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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와 ‘위대한 탄생’에 열광하는 사람과 장안의 화제인 그 두 TV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사람이 만났다. 오랜 친구인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A: 백청강 정말 대단하지 않아? 걔가 이기니까 기분 좋더라.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B: 흑룡강은 알겠는데 백청강은 또 뭐냐?

A: ……농담이라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 돌 맞을라. ‘위탄’ 안 봐? ‘나가수’는?

B: 안 봐. ‘나가수’로 뜬 임재범 노래는 나중에 들었지. 잘하대. 근데 꼭 그런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 해? 나는 정말 싫던데.

A: 서바이벌 게임이야 형식일 뿐이고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하니까 그 자체로 즐기는 거지. 워낙 잘하잖아.

B: 그럼 노래만 즐기면 되지 옥주현이 나올 자격 있네 없네 트집 잡는 이유는 뭔데? ‘음악여행 라라라’같은 프로그램도 결국 없어졌잖아. 노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서바이벌 예능’에 열광하는 거야.

A: 서바이벌 예능에 열광한들 그게 뭐 어때서? 경쟁은 인간 본성인데 서바이벌 게임을 좋아하는 게 왜 문제야? 자연 선택 앞에서 이기는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경쟁 속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연변 청년, 상처 많은 남자가 스타, 영웅이 되니까 감동하는 거지.

B: 공정은 무슨…… 평가하고 단죄하는 쾌감을 즐기는 건 아니고? 게다가 경쟁이 본성이라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단정할 순 없지. 사람은 진화해온 대부분의 시간을 물질 분배가 평등한 수렵, 채집사회에서 보냈고 본성도 그때 주로 틀이 잡혔는데, 그런 사회에선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되레 사람은 본능적으로 경쟁을 싫어할지도 몰라. 솔직히 말해 봐. 너는 경쟁이 좋아? 이기는 게 좋지, 경쟁하는 상황이 좋은 건 아니잖아?

A: 내가 경쟁하는 건 별로지만…… 남들 경쟁 보는 건 재미있잖아? 그게 뭐가 문제냐고! 사람들은 승자, 패자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 ‘위탄’이나 ‘나가수’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와 인기 드라마를 좋아하는 게 내가 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아. 영웅이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미인을 얻는 이야기들 생각해봐. 그것도 결국 다 서바이벌 게임 아냐? 모든 감동적인 이야기는 서바이벌 게임의 구조를 갖고 있어. 사람들은 거기서 생존의 전쟁터에서 필요할지도 모를 정보를 얻는 거야.

B: 하지만 내 말은 왜 점점 더 경쟁이 모든 분야에서 심해져만 가느냐는 거야. 요즘은 아나운서도 오디션으로 뽑고 '나는 작가다‘로 소설가 지망생도 줄 세우잖아.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무한경쟁의 압박이 너무 사람들을 몰아붙여서 심성이 거칠어진 게 아닌가 싶은 거야. 줄 세워서 순위 매기고 탈락시키는 예능에 열광하는 자기 마음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고.

A: 비약하지 마. 서바이벌 예능에서 경쟁 상황을 자꾸 만드는 건 요즘 뭐가 더 심해져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좋아해온 승패의 스토리를 압축해서 주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야.

B의 말문이 막힐 즈음, 둘의 논쟁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던 식당 점원이 “손님, 계산 먼저 해주세요”하는 바람에 둘은 서먹하게 헤어졌다. 며칠 뒤 둘은 우연히 마주치게 됐는데…….

A: 아, 정말 힘들어 못살겠다. 회사에서 중국 후발주자가 곧 따라잡네 어쩌네 하며 볶아대는 통에 살 수가 있어야지. 난 그 ‘세계화’, 정말 싫다. 내가 우리 동네 미인만 하면 되지 왜 전 세계 미인과 경쟁해야 되냐고! 점점 더 승자독식인데 경쟁자는 늘어가니……

푸념을 늘어놓던 A와 B의 눈이 문득 마주쳤고, 둘은 입을 다문 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우정이 서먹해질 위기를 넘기고 의견 일치를 본 거였다. 현실 세계의 경쟁은 이야기도, 감동도 없이 팍팍해져만 간다고……

---  오늘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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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log.naver.com/inheek22 nabi 나야말로 흑룡강만 아는 사람이라서리..ㅎㅎ
    점점 세상은 제 정신을 지키며 살기가 어려워지는 거 같지요?
    정신없이 내달리는데, 어디를 향한건지...
    2011.05.31 11:5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그러게요. 내달려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면서 말이지요.. 2011.05.31 23:54 신고
  • 프로필사진 lebeka58 그쵸~~ 경쟁에 중독된건지 아니면 피말리는 경쟁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즐기는건지~~ 저두 B친구말에 동감이어요. Project Runway라는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은 후, 이 컨셉 배낀 거 정말 신물나게 많아서 완죤 짜증이 ~~ '나가수'의 경우 이미 다 자기 빛깔로 노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데 , 뭘 기준으로 줄을 세운다는 건지요. 메니저라는 사람들이나, 청중들이 젼문성이 있는 사람들두 아니더만요. 기도 안차는 프로란 느낌이 살알짝~~ 들더라구요. 2011.05.31 23:3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ㅎㅎㅎ B에 동감하시는군요. 오늘 후배가 저더러 A와 B중 어느쪽이냐 묻길래, 전 계산 먼저 해달라는 점원이라고 대답했어요.^^
    전 '나가수'를 안봐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인지 잘 모르지만(제가 안보는 건 순전히 고장난 TV 고치기 귀찮아서입니다 ^^;) 주변에 참 괜찮은 친구들이 그거 보면서 열광하는 걸 보고 이런 소재로 글 써볼 생각을 하게 됐지요.
    2011.05.31 23:53 신고
  • 프로필사진 Yeti "경쟁의 총량" 보다는 "경쟁의 집중도"의 문제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선택하기를 포기하고 일단 뛰어야 하니.. 그래서 전.. 승자라도 행복했으면.. 좀 더 바란다면, 다양한 곳에서.. 행복한 승자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2011.06.02 01:4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다양한 곳에서..행복한 승자", 좋은 말씀이네요.. 2011.06.03 00:5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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