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담배를 싫어했던 반면, 연합국 측의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가 대단한 애연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했던 히틀러는 건강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 “담배는 적색인종이 백인에게 건 주술이며, 백인이 알코올을 전해준 것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며 금연 운동에 열을 올렸다.

(……)
홀로코스트와 건강지향은 ‘나치 우생학’이라는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인간을 건강한 병력 또는 노동력으로, 여성은 출산력으로만 평가하는 냉철한 실용주의 노선을 관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장애자의 말살이나 열성 유전자 보유자의 단종,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전면 배제’에 쉽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의 암 연구는 건강입국을 목표로 삼은 정권의 전면적 지원 아래 세계 최첨단을 걷는 분야로, 담배는 물론 석면이나 농약, 식품착색료까지 규제 대상이었다. 집단검진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노동의 안전을 배려하고 (다시 말해 위험한 직장에는 유대인이나 외국인들을 배치하고), 예방의학의 시각에서 고기나 당분, 지방의 과잉섭취를 경계하였으며, 채소나 과일 등 자연식품으로 돌아가도록 활발하게 선전했다. 빵집은 통밀 빵을 굽도록 의무화되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포로들은 유기 재배로 키운 꽃에서 꿀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건강지향 풍토와 놀랍도록 비슷하지 않은가!


-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 중에서 -

 

금연을 선언해놓고서도 잘 실천하지 못하는 걸 창피해하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잠깐 눈을 반짝이다 이내 ‘너 친구 맞아?’ 하는 의혹의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흡연을 권장하는 건 아니지만, 금연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니 기분 좋게 피우는 맛있는 담배 한 개비가 훨씬 건강에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담배 끊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그동안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대상에게든 잘 중독되지 않는다고 짐짓 뻐긴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야 애호하는 것을 끊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잔병치레가 잦아졌는데, 한 친구의 권유로 한의원에 다니며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중이다. 내 체질과 맞지 않는다는 금지식품 목록 중 다른 건 그럭저럭 참겠는데 친구의 담배 끊기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느꼈던 건 커피와 맥주였다. 이 두가지를 특별히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생각해보라. 무더운 날 5시간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마시는 시원한 맥주, 비오는 날, 창 넓은 커피전문점에서 좋은 사람을 앞에 두고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그걸 할 수가 없다니…. 찬 물이나 오렌지 주스, 우유 따위로 대체할 수 없는 아우라가 그 장면의 맥주와 커피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식이요법을 스스로 마뜩찮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건강지향을 우습게 여겼던 오래된 편견 때문이다. 이를테면 ‘건강을 위해 싫은 운동도 꾹 참고 하고, 맛없는 음식도 꾹 참고 먹는다’ 류의 태도를 은근히 경멸해왔던 것이다. ‘그저 운동이 좋아 열심히 하다 보니 건강해졌다’의 태도로 살고 싶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병의 고통을 면하고 싶은 로마 청년 마르켈리누스가 운명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상의를 청하자 한 스토아학파의 학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르켈리누스여, 그대가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숙고하는 것같이 애쓰지 마라. 산다는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대 하인들도, 짐승들도 살고 있다” (몽테뉴 ‘수상록’ 2권 13장)

내가 그 청년이었다면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충고를 하는 학자에게 소금을 뿌리며 내쫓았겠지만, 하여튼 나 역시 건강 갖고 유난을 떠는 건 결국 그리 대단치 않은 자신의 운명을 갖고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여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내가 식이요법이라니, 영 편안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다.
지금은 잔병치레와 그에 수반되는 귀찮은 일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제한을 한번 받아들여 실험해보는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지만, 회의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식이요법 탓에 약간 의기소침해진 상태를 한 방에 날려버린 건 아버지의 일갈이다. 부모님이 오셨기에 식이요법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못 먹게 되었다고 투덜대자 아버지가 어디 한번 보자며 내가 먹어도 되는 음식 목록을 유심히 훑어보셨다. 잠시 후 아버지가 거 참 이상한 애 다 보겠다는 투로 던진 말씀은,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의 어머니와 하던 의논을 일거에 정리해버렸다.


“야, 맛있는 것만 여기 다 있구만!  이 정도만 먹어도 되지!”


맞아요. 아버지. 뭘 더 바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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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