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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를 앞에 놓고) 보세요. 그녀는 웃고 있어요. 그녀는 행복할까요? 행복해 보이기만 하면 그걸로 된 건가요?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니에요.”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이혼의 위기에 처한 베티가 엄마에게-

여성판 ‘죽은 시인의 사회’ 격인 ‘모나리자 스마일’(DVD·컬럼비아)은 기대와 달리 메시지가 전면에 앞서고 드라마는 메말라 서걱대는 영화였다. 심드렁하게 DVD를 보다가 ‘모나리자’의 미소를 빗대 엄마에게 자신의 불행을 알리려 애쓰던 베티의 말을 듣는 순간, 좀 이상했다. 나는 ‘모나리자’가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미적 수준이 낮은 내 눈엔, 눈썹도 없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좀 괴상하기도 했고 어떨 땐 슬퍼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모나리자의 미소’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미소의 수수께끼에 대한 온갖 해석이 줄을 잇는다. 다빈치의 자화상이라는 설, 임신 중인 여자라는 설, 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어머니라는 설…. 가장 황당한 해석은 이탈리아 치과의사의 주장인데, 원래 이를 가는 버릇이 있는 여자가 오랜 시간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다빈치의 모델 노릇을 하느라 더 신경질적으로 이를 갈아 입 모양이 그리 됐다는 설이다.

과학자들이 최근에 내놓은 분석은 ‘모나리자’를 볼 때 빛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혼란을 두뇌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소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 위에 필터를 겹쳐놓고 빛의 입자와 비슷한 ‘비주얼 노이즈’를 입술 끝부분이 올라간 것처럼 흩뿌려 놓은 뒤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모나리자가 행복해 보인다는 응답이 나온 반면, ‘비주얼 노이즈’가 입술을 일자로 보이게 하면 슬퍼 보인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같은 대상이 행복하게 혹은 슬프게 보이도록 시각을 교란하는 빛의 필터가 일상생활에서 개인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두고 비관적인 사람은 ‘물이 반밖에 없다’고 보지만 낙관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본다. 마음 다스리기, 자기혁명에 대한 온갖 실용서들의 공통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부추김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얼마 전 외신보도에 따르면 행복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은 분노에 찬 사람들만큼이나 왜곡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잘될 거야’라는 식의 태도 때문에 분석적 사고를 시도하는 대신 고정관념, 단순한 기대에 쉽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베티의 호소처럼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니다”는 의심을 좀처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삐딱한 단어 해설서인 ‘악마의 사전’은 ‘낙천주의자’를 ‘검은 것이 희다는 교리의 신봉자’라고 규정했다. 지독하게 신랄하지만, 긍정적 기대를 번번이 배반하는 현실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당사자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했을 게으름과 방관이 이국땅에서 절규하던 한 사람을 살릴 기회를 놓쳤다. 우리가 “희망이 보인다”는 뉴스에 안도하던 순간, 그는 황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요즘처럼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라’는 잠언, ‘희망’이라는 말 따위가 공허하게 들리는 시절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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