스스로 말씀하신대로 어머니의 사진들은 움직이는 사람, 역동적인 장면을 포착하기보다 흔히들 지나치던 풍경을 멈춰 서서 가만 바라보는 구도를 취할 때가 많다.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불안하게 걸려있는 전선들, 어두워지기 직전의 마지막 햇살, 남들보다 일찍 피어버린 꽃송이까지.


어머니가 포착한 풍경들은 대체로 고요히 가라앉은 느낌이지만, 어머니는 활발해지셨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집밖 출입도 잦지 않던 분이신데, 사진을 시작하면서부터 활동 반경도 넓어지고 새벽 출사도 종종 나가고, 같은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기 위해 심지어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신문사에서 사진 기자들이 좋은 사진 한 장을 위해 기꺼이 땅바닥에 엎드리고 물 속에 들어가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감동받은 적이 종종 있었는데, 울 엄니도 그러실 줄이야......^^

보이지 않는 것을 카메라를 통해 보려고 하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 (순전히 내가 딸이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괜히 마음이 짠하다. 엄마가 간절히 찍고 싶어하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보기를 원하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내 맘대로 넘겨짚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사진과 함께 엄마는 그림도 그리신다.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의 그림을 몇 장 찍어 왔다. 그림은 다음 기회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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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버지의 새로운 취미는 화분 만들기.

화초 키우기에 취미를 붙이신 건 오래 됐는데, 분 갈이와 뿌리 나누기를 하시다 보니 여러 크기의 화분이 필요해졌다. 큰 화분은 사야 하지만 작은 건 곧잘 집에서 만들어 쓰신다.
방법은 간단하다. 도자기로 된 전골 냄비 같은 식기의 바닥에 구멍을 뚫어 거기에 화초를 옮기는 거다. 물을 채운 대야 안에 냄비를 뒤집어 담가 안에 물이 차게 한 뒤 구멍을 뚫으면 신기하게 금도 가지 않고 그 부분에만 구멍이 뚫린다.

이런 화분 만들기에 아버지가 재미를 들이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도자기 냄비나 움푹한 그릇에 죄다 구멍을 뚫어 버려서, 남아나는 게 없다"고 한탄이셨다. ^^ 고향 집에 가보면 큰 전골 냄비뿐 아니라 작은 컵으로 만든 화분까지 올망졸망하게 줄 지어 있다.

얼마 전 부모님이 서울에 다녀가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오래 써서 변색되기 시작한 컵에 구멍을 뚫어 작은 화분을 만들어놓고 가셨다. 한동안 방치해뒀다가 어제야 꽃을 채워 꽃 컵을 만들었다. 왼쪽 화초는 화원에서도 이름을 모른다고 하고, 오른쪽은 채송화.

어제 오후에 사 들고 올 땐 채송화의 줄기들이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늘어진 줄기들이 머리에 꽃을 달고 전부 햇빛을 향해 일어서 있는 거다. 만져보면 말랑말랑해서 조금만 힘줘도 뚝 부러질 거 같은 줄기가 꽃을 피우기 위해 스스로 일어설 힘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

채송화는 해가 지고 어두워진 뒤 다시 아래 사진처럼 꽃봉오리를 다물고 잠들 채비에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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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Solo le pido a Dios) /메르세데스 소사 (Mercedes Sosa)의 노래

 

하느님에게 빌 뿐입니다.

내가 고통에 무심하지 않게 하소서.

충분히 일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텅 빈 채 홀로 누운 마른 주검이 되지 않도록 하소서.

 

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내가 불의에 무심하지 않게 하소서.

맹수의 발톱이 내 운명을 할퀴고 간 다음

다른 뺨을 다시 얻어맞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내가 전쟁에 무심하지 않게 하소서.

전쟁은 거대한 괴물이고 강한 군홧발입니다.

순진무구한 사람들만 짓누릅니다.

 

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내가 거짓에 무심하지 않게 하소서.

배신자가 여러 사람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할 때

여러 사람들이 이를 쉽게 잊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내가 미래에 무심하지 않게 하소서.

전진해야 하는 이가 막막함을 느낄 때

또 다른 문화 속에서 살 수 있게 하소서.


(가사 번역본 출처: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의 글 "메르세데스 소사")

     *     *     *     *     *

오늘 2차 희망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가고, 아쉬운 마음에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하느님께 빌 뿐입니다'만 반복해서 듣는다. 
얼마전 트위터에서 알게 된 최용주 님 (@choiyongju)이 소사의 이 노래를 김진숙에게 바친다고 띄웠다. 전국에서 185대 이상의 희망버스가 부산 영도의 85호 크레인을 향해 떠난 오늘, 이 보다 적절한 선곡도 없지 싶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박수를 치고 축제를 벌일 때,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김진숙이 자기 발로 걸어서 크레인을 내려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소사의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본다. 

얼마 전,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를 읽었다. 경미한 사고로 몸을 다쳐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기 힘든데도, 오직 '소금꽃나무'의 리뷰를 써보려고 몇 번이나 책상 앞에 앉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눈물로 흐릿해져 여러 번 읽기를 멈춰야 했던 그 책에 대해, 단 한 자도 쓸 수가 없다. 
김진숙이 겪은 그 모든 고난, 남들은 무시무시한 '빨갱이'라 손가락질 하지만 기실 알고보면 남의 고통을 언젠가 한 번 외면했다는 자책을 떨치지 못하고 비단신을 벗어 던져버린 선량한 사람들, 김진숙이 전국을 돌며 해야 했던 그 많은 추모사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수려한 글솜씨까지 그 모든 게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되어 던져진다. 카인아, 그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김진숙이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처럼, "가슴에 큰 산 하나가 들어앉아 그 산에서 돌덩이가 와르르 쏟아져 양심에 돌팔매질을 해대는 그런 느낌".......

