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2.12 그리움을 만지다
  2. 2017.02.06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 (1)

전시된 뜨개작품의 톡톡한 재질을 만져도 보고 부드러운 표면을 쓰다듬어도 보고 대형 뜨개러그 위에 앉아도 본다. 목도리와 가디건, 지갑, 가방을 뜨개질로 만든 엄마들이 이 작품을 누구한테 왜 주고 싶은지 쓴 사연도 찬찬히 읽어본다. 그렇게 걷다보면 "옆도 뒤도 돌아보기 무서웠던 때 뜨개바늘을 잡고 직진만 했던" 엄마들이 그 보들보들한 목도리와 방석, 컵받침 등에 촘촘히 녹여 넣은 고통, 그리움, 애달픔이 온 몸으로 전해져온다. 보드라운 방석들을 쓰다듬다가 옆 벽면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속마음 말들을 읽다 보면, 울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 전시 '그리움을 만지다' (~19일, 서울시민청 갤러리) 는 컵받침 2800개가 별처럼 공중에 걸개로 떠 있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뜨개작품들로 장식되어 포근하지만, 그렇게 몸의 감각을 모두 사용해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와락 눈물이 터질 수 있으니 꼭 손수건을 준비해서 가시길.

# 내가 간 날에는 엄마들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 인사를 할 때 엄마들이 "2학년 O반 OO 엄마입니다"라고만 소개하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세월호 유족이라는 정체성이 엄마들의 삶을 무겁게 짖눌러 버렸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인 OOO씨로서 겪는 삶의 다른 순간들도 많을텐데, 오늘은 아이들보다는 엄마들의 시간인데, 엄마들도 이름이 있으니 OO엄마 OOO입니다,라고 소개하시면 더 좋았을 것을....

아니나 다를까, 사회를 보시던 정혜신 박사님이 내 맘을 읽기라도 하신 듯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면서 말씀하신다. "여러분, 혹시 화법의 차이를 눈치채셨나요? 엄마들이 말을 할 때는 주어가 늘 '우리 엄마들은' '저희들은'으로 시작해요. 개인 이야기를 하는 게 낯설어서 그러시기도 할텐데요...오늘은 '저희들' 말고 '나는'이라고 말씀하시고, 대변인같은 외교적 이야기 말고 (웃음) 자기 이야기만 해주세요."

엄마들은 여전히 '나는' 이라고 말하기를 어색해 하셨다. 그러면서 조금씩 풀려나온 이야기들. 유족들이 밥먹으면 먹는다고 손가락질, 웃으면 웃는다고 손가락질하는 주변의 시선이 힘들었다. 사람이 늘 울고만 있는 것은 아닌데 유족의 모습은 우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꾸 스스로를 속이게 되더라. 치유공간 이웃은 그런 남들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처음으로 편하게 마음을 부려놓을 수 있었던 공간이다...힘든 일에 대처하는 방식이 가족 간에도 서로 달라서 힘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나가서 미친 듯 활동해야 숨통이 트이는데 아이 아빠는 아예 나가질 않는다. 떠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가족 간에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어야 치유가 된다는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끼리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다. 서로 겁이 나서 아직도 그렇게 안 된다....

남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못해서 마음에 걸린다는 한 엄마에게 정혜신 박사가 물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잠깐 뜸을 들인 뒤 그 엄마가 대답했다. "내가 아프지 않고 잘 사는 모습 보여주는 거죠..."

또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자식을 잃은 내 엄마에게 10년 전 내가 했던 말이다. 남은 생을 '아들을 잃은 엄마'로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프지 말고 엄마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으면 뭐든 하면서 잘 사시는 걸 보고 싶다고. 그리고 오늘 그 엄마의 대답처럼, 엄마들도 이미 안다.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엄마들이 그렇게 '나'라는 주어를 찾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 영화 '컨택트'를 본 뒤 한동안 마음에 맴돌던 질문을 오늘 전시장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나무 줄기 같은 조형물에 목도리가 전시된 뒤켠 벽면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네 엄마일 거야"

별 일 없고 평온한 상태였더라면 흔하고 진부한 애정표현처럼 들렸을 이 말이 세월호 엄마들을 통해 나오면서 진부함을 훌쩍 뛰어넘어 절실해진다. 마치 영화 '컨택트'에서 루이스 박사의 말처럼.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난 모든 걸 껴안을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

루이스 박사는 "당신 인생을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다면, 그걸 바꾸겠느냐?"고 묻는다. 10년 전쯤 탐독했던 니체의 질문과도 비슷하다. "악령이 찾아와 이렇게 묻는다고 치자. 네가 지금 살아왔던 삶을 다시 한 번 살아야만 하고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이란 없고 모든 고통과 쾌락, 탄식이 같은 순서로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지금의 나는 선뜻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루이스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다시 껴안겠노라 대답한다. 세월호의 엄마들도 그 모든 낯설고 가혹한 고통을 겪은 뒤에도 다른 사람이기를 바라지 않고 "다시 태어나도 네 엄마"이기를 소망한다. 영화 속에서 자기 운명이 달라기지를 원치 않았던 강인한 루이스 박사처럼, 삶을 덮친 비극적 우연에 질식해 버리지 않고 뜨개바늘을 지팡이 삼아 모진 시간을 건너가는 세월호의 엄마들도 강한 사람들이다. 그 힘이 어처구니 없고 황당한 이 세상이 그래도 폭삭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힘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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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다녀온 지 6일째. 틈틈이 해온 여행의 뒷정리를 오늘에야 마쳤다. 내 스마트폰으로 찍은 다른 사람들 사진을 보내주고, 등산복과 옷가지들, 배낭, 신발을 재질의 속성에 맞게 세탁하고 발수제를 뿌려 정리해두고, 빌려온 침낭과 배낭을 탈탈 털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돌려줬다. 뒷정리는 내 몸도 예외가 아니어서, 산에선 아무렇지도 않던 허리와 다리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아프고 당긴다. 매일 스트레칭을 하며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이다.

