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사용을 기록하게 한 결과,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실제로 시간을 사용하면서 기록한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그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늘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들이 자기가 실제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과업들인 양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독촉자 노릇을 하는 데에 사용했다. 시간의 사용에 대해서는 기억보다는 기록을 신뢰해야 한다. "

 

    - 피터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에서 -

 

시간 사용에 대해선 기억보다 기록을 신뢰해야 한다는 드러커의 말을 오늘 절감하다.

 

아이폰에 pomodoro 앱을 다운받아서 써보다가, 시간 사용에 대한 내 느낌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데 깜짝 놀랐고, 피터 드러커의 저 말이 떠올랐다. 생각난 김에 집에 와서 책을 꺼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귀퉁이를 접어두었구나. 펼쳐서, 밑줄 쫙~.

 

pomodoro 앱은 25분씩 끊어 시간을 측정해주는 타이머다. 그것 이상의 기능이 더 있겠지만 기계치인 나는 더 살펴보지도 않았다. 다운 받아놓고 쓰질 않다가, 오전에 별로 내키질 않지만 수정해주기로 약속한 논평이 하나 있어서 25분 안에 해치우려고 한번 켜봤다.

 

깜짝 놀랐다. 25분이 그렇게 긴 시간인지 미처 몰랐다. 그동안 내가 어떤 일을 하는 데 쓰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과대평가 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에 내가 한 1시간쯤 일했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실제 측정해보면 10여분에 지나지 않을 거 같다.

드러커의 말대로 무의식적으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낄 뿐, 실제로는 계속 울려대는 문자메시지 알림 (대부분 스팸인데), 전화벨 소리, 자꾸 딴짓을 유혹하는 트위터와 인터넷의 온갖 글들을 기웃거리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는 거다.

 

pomodoro를 켜둔 덕분에 논평 수정은 25분 안에 끝냈고, 그것 말고도 오늘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을 다 끝냈다. 심지어 계획에 없던 일도 하나 더 했다. 나는 점점 치매에 근접해가는 듯한 내 기억력을 신뢰하지 못해 심지어 'oo에게 전화하기' 처럼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죄다 구글 캘린더에 적어두는 사람이라, 캘린더에 적어둔 일을 다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계획에 없던 일까지 추가로 더 하는 건 나한테는 드문 일이다.

 

음....그러나, 하루의 시간을 바짝, 깨알같이 알뜰하게 썼다는 충만감은 있지만, pomodoro 앱을 자주 쓰고 싶진 않다. 바짝 긴장한 상태의 몰입을 도와줄지는 몰라도 그 긴장 상태를 자주 유지하는 게 뭐 그리 좋겠나. 어쩌다 한 번씩 땡길 때만 최선을 다 하면 되지, 늘 최선을 다 하자는 전투자세로 살긴 싫다.

 

드러커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단 하나의 보편적 조건이 시간이라서, 시간의 충실한 관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했지만, 멍 때리며 일 없이 흘려 보내는 시간, 탕진하고 낭비하는 시간 등등, 그런 시간들도 나한텐 소중하다. 

 

지금도 '시간의 충실한 관리'를 하려면 내일 10시에 시작되는 워크숍을 위해 어서 자야 하겠지만, 그것보다 지난해 한국에 놀러온 독일 친구 마틸다가 사다준 예거마이스터를 홀짝 거리면서, 달달하게 헤롱대며 낙서를 끼적이는 시간이 나는 더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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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