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생각쓰기'. 이 밋밋한 제목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제목은 마치 논술대비용 참고서 같다. 이 책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기초 기술, 단어와 문장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할 거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은 ‘글쓰기’보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다뤘다. 원제도 ‘On Writing Well’이다.

그냥 무난히 쓰는 것 말고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이 계속 던지는 질문이다. 저자가 중요하게 삼는 기준은 ‘어떻게 남들만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남과 다르게 쓸 것인가’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잘 쓴 글’이란 꼭 ‘나’를 주어로 삼지 않더라도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다. 이를 위한 글쓰기의 원칙, 태도와 함께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비평 유머 등 각각의 형식에 맞는 글 잘 쓰기의 요령을 소개하고 있다. 번역서라서 예문의 느낌이 둔하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저자의 조언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창작이 아닌 논픽션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두 개의 키워드는 명료함과 온기였다. 명료함이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온기란 글에 글쓴이, 곧 나의 체온을 담는 것이다.


명료함에 대해 저자는 “글쓰기 실력은 필요 없는 것을 얼마나 많이 걷어낼 수 있느냐에 비례한다”고 단언한다. 내 주변에도 형용사와 부사 없이 명사와 동사만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문장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상투적 수식 없이 그런 방식으로 글을 ‘잘’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조금만 써보면 안다. 명료한 문장을 쓰기가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지를 역설하며 저자도 이렇게 말한다.

"명료한 문장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심지어는 세 번째까지도 적절한 문장이 나오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온기란 글에 얼마나 사람이 실려 있느냐의 문제다. 글쓴이의 개성 뿐 아니라 장소와 사물을 다룰 때에도 인간미가 실려야 좋은 글이다.

저자는 “좋은 글쓴이는 글 바로 뒤에서 자신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글에서 ‘나’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를 생각하면서 쓰거나, 초고를 일인칭으로 쓴 뒤 ‘나’를 빼면 비인간적인 문체에 온기가 돌 것이라고 권고한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이유는 되도록 불리한 처지에 빠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며, 쓸 때도 자기 자신을 팔아야" 한다.


저자가 권하는 명료함과 온기는 별개의 과제가 아닐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 알고 쓰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걸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뭘 말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내 생각과 의도가 분명해야, 명료한 문장을 쓸 수 있다. 또 ‘공기처럼 우리 주위를 떠다니면서 언제나 도움을 주려는 친구처럼 기다리고 있는’ 진부한 문구를 없애버려야 글에 나의 체온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글을 시작하고 끝내는 방법, 인터뷰 기술, 여행기 쓰는 요령 등에 대한 쓸모있는 조언들이 많다. 실용적 조언 중 눈에 띄는 두 가지 팁.

인터뷰 기술을 설명하며 저자는 가급적 녹음기에 의존하지 말고 받아 적을 것을 권한다. 일로 인터뷰를 할 때 수첩에 받아 적는 구닥다리 방식을 고쳐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같아 괜히 반가웠다. 받아 적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든다. ‘글 쓰는 사람은 자기 소재를 눈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성긴 문체를 피하는 요령으로 자신이 쓴 글을 큰소리로 읽어보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직접 느껴보라고 권한다. 그래야 글의 리듬이 느껴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가진 연장은 단어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을 독창적이고 조심스레 사용하는 법을 배우자. 그리고 또 하나, 다른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1976년 초판이 나온 이후 영미권에서 30년 동안 여덟 번에 걸쳐 개정을 거듭하며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글쓰기 길잡이 책.



'나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지만 네가 행복하길 바라..  (10) 2008.10.13
검은 고독 흰 고독  (8) 2008.01.27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4) 2008.01.19
글쓰기 생각쓰기  (14) 2008.01.16
지난해 읽은 책 Best 5  (13) 2008.01.09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 2008.01.05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14) 2007.09.20
자기계발서들에 싫증이 날 때  (17) 2007.08.24
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