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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를 해외출장으로 보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그 처음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가, 누군가가 자기 블로그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갈 거라고 쓴 걸 보고 생각났다. 맞다. 6년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갈 때가 추석 연휴였지. 그땐 블로그에 추석 인사라고 보름달 사진도 띄우고 그랬는데, 6년 후인 지금은 제네바에서 추석을 보내면서 하늘의 보름달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줄곧 비가 내리고 칙칙한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비가 온 덕분에 엄청나게 큰 무지개를 보았다. 저녁 6시 무렵. 비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띈 무지개. 우연찮게 얻은 선물.  

 

# 며칠 전 열린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Day of General Discussion (DGD)에서, 도중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대목이 있었다. 이전부터 불법 체류자대신 미등록 이주자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그냥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듣기 좋게 고쳐 부르는 완곡어법이려니 했다그런데 회의 도중 누가 지나가는 말로 미등록 이주는 그 자체로 범죄가 아니다. 국경을 넘거나 허가를 받지 않은 나라에 거주하는 것은 기껏해야 미등록, 행정적 위반일 뿐이라고 하는 걸 듣고 아차, 싶었다. 겉으론 보편적 인권에 관심 있는 척 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았건, 내 의식이 그 수준에 불과해서건 간에 미등록 이주자에 대해 주변부의 소수자로 딱지 붙이는 마음이 있진 않았는지...... 

이날 DGD가 끝난 뒤 유엔의 이주민 인권에 대한 특별보고관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계속 살고 일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손을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자 그가 말했다. “방금 목격했듯, 우리는 모두 이주자"라고. 

우리는 모두 이주자라는 그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너와 나는 무엇이 같은가를 생각하고 내가 곧 너인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곁에 오래 머물 수 없을 것이다

 

# 제네바 출장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처음에도, 이번에도 배탈이 났다. 으슬으슬 몸 속을 파고 드는 한기 때문에 계속 웅크리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영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전보다 좀 나아졌지만, (당연하게도) 여전히 종일 영어로 회의하는 게 불편하고 어지럽다. 내가 일하는 단체의 회의까지 겹쳐서 나흘 내리 발표하고,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이번 같은 경우는 특히 더. 이 나이가 되도록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줄이야....인생,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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