마음의 뒷정리도 필요할까. 별 생각이 없는 상태로 걸어서 딱히 느낀 점도, 깨달은 점도 없다. 혼자 걸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내 마음이 그리 수다스럽지 않아서 되레 홀가분하니 좋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고민스러웠던 선택의 방향 하나를 정했고 돌아와서 결론을 상대에게도 전했으니, 마음이 저 혼자 분주히 일을 하기는 한 모양이다.

1월 20~30일 네팔 여행. 그 중 6일을 히말라야에서 걸었다. 해발고도 1410m인 샤브루베시를 출발해 4200m의 초원지대인 랑시샤 카르카까지 다녀왔으니 2790m를 나흘간 올라갔다가 이틀 만에 내려왔다.  고산증은 겪지 않았고 추위도 예상만큼은 아니었다. 밤엔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갔지만 뜨거운 물을 담은 물통을 안고 핫팩 하나를 붙이고 겨울침낭에 들어가면 따뜻했다. 낮엔 쉴 때를 제외하곤 패딩을 거의 입지 않을 만큼 화창했다. 되레 트레킹을 며칠 더 하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짧아서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나이와 직업이 모두 다른 여성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함께 걸었다.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캠페인 진행자와 여성들끼리의 여행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 주최한 여행길이었다. 각자 알아서 카트만두에 모인 뒤 시작되는 여행. 2년 전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져 버린 랑탕을 지나는 트레킹 코스를 일부러 골랐다. ‘기억의 시간을 함께 걷다’라는 주제로,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이 땅 아래 묻혀 있는 곳이지만 다시 살아가기 위해 삶을 시작한 사람들 또한 있는 곳”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길”을 함께 걸었다.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로 먼저 떠나버린 사람들을 기억하며,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리며 여행의 마지막 날엔 카트만두의 티벳사원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촛불을 켜기도 했다.

매일 오전 8시에 출발해 오후 5시 정도까지 걸었는데 얼음과 눈을 밟은 적은 거의 없고 거개가 흙먼지길이었다.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펼쳐진 초원지대가 나는 가장 좋았다. 숙소가 있던 걍진곰파 (해발 3830m)에서 랑시샤 카르카 (4200m)를 왕복하며 약 8시간 반 걸었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 등반 (mountaineering)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며 산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 (trekking)의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한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설산을 바라보며 대평원 같은 느낌의 대지를 하염없이 걸어갈 수 있어서, 때로 홀로 걸으며 한 점에 불과한 내 존재의 사소함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어서 나는 이 길이 좋았다. 큰 점프 대신 작은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듯 땅을 꾹꾹 찍어 밟으며, 돌아가서도 이렇게 한 발씩 천천히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고산지대보다 트레킹 출발 지점과 카트만두 사이 깎아지른 계곡 위의 비포장길을 지프를 타고 구불구불 오고 갈 때가 더 아찔했다. 안전벨트도 고장났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길에서 차바퀴는 휙휙 미끄러지고, 굴러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일 텐데.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순전한 우연으로만 느껴지는 상황. 트레킹 도중 랑탕 마을을 지나면서도 그런 느낌이었다. 지진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마을.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산사태의 여파로 지금도 그 마을 앞쪽 산엔 나무들이 가로로 누워 있다. 당연한 삶을 살고 우연히 죽는 게 아니다. 삶이 우연이고 죽음이 필연이다.

낮에 설산을 바라보며 걷고 밤엔 쏟아지는 별들을 보았다. 단순한 생활. 그리고 여행 기획자가 같이 읽고 싶다고 나눠준 앨리스 메니엘의 ‘삶의 리듬’에 대한 글.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운율은 있다. 생각의 궤적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성이 마음의 경험을 지배한다. 거리는 가늠되지 않고, 간격은 측량되지 않으며, 속도는 확실치 않고, 횟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되풀이되는 것은 분명하다. (...)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 기쁨은 우리에게 오는 길에 이미 우리를 떠난다. 우리의 삶도 차고 질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삶의 리듬에 따라 깨고 쉴 것이다. 모든 것--태양의 공전과 출산의 주기적 진통까지--을 지배하는 법칙에 우리도 지배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 앨리스 메이넬 ‘삶의 리듬’ 중에서 -

피할 수 없는 삶의 주기성과 리듬을 이제는 나도 조금은 안다. 중단 없는 행동과 열망 같은 건 없다. 멈춤과 후퇴, 그리고 다시 나아가기, 다시 멈춤의 반복. 내가 들어선 경계와 중립지대를 얼른 벗어나는 것보다는 내 운율에 충실하게 머무르기를 더 바란다. 그 리듬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앞일을 아직 모른다는 것, 불확실성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도 얼마만의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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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