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냥...

집앞 감나무

sanna 2008.07.20 15:5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 오는 일요일...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집안은 동굴같다. 동굴에 서식하는 동물에 걸맞게 종일 집에서 뒹굴다.
아파트 2층인 우리 집 창 밖엔 꽤 큰 감나무가 있다.
빗줄기가 제법 거센데 감나무 이파리들은 별로 흔들리지도 않고 빗물을 받아 가만히 흘려보낸다.
저 나무가 없었더라면 여기 어찌 살았을까 싶다. 이 아파트는 대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정도라, 감나무가 없었더라면 우리집선 매일 대로를 오가는 자동차들의 행렬과 건너편 미장원 카페 치과 간판들이나 쳐다보고 있어야 했을 거다.

이파리가 무성한 여름도 좋지만, 눈 내리는 겨울날, 특히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가을날 감나무가 만들어내는 창밖 경치는 그만이다. 문제는 가을날 미처 따주지 못한 홍시감이 바로 아래 보도로 떨어져 재수가 없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감 폭탄을 맞기 십상이라는 점. 이때문에 가을만 되면 그 놈의 감나무 잘라버리라는 민원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랫집과 우리집은 달려나가 감나무를 변호한다. 지난 가을엔 보도 쪽으로 길게 뻗은 가지의 일부를 쳐내는 것으로 간신히 합의봤다. 삭막한 대로변 아파트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큰 공신이 이 나무인데, 자르다니... 그 날로 이사간다.

감나무가 참 좋은 일을 하는구나, 흐뭇해진 순간 내 책상 옆에서 뿌리가 썩어가는 난초가 생각났다. 며칠 전 우유를 마시다 사람에게 좋은 우유니까 난초에게도 좋겠지, 생각하며 난초에게 우유를 먹였다. 그 뒤로 뿌리가 썩는 것인지 냄새가 진동한다. 식물을 잘 키우고 싶은 열망은 강한데 번번이 죽이기만 하는 내 무지와 서툰 손이 안타깝다...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블로그란 '솔로 연습실'  (14) 2008.07.25
전생체험  (6) 2008.07.24
벼락맞아 죽기보다 어려운 대통령 되기  (8) 2008.07.22
집앞 감나무  (19) 2008.07.20
런던의 뮤지컬 '빌리 엘리엇'  (6) 2008.07.20
티스토리 이사완료했습니다  (16) 2008.03.21
폐인의 잡담...  (10) 2008.02.05
잡담  (8) 2008.01.23
댓글
  • 프로필사진 사복 식물이니까 해를 봐도 좋겠지,라는 생각으로... 뜨거운 여름날 물을 함뿍 주고 바깥에 내놨다가 외출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녀석의 참혹한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게 기억이... 흠... '식물을 잘 키우고 싶은 열망은 강한데 번번이 죽이기만 하는 내 무지와 서툰 손이 안타깝다'는 말씀이 몹시 와닿습니다! 저도 완전 그래요... 2008.07.20 18:2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흑~ 이번엔 정말 잘 키워볼라 그랬는데....OTZ 2008.07.20 23:24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realfactory.net 이승환 전 선인장도 죽였습니다. 힘내세요 -.-... 2008.07.20 21:5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전 죽은 선인장 붙들고 얘가 죽은거야 산거야, 정신차렷!하고 물주다가 엄마한테 등짝 맞은 적도 있다지요...ㅠ.ㅜ 2008.07.20 23:2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dodobing.tistory.com 도도빙 우유 ㅡ.ㅡ; 2008.07.20 22:0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정말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우유를 가득가득 부어주었어요. 아이고오~ 2008.07.20 23:26 신고
  • 프로필사진 동생 저는 정말 잘 키웠거든요. 한 8개월...그리고 아무런 다른 짓도 안했는데 몹시 시들시들 죽어가길래 햇볕에 내 준 그날 밤! 집에 와 보니 무슨 자살한 것도 아니고 애가 줄기가 휙 꺾어져서 참혹하게 죽어있더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 망연자실해 있는데 울 시누가 "미안해...내 우산 때문에 그렇게 됐나봐..." 하더군요. 흑흑...
    하튼, 감나무 해결책은, 선배 그거 떨어지기 전 선배가 채집하시는 건 어떤가요? 홍시 진짜 맛나는데...얌냠...
    2008.07.21 11:2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가을마다 아침 저녁으로 홍시만 먹는다는 거 아니니.^^ 2008.07.22 01:05 신고
  • 프로필사진 김종세 저희 아파트 산책길을 오르려면 뒷마당에 있는 무지 큰 감나무를 지나쳐야 하는데, 늦가을 바람부는 날 자신의 운을 시험삼아 아슬아슬 걷는답니다.
    어젠 앞베란다에 놓아둔 화분들을 시원한 갈매기 샤워 시켜줬는데요~~ 화분 바닥이 지저분해서 물청소하다가 지렁이 두마리를 발견하여 바로 베란다 밖으로 막타워 훈련 시켜줬습니다.
    2008.07.21 15:2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말이 재미있어요. 갈매기 샤워, 막타워 훈련 ^^ 2008.07.22 01:06 신고
  • 프로필사진 이쁜이 으악. 그 난초 저의 웰컴 선물 아니에염?
    안돼안왜~~~
    2008.07.21 19:5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여보시게...그건 난초가 아니라네....^^; 2008.07.22 01:06 신고
  • 프로필사진 lebeka58 진짜 저 감나무는 산나님집의 일등공신이네요, 사람도 저 나무 처럼 다른 이에게 위안과 기쁨을
    힘이 되어 줄 수 있지요. 어제 본 <레몬 트리>란 영화의 느낌도 그러했구요 같이 본 지인들과의
    애프터서 나눈 대화도 그랬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나무이고 싶다고용
    2008.07.24 15:4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레몬 트리' 영화, 저도 봐야겠네요.요즘은 무슨 영화가 개봉됐는지도 통 모르고 살아서리...뭘 한다고 이렇게 정신이 없는지 정말 아리송하군요.ㅠ.ㅜ 2008.07.24 20:1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acando.kr/ 격물치지 우리 집도 이층집... 소나무가 있어 좋습니다. 우린 소나무 병풍이라고 부르는데... ^^ 예전 사진이 있어 트랙백 겁니다. 2007년 7월 사진이 참 비슷합니다. 2008.07.24 18:0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우와~사진을 보니 말그대로 소나무 '병풍'이네요! 멋집니다 2008.07.25 00:21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ound4u.tistory.com sound 수산나님!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셨어요?
    아파트 앞에 감나무 멋있는데요. 저는 처음 보구..어디 멋진 배경사진인줄 알았어요.

