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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지리아 북서부의 시골 마을. 갓 엄마가 된 라일라는 딸 라비아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그러나 라일라가 아무리 노력한들 딸 라비아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잔인한 질문이지만, 라비아가 태어난 지역의 영유아 사망률이 출생아 1천 명당 150명으로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높은 현실이 더욱 잔인하다. 라비아가 이 시골마을 대신 최대도시 라고스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다섯 살까지 생존할 확률이 4배 가까이 올라간다. 아이가 다섯 살 생일을 맞을 기회는 태어난 곳, 부모가 속한 계층 등 아이들에겐 순전히 우연인 변수에 좌우된다. 출생의 복불복이라고 해야 하나.

 

#2. 시선을 같은 대륙의 동남쪽으로 옮겨 역시 가난한 나라인 르완다로 가보자. 부레라 지역 농부의 아내 모데스테의 삶도 힘겹긴 마찬가지이나 갓 태어난 아들 엘리부가 죽을까봐 걱정하던 시름은 덜었다. 예방접종도 받고 아플 때 치료받을 보건센터가 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출생아 1천 명당 사망률은 2000년에 182명이었지만 2013년엔 52명으로 줄었다. 여전히 가난하지만 국가건강보험을 도입하고 정부와 함께 구호개발단체 등이 마을에 사는 보건요원을 양성해서 엘리부 같은 시골 마을 아이들도 치료받도록 노력한 결과 빈부차이에 따른 아동사망률 격차도 줄었다. 출생의 복불복도 어쩔 수 없는 운수소관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3. 이번엔 미국 뉴욕. 17일부터 이곳에선 ‘포스트 2015’ 개발의제를 둘러싼 정부 간 협상이 열린다. 21세기 시작 무렵 유엔 회원국들이 지구촌 빈곤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 채택한 새천년개발목표의 종료시한은 올해다. 바통을 이어받아 올해 이후 개발의 방향을 정할 ‘포스트 2015’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데, 이는 정부 간 협상을 거쳐 9월 유엔 총회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 정부 간 협상을 앞두고, 세이브더칠드런 옥스팜 등 272개 단체는 공동성명을 내어 “새로운 개발목표가 혁신적이려면 선언의 중심에 불평등의 해소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이지리아, 르완다 시골의 갓난아기가 죽고 사는 문제와 뉴욕에서 모호한 거대담론처럼 들리는 ‘포스트 2015’를 두고 벌이는 협상. 생뚱맞은 대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의 구체적인 목숨과 추상적인 협상 의제는 사실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포스트 2015’는 앞으로 15년간 전 세계의 공적개발원조예산, 기업과 단체의 후원금, 해당 지역의 정책 등 개발과 관련된 모든 자원의 쓰임새와 방향을 정하는 일종의 표지판이기 때문이다.

 

올해 끝나는 새천년개발목표 하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통계의 ‘국가별 평균’을 걷어냈을 때 드러나는 맨얼굴은 불평등으로 얼룩진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내가 일하는 단체가 87개국의 아동사망률 데이터를 분석해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가 중 75% 이상에서 아동사망률의 계층 간 격차가 심각해졌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2012년 소득하위 40% 가구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가장 부유한 10%가구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다 2.5배 더 많이 목숨을 잃는다. 이 격차는 2002년 이후 두 배로 뛴 수치다. 국가 전체의 평균은 올라갔을지 몰라도 사회경제적 계층 간 격차가 더 커지는 요즘 추세대로라면 라비아처럼 불운한 아이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에도 속절없이 목숨을 잃는다.

 

프란치스코 교황 말마따나 ‘모든 악의 뿌리’인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다음 세대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은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포스트 2015’가 먼 나라 이슈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이유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한겨레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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