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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세계 곳곳의 재난, 위기로 인해 아이들이 곤경에 빠진 상황을 알리는 이메일을 수시로 받는다. 그런 소식을 거의 매일 듣다 보면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에 빠질 때가 있다.

동아프리카를 휩쓴 최악의 식량위기로 케냐와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에서는 긴급구호가 필요한 사람이 12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기아와 물 부족 상태에 시달리고, 중증영양실조로 케냐의 다답 난민캠프 보건시설에 들어온 아이만 해도 올 들어 13천명이 넘는다. 위기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정부와 국제원조기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런가하면 파키스탄과 인도, 방글라데시에서는 대규모 홍수의 여파로, 리비아에서는 내전의 영향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도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이 글을 쓰는 28일엔 네팔에서 열흘 전 발생한 강진으로 피해 지역의 학교가 대부분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지진에 우기 홍수까지 겹쳐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방이 아비규환이지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다수의 구호단체들이 여름부터 동아프리카 돕기 시동을 걸었지만 반응이 저조하다.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둔감해졌기 때문일까? 일대일 결연으로 해외 어린이를 돕겠다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는데?


대규모 재난엔 감성에 호소하는 ‘인식 가능 희생자 효과’가 약해서 그럴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희생자 없이 ‘통계적 생명’으로 간주되기 십상인 대규모 재난의 피해자 구하기엔 사람들이 대체로 무관심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올해 3월 일본 대지진 때 정부가 난색을 표할 정도로 지원이 쏟아진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동아프리카의 위기 등이 이른바 ‘조용한 재난 (Silent Emergency)’이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들에겐 조용할 리 없지만 이 재난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다. 사실 세계를 놀라게 한 초대형 자연재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긴급구호 상황, 특히 분쟁이나 기근으로 인한 재난에 언론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보통 긴급구호 상황이 발생하면 그 직후 모금을 시작하는데, 여론의 주목도에 따라 규모에 큰 차이가 난다. 세이브더칠드런 영국이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태 때 2억 원을 모금하는 데 들인 시간은 단 하루였지만 지난해 니제르 식량위기가 발생했을 땐 같은 금액을 모으기까지 49일이 걸렸다. 긴급구호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있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재난 발생 직후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긴급구호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대상은 어린이들인데, 재난이 발생한지 36시간이 지나면 생존율이 절반으로, 72시간이 지나면 10% 미만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조용한 재난’ 상황일 때 이 10% 미만에 처한 아이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극심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재해 발생 빈도가 급증한 상황에서 이제 긴급구호는 ‘일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If)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When)의 문제가 되었다. 현재 분쟁과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 150명 중 한 명꼴인데 그 중 절반은 아이들이다.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넘어서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영국, 호주, 이탈리아 등에서는 미리 기금을 적립해두었다가 자연재해나 식량위기 등이 발생할 때 피해를 입은 어린이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신속한 피해 복구와 재활재건 및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긴급구호아동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같은 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곳간을 미리 채워 미래의 재난에 대비하자는 긴급구호아동기금은 사태 발생 직후의 여론과 감성적 호소에 크게 좌우되는 기존 관행으로 보면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해결하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이게 하려면 어떤 방식이 나은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긴급구호도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때가 되었다.

오늘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 가기)
긴급구호아동기금 참여하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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