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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그린워크 홈페이지에 쓴 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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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열두 살 난 소년 니 레이는 4년 전 초대형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들이닥친 5월의 어느 날을 잊을 수 없다. 그의 고향은 수십 개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라부타 읍이다. 강풍과 호우로 집이 붕괴되자 식구들은 모두 손을 잡고 강둑으로 대피했다. 강둑 위에서도 물이 아빠의 가슴높이까지 차오르자 모두 나무 위로 대피했지만, 강풍으로 나무가 쓰러졌고 그 순간 소년은 아빠의 손을 놓쳤다. 나무에 매달려 밤새 급류에 떠내려간 니 레이는 내리꽂던 빗줄기를 고스란히 다 받은 등이 몹시 아팠고 무서웠던 기억 밖에 없다고 한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뒤 세이브더칠드런의 가족 추적 프로그램을 통해 몇 주 후 누이와 할머니를 찾았지만, 부모와 동생들은 영영 잃고 말았다.


‘기후변화’라는 말을 들으면 녹아내리는 빙하, 갈 데 없는 북극곰을 먼저 떠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기후변화와 아이’라는 제목이 낯설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니 레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기후변화는 미래의 불길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당장 목숨이 오가는 현실적 공포다.


오늘날 기후변화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0년간 재난재해 발생건수는 두 배 이상 늘었고 전 세계 2억5천여만명이 그 피해를 입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19세 미만의 아동이다. 특히 5세 미만 영유아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대부분 최빈국들에서 발생하는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의 원인은 설사나 말라리아, 영양결핍 등 치료와 예방이 가능한 질병들이다. 이 질병들의 공통점은 기후변화로 더 악화된다는 점이다.


우선 말라리아를 보자. 기온의 변화는 토지 사용의 변화, 인구 증가와 결합되면서 말라리아가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도록 만든다. 설사와 수인성 질병도 마찬가지다. 기온이 2도 올라가면 10억~30억의 인구가 식수난을 겪고 설사와 수인성 질병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들 한다. 오염된 물과 이로 인한 설사는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영양실조의 심각성도 빼놓을 수 없다.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의 3분의 1 가량이 영양실조와 관련돼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재해가 늘고 농지 염류화가 진척되고 식량 생산이 줄면서, 영양실조도 날로 심해져 간다.


이 아이들은 불운하게도 자연재해가 잦은 지역에서 태어난 탓에 이런 문제를 겪는 걸까.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예상과 달리 열대성 사이클론에 노출되는 비율은 선진국이 39%, 저개발국이 13%로 선진국이 더 높다. 그러나 선진국의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전 세계 1%에 불과한 반면 저개발국은 81%를 차지한다. 결국 가난한 나라가 자연재해에 더 취약한 이유는 지리적 숙명 탓이 아니라 사회적 보호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그로 인해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것도 결국은 ‘자연’의 공격이라기보다 ‘사회적’ 재난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에서도 최빈곤 가구를 위한 사회적 보호프로그램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과 함께 아동사망률이 높은 최빈국에 기후변화에 강한 보건, 식수, 위생 시스템을 강화하고, 재난 조기경보 시스템을 포함한 방재전략의 강화,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이 기후변화로 큰 타격을 받는다고 해서 단지 무기력한 희생자만은 아니라는 점을 끝으로 강조하고 싶다. 예컨대 세이브더칠드런은 케냐의 학교들에서 클럽을 만들고 한 반에 두 명씩 학생을 선발해 가뭄 대처 요령, 즉 어떻게 얕은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며, 약한 가축을 건사해야 하는지 등을 가르쳤다. 이런 요령을 또래와 어른들에게 전파하는 데 아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지어 태국과 스리랑카에서는 아이들이 정부가 재난방지계획을 수립할 때 아동 관련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성인의 눈높이에서 보지 못하는 위험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에 맞서는 데에서도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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