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천리 바닷가 신천목장 (올레 3코스)

 

제주 표선 해수욕장 (올레 3코스)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해수욕장 (올레 14코스)

 

제주 바다의 서로 다른 색채. 동쪽 올레 3코스의 신천리 바닷가와 서쪽 올레 14코스의 협재 해수욕장. 1.5일의 짧은 일정에 제주도 한복판에 자를 대고 가로로 금을 그으면 맞닿을 만큼 동서로 떨어진 곳을 다녀온 이유는.......미련하기 때문이다.

14코스 쪽에 숙소를 잡고도, 1주일 전 한겨레신문에 나온 신천리 바닷가 풍경 (바로 이 기사)에 홀딱 빠져 동쪽 올레 3코스를 걸어야지 했다.

문제는 그러면 숙소를 취소하고 동쪽으로 잡아야 하는데, 선불로 숙박료를 모두 납부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단 점.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일로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을 못했다. 게다가 신천리 바닷가에 가자고 길을 나선 순간에야 제주도 정반대쪽이란 걸 알아차리고도 계획을 변경하기는커녕, 우리 둘 다 "그런다고 일정을 바꾸냐. 교통비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자"고 희희낙락하는 무대책형 인간들인 탓에 짧은 일정에 동서를 가로지른 여행이 되었음. 이동시간이 길었지만 시시콜콜 별별 수다의 시간이 되었으니 그 또한 좋은 일. 사실 나나 친구나, 일이 턱에까지 차서 헉헉대다 나선 여행이라 뭐든 아무래도 좋았다. 바다, 오름, 현무암 사이에 핀 수선화, 동물이 우다다다 몰려가듯 바람에 흐르는 억새풀들, 맛있는 음식, 하릴 없이 걷는 것, 그 자체만으로 충분했다.

 

완주할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으므로 3코스 출발점에서 통오름까지만 걷고, 그 뒤엔 택시를 타고 이동한 뒤 신천목장 바닷가에서 표선까지 걸어감. 다음날 14코스도 마찬가지. 숙소에서 금능해변까지 짧은 구간만 맛뵈기로 걸었다.

금능해변 근처 동네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제대로 된 커피를 파는 예쁜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 '릴리스토리'까지 덤으로 발견.

내가 묵은 숙소는 협재의 플래닛게스트하우스였는데, 바다 바로 앞이라 이번처럼 바람이 꽤 불고 쌀쌀한 때보다 햇볕 쨍쨍 한여름에 더 어울린다.

 

14코스를 슬렁슬렁 걷던 날일요일 아침답게 사람들은 기지개를 켜지 않았고 개들만 골목에 나와 있는 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한 집에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이모들!"하고 소리쳐 부르며 뛰쳐나왔다. 바다를 보러 가냐고 묻더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따라오라 손짓하며 앞장서 걷는다. 아이는 쉴새 없이 저 하얀 개가 닭을 물어갔다는 둥, 저 개는 새끼를 얼마 전에 낳았다는 둥, 저 빈집엔 사람은 살지 않고 양파만 있다는 둥, 50만원에서 5만원을 갚으면 얼마가 남냐고 묻더니 그럼 남은 돈에서 할아버지가 1400원으로 소주를 두 병 살 거라는 둥 계속 종알댄다.

손에 쥔 사탕을 우리에게 나눠준 뒤 자기만의 공사장이라며 집 옆 모래밭으로 우리를 데려간 아이는 장사 놀이하자면서 김밥과 라면을 파는 분식집 흉내를 냈다. 김밥 마는 시늉, 아이가 손에 쥐어준 모래를 먹는 시늉을 하다가 어쩌다 엄마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가 "엄마 없어요" 한다. "아침 일찍 어디 가셨나 보구나?" 했더니 "원래 없어요. 육지에 갔대요"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질문을 한 게 뜨끔했다. 실컷 잘 논 뒤 사탕을 준 데 대한 답례로 초콜렛을 주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마구 손을 흔들며 집 안으로 사라진 아이는 우리가 길모퉁이를 돌 즈음 뒤에서 "이모들, 잘 가요"하고 소리친다...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짠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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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