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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와중이지만 기록해두고 싶다. 10일 레너드 코헨이 세상을 떴다. 향년 82세.

 

14년 전, 코헨의 노래를 거의 매일 듣던 시기가 있었다.
이혼 직전 무렵. 회복해보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던 관계의 위기를 피해 밤봇짐 싸 달아나는 사람 마냥 우연한 미국 연수 기회를 덜커덕 붙잡아 LA에 갔더랬다. 얼떨결에 1년짜리 MBA 과정을 다니게 되었는데 수업이 그렇게 빡빡한 줄 모르고 갔다가 거의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 했던 시간.

 

그래도 어쨌거나 LA 아닌가. 10분이면 해변에 갈 수 있고 사시사철 화사한 곳. 그럭저럭 즐겁게 지냈지만...우울한 날들이 더 많았다. (당시엔 그 뒤에 더 많은 나쁜 일들이 생길 줄 몰랐던 때라) 인생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고, 비뚤어진 심사에 심지어 LA의 화창한 날씨도 곧잘 거슬렸다.내 인생은 이리 망가져가는데 세상은 나랑 상관없이 저 화창함과 함께 매일 웃고 있는 듯한 기분. 그 뒤로 나는 힘들어 하는 사람을 만날 때 (나도 같이 힘들기 때문에 ‘힘 내자’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힘 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있는 힘을 다 짜내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힘 내’라는 말은 얼마나 무성의한가. 나야 기분이 어떻든 말든 저 혼자 웃고 있던 LA의 태양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지만) 세상 모든 반듯하고 따뜻하고 살가운 것들에게서 외면당한 듯한 기분에 휩싸여 있던 내게 당시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게 코헨의 노래였다. 친구가 연수가던 나에게 선물해준 코헨의 CD를 듣고 또 듣다가 울며 잠든 날이 부지기수... 낮게 읊조리는 그의 음울한 노래들이 마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같이 버텨주고 같이 울어주는 친구 같았달까.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그 감정들은 어찌 해결되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해결’이 안되어 그냥 끊고, 묻고, 잊기로 체념했던 듯도 하다. 기억나는 것은 그 시절에 가장 많이 들었던 ‘bird on the wire’에서 코헨이 노래하듯, 나도 내 식대로 애썼다는 것 뿐. 자유로워지려고 (I have tried in my way to be free).

 

R.I.P 레너드 코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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