    전 작은 화분 키우는게 취미인데요. 저도 한동안 많이 죽였는데 (ㅜㅜ)
    요새는 거의 안 죽이고 잘 키우는 편이에요. 비결은 '흙이 적당히 말랐을때 물주기'에요. 너무 많이 줘도 안되고 너무 자주 줘도 안되더라구요. 중간을 지키기가 어려운데.. 적당히 말랐을때 주기하면 안 죽고 다들 잘 자라더라구요.

    블로그랑 책이랑 두개 다 쓰려면 힘드실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돌아오셔서 좋은 글 써주시니까 너무 반갑고 좋아요. '건필!'하세요..
    2008.07.31 11:4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anna 아,그렇군요. '흙이 적당히 말랐을때'! 캄사합니다~.^^ 근데 난초화분은 흙도 아니고 작은 자갈들인데, 얘네들은 맨날 말라있는데..적당히 말라있는지를 어떻게 알아차리죠? 2008.08.01 20:32 신고
  • 프로필사진 뽀오 저희는 옆집에서 감나무를 자르지않아 옥상까지 이파리 날려서 쌓이고 아주 냄새부터 고생이네요 그러고도 낯짝이 두꺼워서 안자르고 버팅기다 몇번 싸웠어요 어르신들이 올라가서 쳐내다가 옥상에서 떨어지면 어쩔건지 자르래도 대꾸도않고 정말 생각없어보여요 짜증나죽겠네요 2015.06.02 22:22 신고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