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 있는 동안에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사건이 삶에 더해질 때마다 줄거리를 계속 수정할 뿐이다. 길을 바꾼 사람들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여기는 대신 그렇게 이야기를 고쳐 쓰며 열린 태도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곧게 뻗은 직선형 계단 대신 빙빙 도는 나선형 계단에 올라 거듭되는 부침(浮沈)을 긍정하면서도 점점 나아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는 냉소를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성인의 삶에 ‘성장’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다. 길을 바꾼 우리는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들이다.

- 내 책 ‘내 인생이다’ 에필로그에 쓴 마지막 문단.

# 지난달 말일자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만두기 이전과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고 눈앞을 어지럽히던 희뿌연 먼지가 이제 조금씩 가라앉으려 한다. 맨얼굴의 적나라한 대면이 두렵지만 그것대로 맞이하고자 한다.

먼지 가라앉히기에 도움이 될까 하여 블로그에 ‘성장’이라는 폴더를 만들었다. 이 나이에 성장이라니...하지만 내 책 에필로그에 내가 쓴 말처럼,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나는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이다. 회사를 의도치 않게 그만둔 것도 내가 쓰던 삶의 이야기에 새로운 사건이 더해진 것일 뿐. 이제 나는 줄거리를 어떻게 고쳐 쓸지 생각해야 하는 시간.

# 잘 다니던 직장을 왜 그만두었느냐고 누가 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자세히 설명하기 곤란한 상황이기도 했고...무엇을 하려고 그만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는 사실이 내 인생의 실패를 증명해주는 것만 같아 한동안 괴로웠다. 그런 내게 존경하는 어른이 들려준 성경의 한 구절.

(예수가 열두 제자를 파견하는 대목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마르코 복음 6장 10~13절)

그 고장에서 너희를 받아들이고 너희 말을 들을 때까지 계속 머물러 끝까지 노력하라고 하지 않았다.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나라, 그게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떠나도 된다...혼자 속을 끓이다 찾아가서 하소연하던 내게 그 어른이 "맞서고 버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들려준 말씀이다.

낯선 사건과 함께 찾아온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겨우 빠져나오고 발밑의 먼지를 털고 떠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스스로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 또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거의 본능처럼 저절로 보이는 반응, 나라는 사람이 이끌려가듯 취한 선택. 그런 것들을 통해 확인하게 된 나 자신이 그다지 싫지는 않다. 그러면 되었다.

# 사무실 짐을 정리해 차에 실어둔 박스 3개를 옮겨야 하는데 박스를 차에 싣다가 허리를 살짝 삐끗하기도 했고, 짐 카트를 빌리러 갈 때마다 경비실 아저씨가 안 계셔서 여태 못했다. 오늘도 갔더니 안 계신다. 이를 어쩐다, 내일 할까 하다가,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지리산 종주도 하는 사람인데 그거 하나 못 옮기랴 싶어 튼튼한 가방 2개와 배낭 1개를 들고 주차장으로 갔다. 책과 수첩이 대다수인 짐이 꽤 많아 보였는데 웬걸, 두 번 왕복으로 짐 옮기기 끝. 

이렇게 하면 되는 걸. 난감한 큰 덩어리를 내가 들 수 있는 크기로 잘게 쪼개어 하나씩 하나씩. 뭐가 어찌 될지 모르는 내 앞날도 지금 해볼 수 있겠다 싶은 몫으로 쪼개어 하나씩 하나씩.

'내 인생의 Turning Point > In transi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  (1) 2017.02.06
미래를 선취(先取)하기  (4) 2017.01.04
Liminality  (2) 2016.12.31
성장  (2) 2016.12.13
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