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브레인붓다 브레인 - 6점
릭 핸슨 & 리처드 멘디우스 지음, 장현갑.장주영 옮김/불광
 

나는 깨달음, 명상 같은 단어들에 약간 거리감을 느끼는 터라, 어쩌다 한 번씩 참석하는 독서 모임에서 고른 책이 아니었더라면 '붓다 브레인'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고 절절 매던 때
, 명상에 관심을 쏟은 적이 있었지만 도무지 몸에 붙지 않아 관뒀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책들도 한 때 탐독하다 흥미를 잃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승려가 종교에 귀의한 덕분에 누리고 있다고 믿는 행복은, 그가 어쩔 수 없어서 도로청소부가 되었더라도 누릴 수 있었던 행복에 불과하다"고 썼다. 규칙적 수도생활에 쫓겨 자신의 '영혼'을 잊어버린 덕분에 행복해질 수 있었을 거라는 거다. 나는 이 말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문제 삼아 불행해진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자기 마음을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관심을 자기 외부로 돌려야만 하지 않을지. 빅터 프랭클은 "자기 아닌 타인 또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일 때에만 나도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썼다. "자기실현은 자기초월의 부산물"로서만 나타나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손에 넣을 수 있는 표적이 아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과도하게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희망, 행복, 자기존중,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주장들도 나는 좀 불편하다.

'붓다 브레인'은 그렇게 내가 삐딱하게 바라보던 마음 다스리기, 즉 괴로움을 어떻게 다스리고 평정심은 어떻게 찾을지 등을 뇌 과학, 심리학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한 책이다. 반쯤은 귀가 솔깃했고, 반쯤은 여전히 미심쩍다.

먼저 솔깃한 대목부터. 이 책의 골자는 뇌가 마음을 지배하지만, 마음 다스리기를 통해 뇌에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전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외운 런던 택시기사들의 뇌 구조 중 시각-공간 기억의 중추인 해마가 일반인들보다 크듯, 정신적 활동은 실제로 뇌의 신경 구조를 새로 만들어 낸다. 특정한 경향의 생각을 자주 하면 뇌 속에 그런 시냅스가 활성화된다. 실패를 떠올리며 가혹하게 자신을 비난할수록 부정적 사고방식이 몸에 배겠지만, 같은 기억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기억의 씨실과 날실 사이로 그 영향이 스며들어 생각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 경향으로 치닫는 뇌의 작동에 대한 설명도 쉽고 재미있다. 나도 새로 길을 닦듯, 긍정적 생각 훈련으로 뇌 속에 긍정의 길을 트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이제 미심쩍은 대목. 진화과정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도록 세팅된 두뇌의 작용을 바꾸는 요령으로 이 책이 주로 제시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신경 심리학자이자 명상 지도자인 저자들은 각 장마다 다양한 연상의 방법과 마음 챙김, 명상과 이완의 요령을 소개한다. 가령 부교감신경계를 자극하면 이완이 가능한데, 그 방법으로 심호흡과 입술 만지기를 들려준다. 입술을 만지면 부교감신경계를 자극하여 마음을 진정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내게도 뭔가 불안할 땐 입술을 만지는 버릇이 있다. 의식하지 못한 소소한 행동에 그런 기능이 있다니.

하지만 대체로 이완하고, 좋은 느낌과 경험을 떠올리고, 집착하지 말라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조언을 읽다 보니 나중엔 '운동은 몸에 좋다'처럼 하나마나한 말로 들려 별로 와닿지 않았다. 예컨대 연민의 신경망 강화를 위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조언하는데, 그런 말을 듣자마자 "진정한 사랑? 진정의 기준이 뭐지?"하는 생각부터 자동으로 떠오르는 나 같은 인간에겐 이런 주문이 효용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책을 읽은 소득이 있다면 다시 오래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는 거다
. 이 책에선 하루에 한번 이상 찾을 수 있는 쉼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쉼터는 경계를 내려놓고 과도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사람일 수도 있고, 공간 또는 행위일 수도 있다. 내 쉼터는 뭘까 생각해봤는데 답이 금방 떠올랐다. 내 쉼터는 '혼자 오래 걷기'. 약간 빠른 걸음으로 오래 걷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잡다한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책에서 '쉼터'에 대한 질문을 읽고 난 뒤 이틀에 한 번 꼴로 한 시간 이상 걷기를 하고 있다. 오래 안 하던 운동을 다시 하느라 뻐근하지만, 몸의 세포들이 아우성을 치며 다시 깨어나고 예전에 도보여행을 할 때처럼 홀로 충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좋다. '혼자 오래 걷기'를 시작하고 난 뒤에 책의 마지막 장 '자아 내려놓기'를 읽었는데 거기엔 '걸으면서 몸을 수용하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무엇을 알아차리고 느끼라는 지침들이 가득한데, 이런 지침들을 전혀 모르고서도 오래 걷기를 하면서 '자아 내려놓기', 즉 스스로를 잊기가 조금은 가능했다. 의도하지 않고도 '걷기 명상'을 했달까. 고로, 뇌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싶고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게 이 책의 제안에 대한 내 맘대로의 결론이다.

 

덧말 1.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 저자가 대학 때 요세미티에서 추운 날씨에 1800미터 고지에서 달랑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길을 잃었을 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순간, 예기치 않게 강렬한 감각이 엄습했다. 마치 야생동물이 된 것처럼, 한 마리 매처럼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반드시 여기서 살아 돌아가리라는 격렬한 결의였다...(중략)...나는 그때의 느낌을 잊어본 적이 없으며, 힘이 필요할 때면 그때의 기억에 의지하곤 한다."
내가 강한 존재라는 걸 몸으로 기억하기. 그 신체적 감각을 가끔 떠올려 보는 게 정말로 힘이 된다. 다행히,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덧말 2. 독서모임 중 어떤 상태일 때 '몰두' 또는 '집중'의 경험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사람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과제를 하면서 약간 이완된 상태가 되어야 집중이 잘 된다고 했다. 나는 정반대로 약간 버거운 과제를 수행하는 긴장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집중이 되는 쪽이다. 사람마다 정말 다르다는 걸 실감...

신고

'나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나와디의 아이들  (4) 2013.11.05
나의 서양음악순례  (12) 2013.03.03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  (6) 2013.01.28
명상을 모르는 자의 명상  (5) 2011.06.19
명랑 ' 빵잽이 '의 웃음  (12) 2011.06.14
내 젊은 날의 숲  (17) 2010.12.13
위즈덤-얼굴의 스펙터클  (11) 2009.10.20
도마뱀에게 속삭여라  (20) 2009.10.06
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