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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런 것인데도 사람들은 종종 착각해요. 안정적인 삶, 평온한 삶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요. 이것은 착각입니다. ‘지금 사정이 여러모로 안 좋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 일을, 혹은 공부를 할 수 없어. 나중에 좀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런 시간은 잘 오지 않아요. 아니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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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의 ‘라틴어수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갑자기 뭐라도 쓰고 싶어졌다.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오래 쓰든 안쓰든) 내게는 중요하(다고 오래 생각해왔)다. 아마 예전처럼 일 삼아 매일 쓰는 삶은 다시 살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그런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여유가 생기면 뭐라도 써야지 같은 생각만 부도수표처럼 품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여유는, 그런 날은 아마 이후의 삶에서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위의 대목을 읽으며 다시 절감했고, 막막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사실 간단하다. 쓰지 않으면 ‘쓰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는 것만도 에너지가 많이 쓰여서 잘 구성한 글, 긴 글은 쓰기 어려울 테지. 책을 읽으며 떠올랐으나 덮으면 달아나버리고 마는 토막생각들을 채집해 모아두기라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일단은 ‘쓰는 사람’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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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에서 마음을 울린 한 구절은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인사말이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저는 잘 있습니다.”

줄여서 “Si vales bene, valeo”라고 쓰기도 하는데 줄여 쓴 문장은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가만가만 따라 읽어본다. 그 말을 따라 한때 누구보다 소중했으나 이제는 닿지 않는 인연들이 떠올라 맘이 아릿하기도 했고,

(이건 직업병인데)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돌봄과 연대, 공공성 강화가 그와 직접 관련이 없는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서도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따뜻한 말처럼도 들린다.

그런저런 걸 다 넘어서, 지나가는 아무에게라도 전하고 싶은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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