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체 알뜰한 지출과 거리가 먼 인간인 건 잘 알고 있지만, ‘위즈덤 Wisdom’은 덜커덕 질렀다가 눈에 띌 때마다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쥐어박게 만드는 책이다.

책이 나빠서가 아니다. 책값이 무려 10만원(!)인데도 눈 딱 감고 덜커덕 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서는 절반 값에 살 수 있더라는…ㅠ.ㅠ

번역서가 원서보다 비싸다는 거야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워낙 비싼 책이다 보니 1만5천 원짜리 책의 번역서를 3만원에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보이는 거다. 게다가 이 책은 사진이 ‘앙꼬’라 번역서의 이점이 별로 크지 않다. (번역자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를…) 아으~ 속 쓰려…...


각설하고,

가격을 일단 잊어버리면, 소장해둘만한 멋진 책이다.
65세 이상의 세계 저명인사들이 들려주는 삶의 조언과 함께 이들의 사진을 수록했는데, 이 사진들은 사람의 얼굴이 얼마나 스펙터클하며 잔주름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삶의 흔적이 담겨 있는지를 보여준다.
(위의 주디 덴치 사진은 원서의 표지. 알라딘 책 정보에서 책 이미지 미리 보기를 하면 출판사가 공개한 몇 장을 훑어볼 순 있다)

모두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노인들이지만 똑같이 하얀 배경에 입술 주변의 미세한 잔주름, 콧등의 모공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얼굴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이 사진들에서 주름의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배우들만 보아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주름은 선이 길고 완고한 반면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턱과 목주름에 잔물결처럼 퍼진 주름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의외로 주름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란 로버트 레드포드의 나이 든 얼굴은 모난 데가 없이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워 보여서 이 사람은 살아오면서 많이 웃었고 지금도 편안하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에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젊은이의 매끈한 얼굴이나 갓난아기의 얼굴에서 이런 드라마를 포착하기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화가 척 클로스의 말은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이 보여주는 드라마의 성격을 압축해놓은 듯하다.  

“평생 웃는 사람은 웃을 때 생기는 주름살을 간직하고 있어요. 평생 얼굴을 찌푸린 사람은 미간에 주름이 있고요. 어떤 경우에는 두 개가 다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굴에 두 가지 삶의 체험을 다 간직하고 있어요. 얼마만큼의 비극과, 아주아주 행복한 너무나 아름다운 순간. 삶이란 그렇게 이중적인 거니까요. 나는 그중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노인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들은 사실 우리가 다 아는 내용들이다. 스스로를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말 것, 순간을 껴안을 것, 포기하지 말 것, 실수를 심각하게 다루지 말 것 등등...... 온갖 종류의 자기계발서에서 반복되는 흔한 조언들이지만, 실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경험이 스몄다는 점에서 말의 무게는 꽤 묵직하다. 하지만 지혜로운 조언보다 내가 더 크게 공감 가는 대목은 나이가 들어도 결코 우리는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이를테면 노벨상을 탄 작가 나딘 고디머의 다음과 같은 말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것에서 손을 떼고 맘 편하게 뒤로 물러나고 절로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착각이 없더라고요. 노년이란 두 번째 사춘기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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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