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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준마의 힘은 그 말이 적당한 때에 딱 정지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밖에는 더 잘 알아볼 것이 없다. 분수 있는 사람들 중에도 줄기차게 말하다가 그만 끊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이야기를 끝낼 계기를 찾고 있는 동안, 그들은 마치 허약한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꼴마냥 횡설수설하며 이야기에 질질 끌려간다.

 - “몽테뉴 수상록” 1권 9장 ‘거짓말쟁이들에 대하여’ 중에서 -

 

말 많은 사람에게 고문당한 날. 상대의 눈을 마주 보며 경청하기를 포기하고 휴대전화를 열어도 보고 다른 쪽을 쳐다봤다가 물 한 잔 더 달라고 소리를 치는 등등 온갖 산만한 몸짓을 해대며 ‘이제 그만 좀 입 다무실래요?’하는 신호를 줘도 상대는 아랑곳 않고 제 말만 한다.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대놓고 그만 말하라고 쏘아붙이기도 어렵다. 결국 말 자르기를 포기하고 나니 상대방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입술만 눈에 띈다. 저렇게 구강근육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왜 두툼한 입술은 다이어트가 안 되는 거지?


질린 기분으로 돌아와서 이달 말까지 해야 하는 어떤 글을 쓰던 도중, 별 생각 없이 비슷한 표현을 줄줄이 늘어놓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말 많아 피곤했던 정오의 만남이 떠오르다. 이런, 나도 다를 바 없잖아…. 찬찬히 살펴보니 전부 지워버려도 뜻의 전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문장들 뿐 아니라 ‘기회를 움켜쥐었다’ ‘온갖 상을 휩쓸면서’처럼 진부한 표현 일색이다. 왜 만날 기회는 움켜쥐고 상은 휩쓰느냔 말이다. 사고의 게으름을 진부한 표현으로 위장하지 않으며 적당한 때에 딱 정지할 수 있는 힘. 한 마리 준마와 좋은 말, 잘 쓴 글의 공통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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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지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죠. 글이나 말이나.. 저도 말을 쓸데없이 길게하는 습관이 있어서 고치려고 노력중인데... 가끔 저보다 더 길게 자기말을 오래 늘어놓는 사람을 만날때마다 더 반성이 되더라구요 ㅋㅋㅋ 2009.10.14 22:5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ㅎㅎㅎㅎㅎㅎ
    너보다 길게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 반성하는 네 표정이 넘 궁금해~
    진짜 웃긴당~ ㅋㅋ
    2009.10.15 23:32 신고
  • 프로필사진 시율엄마 아 선배..저에요..졍이...완전 공감.. 미국넘들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요.. 원래 그런가요? 좋게 말하면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헉... 하여간 말 안하면 나 바보다 라고 광고 하는게 되는 이런 분위기..수업시간에 뭔가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언제 말하지?' '이거 적절한 건가?'라고 생각하다보면 시간이 다 간다는.. 과묵한 동양인으로 기억되는거 싫은데..흑. 2009.10.15 09:3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그거이 나라 차이라기보담 외국어로 말할 때 실수할까봐 넘 걱정해서 그런 듯.
    나랑 같이 세미나하는 사람 중 뉴질랜드 아이가 있는데,
    (아,물론 한국말로 하는 세미나)
    자기 한국말이 우습게 들리고 틀렸을까봐 넘 신경쓰니까 한마디도 못하겠다 그러더라.
    안웃을테니 그냥 말하라고 해도,
    안웃으면 또 '내 말이 얼마나 바보같길래 웃지도 않나...'생각한다는 ^^;
    그러지말고 엣다 모르겠다, 결심하고 아무 말이나 해버려! ^^
    2009.10.15 23:3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happylion.co.kr 즐거운 사자 저....방금 전까지 전화로 고문당하던 참이었습니다.
    정말 난처하고 힘들었습니다. 요샌 이런 일이 왜이리 많은지....깝~깝~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산나님 말처럼 저도 어제 업무회의에서 중언부언했던 것같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OTL
    2009.10.15 13:01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전화는 귀에서 수화기 멀리 떼고 딴 일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마주보고 앉아서 점심 먹던 제 고문 현장은 정말....ㅠ.ㅠ
    2009.10.15 23:37 신고
  • 프로필사진 Gomy '만연체' 문체에 대해 자괴감을 갖고 있는 저에게 확 꽂히는 말입니다 ^^;; 2009.10.15 17:5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글을 보면 그렇지도 않던데요, 뭘
    (근데 새 글은 언제 보여주시렵니까?)^^
    2009.10.15 23:43 신고
  • 프로필사진 lebeka58 산나님과 얘기를 나눴던 분은 어지간히 눈치도 없으시네요, 지루함과 깝깝함으로 완죤 고문당하셨을 모습이 이해되네요. 산나님의 글은 산나님만의 향기가 있어요, 예사롭지 않은 시선과 신선한 표현 글구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이 넘 좋아요. 2009.10.15 18:1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넴.정말 눈치코치없는....
    (설마 그 눈치없는 분께서 이 블로그까지 찾아오진 않겠지요? 너무 흉을 봐서 부들부들~^^;)
    2009.10.15 23:4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realfactory.net 이승환 저런 거 싫어했는데 어느 새 저도 저렇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_-; 2009.10.15 23:1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그건 꼰대가 되어간다는 징조인데,
    20대에 벌써? 흠......^^
    2009.10.15 23:4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uyane.kr 토댁 고통을 당할때 혹시 나도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조심해야겠어욤..^^

    날이 찹습니다.
    건강조심하세요~~~
    2009.10.16 09:3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마음씨 착한 토댁님~ ^^ 2009.10.17 23:25 신고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09.10.20 17:38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에 따른다면 네가 아는 사람일수도 ^^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삼~ 다쳐! ^^
    (흉봤다고 내가 다칠 것같아. 블로그는커녕 인터넷 근처에도 얼씬않는 자이긴 하다만 ^^;)
    2009.10.20 21:0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inuit.co.kr inuit 하하 이 짧은 글에도 갖가지 고갱이가 잘 버무려진걸요. 늘 보면서도 글맛이 이리 좋을수가.. 2009.10.21 22:41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에궁~황송스럽게도 무슨 말씀을....^^; 2009.10.22 14:01 신고
  • 프로필사진 스피닉스 ㅋㅋ 절대 공감... 마무리할 타이밍 놓치면 스스로도 대략난감... 끊자니 그렇고 계속하자니 더 그렇고... ㅋ 2009.10.22 09:41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겪은 적이 있으신 듯 ^^;
    제가 본 젤 황당 케이스는,아주 오래전에 세미나에서 말 마무리할 타이밍 놓치고
    길게 횡설수설하던 친구가 갑자기 이렇게 말할 때였어요.
    "지금까지 한 거 다 지우고, 다시 할게"
    #$%*&@%#+%@*!!!
    2009.10.22 14: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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