하지만 오늘은 그의 설움과 분노 대신 희망을, 평소 잘 믿지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던 희망을 믿어보려고 한다.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배를 타고, 걸어서, 김진숙이 있는 부산 영도의 85호 크레인을 향해 모여드는 마음. 소사의 노래처럼 고통에 무심하지 않고, 전진하는 이가 막막함을 느낄 때 모른 체하지 않고 모여드는 사람들.
지금 이 시간 그 행렬이 전국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멀리 서울의 방구석에 있는 내 가슴이 뛴다. 벅차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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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를 만났습니다. 세상에 소설가는 차고 넘치지만, (좁디 좁은 제 식견을 감안하여도) 이 분만큼 "이야기꾼"이 썼다는 느낌이 든 소설은 오래간만에 봅니다.

잔뜩 설렌 김에, 정유정 작가를 두 차례 만나 제 책 '내 인생이다' 실은 인터뷰를 독자 서비스 차원 (^^;)에서 전문 게재합니다. 꽤 길어서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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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정유정: 간호사에서 소설가로

1980년 5월, 시가전이 벌어지던 광주에 공수부대가 진입하던 날이었다.

방 10개가 주르륵 붙어있던 기다란 한옥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생과 어른들은 출정식이라도 하듯 마당에 함께 모여 번개탄을 피워 삼겹살을 구워먹고 소주를 마셨다. 그러고는 한 명 뿐이던 여고생에게 “집 잘 보라”고 당부한 뒤 굳은 얼굴로 모두 트럭을 타고 떠났다. 밤새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던 여고생은 대학생이 묵던 옆방에 들어가 책을 하나 골랐다. 재미없는 책을 보면 잠이 올까 싶어 고른 책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 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총소리가 그쳐 있었다. 어른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에 쳐둔 이불을 들추고 밖을 내다보니 새벽이었다. 희뿌옇게 밝아오던 하늘, 깊은 정적에 휩싸인 새벽녘의 거리를 바라보던 여고생에게서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2009년 장편소설 "내 심장을 쏴라"로 1억 원 고료 제5회 세계문학상을 탄 정유정 씨는 자신이 왜 작가가 되고 싶은지를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날 알았다고 했다. 그 울음이 답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여고생의 몸과 마음을 꿈결처럼 홀리고 잠시나마 현실의 공포를 잊도록 해준 소설, 그렇게 울게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 후 한시도 소설가의 꿈을 잊어본 적이 없지만, 자신의 꿈과 마주하기까지 그는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그는 5년 6개월간 간호사로, 9년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 직으로 일한 뒤 서른여섯 살 때인 2001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소설가다. 글을 쓰게 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물으니 그는 “생존 투쟁 때문”이라며 씩 웃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땐 그가 들려준 이십대의 고단한 경험이 ‘생존 투쟁’의 전부인 줄로 이해했다. 신산스러운 이십대를 보내면서도 꿈을 잃지 않은 일편단심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두 번째 만났을 땐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서른여섯 살에 인생의 방향을 튼 뒤 마흔 두 살에 등단하기까지 그가 살아낸 7년간의 캄캄한 시간이 눈에 밟혔다.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는 고시생처럼 공모전에 잇따라 낙방하면서 어떤 결실도 얻지 못한 채 흘려보내야 했던 시간을 그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는 “10년 넘게 습작 중인 사람도 있는데 내 7년은 아무 것도 아녜요”하면서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7년이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자라 대학생이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견디어낸 것이야말로 그가 작가라는 존재로 자신을 세우기 위해 치러야 했던 진짜 ‘생존투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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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아시아의 몇 개 나라를 오가며 사업하는 후배가 있다.
오랜만에 통화하면서 이런저런 근황을 주고 받다가 허리를 빼끗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나무라듯 가볍게 타박하면서 누워서 들으라고 음악 선물을 보내줬다.
"언니의 아픔을 조금 덜어줄 수 있길 바래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OO야, 무슨 아픔씩이나! 걍 좀 불편한 거라구 ^^;)
누군가로부터 자기가 직접 만든 음악선물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 낯설고 기쁘다. 한 곳에 머물 수 없고 꽤 터프한 일을 하고 있는 후배는 낮에 바삐 돌아다니는 동안 떠오르는 악상을 틈틈이 수첩에 음계로 적어두었다가 밤에 음악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곡을 만든다고 한다. 워낙 관심사가 다양한 오지라퍼(^^)이긴 하나, 음악까지 만들다니...음..대견한 것같으니라구~
음악으로 진통해보라는 후배의 당부와 달리, 이 짧은 곡을 반복해 들으면서 나는 그녀를 생각한다. 아득한 전설같은 대학시절, 웃는 얼굴이 참 예뻤던 그녀, 맵고 당차던 그녀의 말, 오랜 시간을 껑충 뛰어 다시 만난 뒤 양재천변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던 날 밤의 공기, 깔깔거리던 웃음소리,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때 바보 언니라고 나를 타박하면서 그녀가 했던 말, "언니, 우린 행복해지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 자신은 내버려 두고 그냥 이렇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도록 하자고요.".....

예쁜 내 후배,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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