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 포스트……^^;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을 때, 행복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에너지의 형태만 변할 뿐 총량은 일정하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누군가가 지독한 행운을 맞이했을 때, 동시에 누군가는 그만큼 지독한 불운을 겪게 마련이라는….지구에 허용된 행복은 에너지처럼 일정한 양이어서 모든 사람이 ‘충족 상태’로 살아가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생각. 덧붙여 왜 나는 ‘과잉’을 누리지 못하고 늘 ‘결핍’된 상태일까, 그런 게 못마땅했다. 물론 배부른 소리라는 걸 알지만…

그런데 자신의 현실에선 전부다들 스스로가 ‘행복의 결핍’상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 우리는 행복에 어지간히도 집착한다. 이번 주에 나온 책 제목만 일별해도 그렇다. 행복의 심리학, 긍정심리학, 행복의 공식, 유쾌한 행복사전, 자존감이 행복을 결정한다….
모두다 행복하다면, 이런 책들이 붐을 이루지도 않겠지… 책들이 설명하는 행복의 비결은 간단하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행복한 감정을 갖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면 된다’의 정신이렷다!

뭐 그러려니, 하면서 책을 보다가 <긍정 심리학>에서 ‘하면 된다'의 정신에 위배(?)되는 대목을 발견했다.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의 범위는 미리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1인분의 행복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대부분의 성격 특성이 유전될 확률은 50% 안팎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가, 하는 행복 감수성의 절반 가량은 친부모의 성격에 따라 이미 결정된다. 인간은 이미 정해져 있는 행복한 삶이나 불행한 삶 쪽으로 나아가도록 ‘조종하는’ 유전자를 타고난다는 것이다.

<긍정 심리학>의 저자인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미국 시카고에 사는 이혼녀 루스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5달러짜리 복권을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녀는 어렸을 때도 늘 우울했다고 한다. 어느날 기적이 일어났다. 2200만 달러나 되는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루스는 백화점에서 선물을 포장하던 일을 그만두고 최고급 집과 차를 샀다. 한동안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루스는 계속 기분이 가라앉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해 연말 그녀는 만성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마틴 셀리그먼은 “사람들에겐 저마다 이미 설정된 행복의 범위, 즉 어김없이 되돌아가야 하는 유전적 행복도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타고난 행복의 범위는 자동온도조절기와 같다. 엄청난 행복을 느끼다가도 이내 자기 본래의 행복도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자동온도조절기는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그 불행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역할도 한다.
셀리그먼은 “척수를 다쳐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도 두달쯤 지나면 부정적 정서보다 긍정적 정서가 더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한두해 정도 지난 뒤에는 이들의 평균 행복도가 건강한 사람보다 조금 낮을 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전신마비 환자들 가운데 84%가 자신의 삶을 보통이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도 있다. 요는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 수준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둥바둥하는 게 다소 우스운 짓거리라는 생각…..행복 총량의 법칙이 우주에는 적용되지 않을지 몰라도, 개인에게는 통하는 법칙 같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유쾌한 행복사전>을 쓴 최윤희 씨와 같은 행복만땅의 태도로 살아갈 수는 없을 거다. 내가 내 조건 안에서 경험하는 행복의 질이 내겐 더 중요한 것일 게다.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돌아왔고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로고세라피’를 창시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이렇게 말했(던 것같)다.
“자기 실현은 자기 초월의 부산물로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확대해석하면,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삶에서 중요한 어떤 것을 추구했을 때, 행복은 그 부산물로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원의 감정일 것이다.

## <긍정 심리학>을 사서 보라고 추천하기엔 망설여진다. 마틴 셀리그먼은 행복과 관련된 모든 책에서 빠짐없이 인용되는 심리학자다. 그가 쓴 책이니, 행복의 요령을 설명하는 모든 종류의 책을 보느니 이것 한권만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심각한 오역의 문제가 있다.

번역자는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심리학자다. 네임 밸류로만 보면 믿을만하다. 그런데 책을 읽던 도중 ‘혈액형이 A형인 사람은 급작스러운 분노의 표출….’ 뭐 이런 대목을 발견했다.
좀 이상했다. 미국 심리학자가 쓴 책에 무슨 혈액형?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말이다.
뒤에 설명을 더 읽어보니 혈액형이 아니라 ‘A 유형’에 대한 설명을 오역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대인관계에서 경쟁적이며 일 중독의 경향이 있고 급작스럽게 적대감과 분노가 표출되는 유형의 성격. 심장병 걸릴 확률이 가장 높은 성격 유형. 이런 유형은 혈액형 A의 특징이 아니라 ‘A 유형’의 특징이다. 번역자는 혹시 ‘Type A’를 ‘Bloodtype A’인 걸로 착각했던 게 아닐까.
혹시나 싶어 출판사에 전화해봤다. 내 생각이 맞았다. 이미 서점에 나간 건 어쩔 수 없고 다음 판을 찍을 때 수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책에 대한 느낌이 호감에서 완전 비호감으로 확 바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심리학자가 번역자인데 이런 실수가…출판사는 초벌 번역을 다른 사람이 하고 번역자로 책에 나온 심리학자는 그냥 감수만 해서 그런 실수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번역자로 이름을 올려도 되나???....좀 황당했지만 그러려니 생각하고 조금 더 읽었다. 그런데 이번엔 성격 유형 테스트에서 자가 채점표가 뒤집혀 게재됐다. 출판사의 말은 디자이너의 실수라는 것…. -.-;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 책을 보라고 추천은 못하겠다. 하지만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 격인 마틴 셀리그먼의 저서라는 점에서, 오역을 참아줄만큼 아량이 넓고 ‘행복해지는 방법’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일독을 해도 무방할 듯.
성격유형 테스트는 책에 실려있는 것보다 마틴 셀리그먼의 홈페이지 (www.authentichappiness.org )에 있는 것이 (영어라서 다소 짜증이 나지만...) 문항 수가 풍성해서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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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