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 이런 모습 안어울려요.”(비즐리)

“(힘없이 피식 웃으며) 이 꼴이 진짜예요….”(크리스타)

“그래도 난 당신의 관객입니다. …당신은 멋진 배우인데 그걸 몰랐어요?”(비즐리)

- 영화 ‘타인의 삶’에서 술집에서 마주친 비즐리와 크리스타의 대화 -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언젠가 사는 의욕이 안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중이 없으니까 흥이 안나.”

그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었는데, 뭘 잘 해도, 잘못 해도, 지켜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뭘 열심히 하려는 마음도 먹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사람에겐 몇이 됐든 관중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가 말하는 관중이란 ‘친밀한 타인’일 터…. 그의 말이 외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짐짓 난 그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관중이 꼭 가까운 사람이어야 해?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는 말도 있다구.”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탄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낯선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관객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낯선 이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이 서로에게 서서히 침투해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가능할까.

이 영화는 그게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몰래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스스로 변화하고, 상대의 삶을 변화시킨다.


배경은 통일 전 동독. 감시가 일상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눌렸던 그곳에서 비밀경찰인 비즐리는 사찰 대상인 극작가 드라이만, 그의 연인인 여배우 크리스타가 함께 사는 집을 도청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비즐리는 비밀경찰 양성학교에서 잠도 재우지 않고 고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냉혹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좀처럼 사람을 믿지 않는 그가, 도청 대상인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육체를 탐하는 문화부장관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크리스타를 안타까워 하던 비즐리는 급기야 술집에서 마주친 크리스타에게 다가가 “나는 당신의 관객”이라며 제발 망가지지 말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도청 대상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비즐리의 감시는 어느덧 보호로 바뀌고 비즐리는 이들을 몰래 돕기 시작한다.


스릴러적 특성이 가미되고 반전이 거듭되는 영화라서, 혹시 보실 분이 있을까봐 줄거리를 더 자세히 쓸 수가 없다. ㅠ.ㅜ 밑줄을 긋고 싶은 더 멋진 대사가 있지만, 그것도 반전에 속하는 것이라 쓸 수가 없다.OTL

좌우간 강추!!!
연출이나 연기 모두 요란하지 않고 잔잔한 영화이지만, 참 좋다. 뒤로 갈수록 더 좋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눈빛을 지금도 난 잊지 못하겠다. 이렇게 딱딱한(?!) 소재로 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 영화에서 인간말종으로 나오는 동독 문화부장관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일어서면서 나는 사람의 선의에 대한 이 영화의 믿음에 주저하지 않고 동의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그것도 ‘낯선 이의 친절’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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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