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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근처 이바라키 시에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빛의 교회를 찾아갈 때였다. 길을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주택가였지만 유명한 건물이니 표지판 같은 건 있을 줄 알았다. 아니면 교회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높은 십자가라도.


웬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모양인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안도 다다오”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따라오라며 길을 보여주었다. 가까이에서 봐도 교회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지판은 없었다. 노출 콘트리트 담벼락에 그저 ‘일요일은 교회에’라고 적힌 크지 않은 표어가 붙어있을 뿐이다.

 

 

육중한 미닫이문을 열고 교회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천장에 등도 없고 어둑한 공간을 비추는 유일한 빛은 정면 벽에 뚫린 십자형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십자가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빛의 십자가는 크고 압도적이었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가로세로로 기다랗게 교차하는 창을 뚫어놓았을 뿐이지만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 십자가는 다른 교회나 성당의 대형 십자가보다 더 위엄 있고 경건했다. 

예배당 안엔 난방 시설도 따로 없이 석유난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안도 다다오가 빛의 십자가를 착안하게 된 계기는 극도로 부족한 예산이었다고 한다. 교회 신자들이 모아 준 건축비가 "너무나 안쓰러운 수준"이었던 탓에 단순한 박스형 공간으로 최대한 종교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1년을 고심해 내놓은 설계였다. 

십자가 창을 통한 안과 밖의 뚫림이 주는 느낌은 묘했다. 빛의 십자가로 어둑한 공간을 그 어느 곳보다 종교적 느낌이 강한 수도원의 분위기로 만들어 내면서도, 동시에 그 앞에 무릎꿇은 사람에게 '구원은 저 밖에 있나니, 밖으로 나아가라'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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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marx.co.kr/blog 로뿌호프 안도 타다오는 진정한 교회의 의미를 아는 사람 같아요. 조금 감동적이었습니다. ^^; 2010.03.09 11:21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이전에 종교건물건축을 해본 적이 있지만 이 교회처럼 신자들의 공동체적 열망이 강한
    종교건물을 건축해보는 것이 자기 꿈이었다고 하더군요.
    열악한 환경과 천재의 꿈이 만나 작품을 이룬 셈이죠.
    2010.03.09 23:4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zizukabi.blogspot.com 지저깨비 외부 회의가면서 글과 교회 사진을 보고서 감동받아서, 회의끝나고 같이 회의하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였답니다. 정말 멋있는 교회같습니다.
    저녁에는 어떻게 예배를 보냐는 질문도 나오더군요. ^^
    2010.03.09 11:4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 벽에 작은 등이 달려있는 게 사진에서 보이실겁니다.몇개 안되지만..
    그렇게 어둑하게 밝혀놓고 달빛 십자가 아래서 기도하는 맛도 괜찮겠지요.^^
    2010.03.09 23:43 신고
  • 프로필사진 lebeka58 부족한 예산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라니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케하네요.맞아요, 풍요로움이 항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건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많이 보아왔어요. 2010.03.09 12:4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풍요로워 부족한 게 없으면 창작의 의지도 줄어들 수 있을 듯해요 2010.03.09 23:49 신고
  • 프로필사진 Playing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주위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제 자신이 조금 부끄..;;
    매일 떠오르는 빛만으로도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운 지 알 수 있는 거 같습니다다
    한 줌의 흙이나 빛에도 희망이 있는 거 같아요 ^^
    2010.03.09 13:04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되레 playing님 댓글읽고 저도 생각하게 되네요.
    빛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뭘 더 바래! 하고요 ^^;
    2010.03.09 23:4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lwin.tistory.com 엘윙 독특하군요.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이 구원의 손길같이 보여요. (구원이 필요한 늙은 양입니다. -_ㅜ)
    근데 비가 오거나 바람불면 춥겠는데요. 크크.
    2010.03.09 21:4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책에 보니까,
    저 단순한 건축물도 짓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그럼 지붕 얹지 말고 열린 하늘로 놔두자 그랬대요.
    비가 오면 우산받고 예배보고 그러다가 돈 생기면 나중에 지붕얹으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요.^^
    사진의 장의자들도 공사장 비계로 쓰이는 참나무 판자로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꽃다운 엘윙님께서 늙은양이라시면....저는 뭐란 말입니까....털썩....ㅠ.ㅠ)
    2010.03.09 23:54 신고
  • 프로필사진 마음산 미식여행이라시더니 ㅋ 안도 다다오까지...^^
    산나 님은 달라도 달라...음...달라!
    2010.03.10 11:1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뭘 달라굽쇼? ^^ 2010.03.10 12:07 신고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0.03.10 14:04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한때는 자기밑에서 배우는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단 야그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음 ^^
    권투선수 출신한테 맞으면...거의 듁음일 듯...
    2010.03.10 19:26 신고
  • 프로필사진 사복 음.. 진짜.. 빛이... 빛이... 참 감동적이네요... 2010.03.14 16:1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다른 사진을 보니 안밖의 명암대조가 강한 날에는 저 빛이 바닥에도 십자가를 만들더군요. 2010.03.14 16:25 신고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0.04.05 13:01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네. 출처만 밝히시면 괜찮습니다.^^ 2010.04.05 14:23 신고
  • 프로필사진 초록 빛의 교회를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전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우연히 책을 보다 안도 타다오씨의 건축물 사진을 보고 반해버렸거든요. 감사히 담아가겠습니다.^^ 2010.05.05 23:2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coffeebreak.tistory.com Alex Han 저도 올 여름 나오시마부터 오사카까지 돌 예정입니다.
    '구원은 저 밖에 있나니, 밖으로 나아가라'.. 안과 밖을 연결하는 십자가, 정말 탁월한 시각이십니다.
    더 빨리 보고 싶어졌습니다^^
    2010.06.19 02:5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와~ 좋으시겠습니다.
    참고로 빛의 교회는 예약을 하고 와달라고 부탁하는 곳이구요.
    전 시간이 안맞아 못갔는데, 물의 절 꼭 가보세요. 사진만 봐도 환상적입니다.
    2010.06.19 12:1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fazer-um-bolo.jogosloucos.com.br jogos de fazer bolo 미식여행이라시더니 ㅋ 안도 다다오까지...^^ 2011.09.11 18:5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이 댓글을 보니 책 받았다고 다신 댓글이 스팸은 아닌 것같은데요...
    이름에 링크된 사이트도 좀 이상하고요.
    2011.09.15 23: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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