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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밑줄긋기

타인의 삶

sanna 2007.03.30 01:16

“관객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 이런 모습 안어울려요.”(비즐리)

“(힘없이 피식 웃으며) 이 꼴이 진짜예요….”(크리스타)

“그래도 난 당신의 관객입니다. …당신은 멋진 배우인데 그걸 몰랐어요?”(비즐리)

- 영화 ‘타인의 삶’에서 술집에서 마주친 비즐리와 크리스타의 대화 -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언젠가 사는 의욕이 안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중이 없으니까 흥이 안나.”

그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었는데, 뭘 잘 해도, 잘못 해도, 지켜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뭘 열심히 하려는 마음도 먹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사람에겐 몇이 됐든 관중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가 말하는 관중이란 ‘친밀한 타인’일 터…. 그의 말이 외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짐짓 난 그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관중이 꼭 가까운 사람이어야 해?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는 말도 있다구.”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탄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낯선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관객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낯선 이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이 서로에게 서서히 침투해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가능할까.

이 영화는 그게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몰래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스스로 변화하고, 상대의 삶을 변화시킨다.


배경은 통일 전 동독. 감시가 일상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눌렸던 그곳에서 비밀경찰인 비즐리는 사찰 대상인 극작가 드라이만, 그의 연인인 여배우 크리스타가 함께 사는 집을 도청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비즐리는 비밀경찰 양성학교에서 잠도 재우지 않고 고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냉혹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좀처럼 사람을 믿지 않는 그가, 도청 대상인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육체를 탐하는 문화부장관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크리스타를 안타까워 하던 비즐리는 급기야 술집에서 마주친 크리스타에게 다가가 “나는 당신의 관객”이라며 제발 망가지지 말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도청 대상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비즐리의 감시는 어느덧 보호로 바뀌고 비즐리는 이들을 몰래 돕기 시작한다.


스릴러적 특성이 가미되고 반전이 거듭되는 영화라서, 혹시 보실 분이 있을까봐 줄거리를 더 자세히 쓸 수가 없다. ㅠ.ㅜ 밑줄을 긋고 싶은 더 멋진 대사가 있지만, 그것도 반전에 속하는 것이라 쓸 수가 없다.OTL

좌우간 강추!!!
연출이나 연기 모두 요란하지 않고 잔잔한 영화이지만, 참 좋다. 뒤로 갈수록 더 좋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눈빛을 지금도 난 잊지 못하겠다. 이렇게 딱딱한(?!) 소재로 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 영화에서 인간말종으로 나오는 동독 문화부장관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일어서면서 나는 사람의 선의에 대한 이 영화의 믿음에 주저하지 않고 동의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그것도 ‘낯선 이의 친절’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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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narang.tistory.com narang 저도 좋게 봤던 영화예요. 주위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꼭! 보라고 강추하고 다닌답니다.
    그동안 눈으로만 열심히 방문하다가 글 남기게 됩니다.
    2007.03.30 08:5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네. 저도 자발적 '강추' 홍보단이 되어 마구 추천하고 다닙니다~ ^^ 2007.03.30 19:1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realfactory.net 이승환 올해 본 영화중에 최고였습니다. 아저씨 눈빛 연기가 장난 아니에요 ㅠ_ㅠ 2007.03.30 15:0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저 아저씨 튀지않게 연기 참 잘하죠? ^^ 2007.03.30 19:1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dangunee.com 당그니 아..보고 싶어지네요 ㅜ.ㅜ. 300 보다는 훨씬 낫겠군요. 2007.03.31 00:4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엇. 방금 전에 다녀가셨군요.^^ 300을 제가 아직 못봐서리...주말에 300보고 뭐가 나은지 말씀드릴께엽~ 2007.03.31 00:4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odernboy.egloos.com 근대소년 저도 주변에서 하도 칭찬을 하길래 보러가려고 했으나.....혼자 극장가기가 뻘쭘하여.....어둠의 경로를 이용해서 받아놓았는데.....막상 못 보고 있답니다. 2007.03.31 18:5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서두르시지 않으면 종영할지도 몰라요~ 전 대부분의 영화를 혼자 보는데, 그거 익숙해지면 안 뻘쭘해요. ^^ 2007.04.01 01:1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odernboy.egloos.com 근대소년 물론 극장에서 보면 좋겠지만 아직도 극장에 혼자 갈 용기가 없답니다. 불혹의 나이인데도요.....더도 덜도 말고 '사이드웨이' 정도의 감동만 있음 좋겠습니다. 2007.04.01 22:2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사이드 웨이'도 참 좋죠? 근데 이 영화는 '사이드 웨이'랑은 결이 많이 다른 것같습니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사이드 웨이'가 따뜻하고 쾌활한 쪽이라면, 이 영화는 말수는 적지만 이해심 깊은 사람 쪽이라고나 할까요~ ㅎㅎㅎ 2007.04.03 20:3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inuit.co.kr inuit 흠.. 이 영화 왠지 보고 싶을듯 해서 그냥 주르륵 스크롤 내리고 안 읽었습니다. ^^;
    나중에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007.04.01 11:2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이누잇님 보시기 전에 종영하진 말아야 할텐데.....(두근두근~) ^^ 2007.04.03 20:24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lwing.co.kr 엘윙 안녕하세요. inuit님 블로그 타고 왔습니다. 저도 이 영화 보고 싶군요.>_< 이번주말까지 상영하려나. ㅇ-ㅇ;
    친구분에게는..관중이 많으면 뭘해도 부담스러울때도 있다고 전해주세욧!
    2007.04.04 11:4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아~ 이누잇님 블로그에서 엘윙님의 발랄한 댓글 저도 즐겨 봤답니다~ 반가워요 ^^ 그 친구 지금은 못보고 지내서리.....오다가다 우연히 만나면 엘윙님 조언 꼭 전해드리죠. ㅎㅎㅎ 2007.04.04 22:1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ohnul.com 미래도둑 뭣 때문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이 포스팅이 제 고민을 한 방에 풀어주네요. 오늘 느닷없이 여기 들어온 이유를 발견하고 갑니다. 2007.04.04 18:4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흠...이 포스트가 한 방에 풀어버린 고민이 대체 뭘까요... 호기심 모락모락~~~ 2007.04.04 22:19 신고
  • 프로필사진 사복 이누잇님과 동감...
    저도 올때마다 스크롤 쭈르륵...;; 이랍니다...;;
    2007.04.05 18:24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사복님도 좋아하실 영화일 듯. 꼭 보세요~~~ 2007.04.08 10:3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lwing.co.kr 엘윙 왠지 트랙백걸기가 부끄러웠지만 susanna님 글을 보고 선택한 영화라서 걸었어요. 흣! 원츄!! 2007.04.07 22:4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susanna 엘윙님께 좋은 영화를 권해드렸다는 뿌듯함 하나로도 오늘 하루, 보람찬 하루임돠!!! ^^ 2007.04.08 10: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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