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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도 예외가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대형 참사가 아이들에게 남기는 상처는 길고도 깊다.

 

네팔 대지진 긴급구호 대응을 거들던 와중에 타산지석이 될까 하여 내가 일하는 단체가 올해 1월에 펴낸 ‘아이티 지진, 그 후 5년’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5년이 지났지만 운명을 바꾼 그날의 상황은 아이들에겐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를테면 벽이 머리 위로 무너질 때 함께 있던 아기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떨치지 못하는 소년 장탈은 해마다 대지진이 일어난 1월 12일만 되면 지독한 두통에 시달린다. 여전히 그 기억을 앓고 있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삶이 뒤흔들린 아이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행복의 모습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는 경구는 속수무책인 대형재난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나 보다. 대지진의 참사를 겪은 네팔과 아이티는 비극의 쌍둥이라 할 만하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허약한 두 나라가 대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전개과정도 비슷하다. 구조는 더디고 우기가 다가오면서 전염병 공포가 번지고 있으며 대도시에서의 탈출 행렬은 시골로 문제를 안고 간다.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에 남은 아이들의 처지는 더 닮은꼴이다. 깨끗한 식수와 음식, 의약품이 태부족한 환경에서 질병의 위험 앞에 가장 취약한 사람은 어린 아이들이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은 혼란 속에서 성폭력 및 착취,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네팔에서는 5천여 개의 학교가 파괴됐는데 어떤 아이들에겐 이번이 평생 받을 교육의 끝일지도 모른다. 5년 전 아이티의 아이들이 이미 겪었던 일들이다. 지금도 아이티에선 돌아갈 집을 잃은 사람 8만 여명이 캠프에서 살고 있고 그 중 절반이 아이들이다. 네팔에서 집을 잃은 아이들은 32만 명. 이들의 미래가 아이티의 현재와 다르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네팔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지진 발생 후 1주일 여간 헬기와 트럭 오토바이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아이들 8천 명을 포함한 1만9천여 명의 이재민들에게 방수포와 아이들을 위한 위생용품 등 구호물자를 배포했다. 며칠 내로 136톤의 구호물자를 네팔에 추가로 들여보낸다. 박타푸르를 비롯한 재난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리고 심리적 지원도 받을 수 있도록 아동친화공간을 열기 시작했다. 여러 긴급한 지원조치들 중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아동친화공간 만들기와 교육 재개를 위한 지원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재난 직후 음식과 의료가 생명을 구하듯, 교육도 그렇다. 아동친화공간과 학교를 통해 다시 친구들을 만나며 일상을 회복하는 것은 아이들이 당장의 심리적 외상을 이겨내고 장기적으로는 회복탄력성을 갖도록 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재난이 발생하는 곳마다 아동친화공간을 만들고 교육 재개를 보건의료지원 못지않은 긴급과제로 삼는 이유다.

 

네팔과 아이티의 상황은 닮은꼴이지만 5년 전의 비극이 이번엔 반복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아이티에서 ‘거대한 실패’를 겪은 국제사회의 책무일 것이다. 콜레라 발병으로 제2의 재난을 겪었던 아이티의 참상이 네팔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돕겠다고 들어간 사람들이 더 큰 문제를 만들지 않기를, 아무리 허약하더라도 현지 정부를 배제하지 않고 모든 구호와 재건의 노력에서 현지의 주민들을 중심에 두기를, 그리고 재난의 직격타를 가장 크게 받는 대상인 취약계층, 즉 아이들,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늘 유념해야 할 것이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한겨레신문 바로가기) (세이브더칠드런 네팔 후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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