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반대하는지는 알기 쉽지만, 뭘 원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데미언이 시네드에게 편지를 쓰며 -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다. 시네큐브 광화문의 일요일 오전 10시반 조조 프로그램.
열댓명쯤 보겠거니 했는데 웬걸, 상영시간보다 30분 일찍 갔는데도 줄을 서야 했다. 세상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좌파 영화감독 켄 로치의 영화를 보러 사람들이 줄을 서다니…. 기분이 묘했다.


한때 그의 영화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사회주의적 가치가 옳다고 믿던 때, 그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은 한동안 ‘내 인생의 영화’였다. 98년인가 그의 영화 ‘내 이름은 조’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던 해, 칸에 있던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단상 앞까지 부득부득 뚫고 가서 그의 사인을 받아 액자에 넣어 간직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그를 잊고 살았다. …내가 변해서였나. 세상에 대한 생각이 변해갈 무렵부터 그를 잊었던가…. 어찌됐건 8년 만에 그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거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아주 아주 심란하고 슬픈 영화다. 1920년 아일랜드의 영국에 대한 독립투쟁 와중에서 내부에서 분열된 형제의 비극을 다뤘다. 영화의 줄거리,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의 갈등 같은 것들이 궁금하면 인터넷의 다른 글들을 참조하시길...


내게 이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무엇에 반대하는가’에 지나치게 집착해 파멸을 맞게 된 개인의 비극으로 보였다. 켄 로치 영화에서 개인이 두드러져 약간 의아했다. 이 감독이 변한 걸까.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든 생각은, 켄 로치는 변함없이 ‘어떤 상황에 처한’ 개인을 응시해왔는데, 이전의 난 ‘상황’만 쳐다보느라 눈이 어두워 개인을 보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점....

모두들 그러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형제들 역시 불의에 대한 순수한 분노에서 싸움을 시작했다.

신부가 되려던 형 테디, 런던에 가서 의사로 승부하고 싶었던 동생 데미언은 영국 군인의 만행을 참다못해 IRA에 가입하고 무장 투쟁을 벌인다.

그러나 브레히트가 노래했듯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

투쟁의 와중에 데미언은 밀고자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그 밀고자는 데미언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순진하고 가여운 아이였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한 데미언은 “조국이란 게 이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는 거겠죠”하고 애써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무섭다고 울먹이는 아이를 ‘처단’하는 행위의 '무가치함'에 대비되어 그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게 들린다. 그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해가면서까지 사수해야 할 이상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저럴 가치가 있을까’ 하고 관객이 다시 고민하게 되는 장면은 영화 끝부분이다. (나처럼 미리 알고 보아도 여전히 충격적이지만, 이 영화를 볼 계획이며 일체의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은 읽지 마시길....)
이번엔 증오로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은 형 테디였다. 형과 동생은 계급적 관점에서 서로 입장을 달리해 서로 상대를 향해 무장투쟁을 벌이게 되고, 테디는 포로가 된 동생 데미언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끝내 동생을 처형장에 세운다. 그 장면에서 관객은 앞서 데미안의 말을 다시 테디에게 들려주고 싶어진다. '조국이란 게 그렇게까지 할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무엇에 반대하고 싸우는 일 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무엇에 반대하는 용기. 때로 사람들은 거기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싸움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증오하는 대상을 닮아간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정당화하면서, 악에 맞서는 선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면서, 대오의 일치단결을 위해 교조적 신념을 강요하면서, 비슷하게 폭력적이 되고, 허세를 배우며, 사람을 점점 더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바라보게 된다.
정의를 주장하면서 스스로 정의롭지 못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서로를 믿지 않는다.... 그렇게 비참한 타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고귀한 이상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기나 한 걸까.


내 멋대로 해석하자면, 켄 로치가 2006년에 1920년의 아일랜드 무장투쟁의 비극을 전하면서 하려는 말은 이런 거였던 것같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더 이상 '무엇에 반대하는가'를 통해 입장의 일치 혹은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아니어야 하지 않냐고....더 확대 해석하자면, ‘무엇을 반대하는가’ ‘하기 싫은 일은 무엇인가’ 대신 ‘무엇을 원하는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대의명분을 위한 거대한 운동에서든, 개인의 삶에서든 제대로 살려면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고.

Posted by s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