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9 21:41

해리 포터 생가

사망 직전인 노트북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1년여전 다녀온 여행 사진들이 ‘내그림’ 폴더에 쌓여 방치돼 있는 것을 발견. 이제 와서 정리하자니 엄두도 안나고, 그저 몇 개씩 묶어 압축해 USB로 옮기던 중 에딘버러의 이 카페 사진들에서 손이 멈추었다. 이걸 이제사 찾다니.

올해 초 '터닝 포인트' 시리즈로 사람들을 인터뷰한 일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인터뷰 끄트머리에 자기 딸이 해리 포터의 '생가'를 꼭 가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를 썼다는 그 카페 말이다. 그 분이 누구인지,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아마 따님이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거나, 아니면 내가 다녀온 스코틀랜드 여행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이었거나...)는 잊었다. 그 때 이 사진들을 그 분 따님께 보내줘야지, 생각했는데, 그것도 난삽한 사진 폴더를 좀 뒤지다 말고 깜빡 잊어 버렸다...혹시나 그 분이 그때 나랑 약속 장소 정하는 메일을 주고받다가 내 블로그 주소를 보게 되어 여길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우연히라도 그 분 따님에게 이 사진들이 가닿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여기 올려놓는다.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를 썼다는 그 카페 ‘Elephant House’다. 오른쪽 아래 구석에 ‘해리 포터’가 여기서 태어났다고 표지만 붙여놨을 뿐, 안에 들어가도 더 뭐 언급이 없다. 요란스럽게 떠들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카페 이름만 ‘Elephant house’인 것이 아니라, 안에 들어가면 벽장식 그림, 책꽂이에 꽂힌 책들의 주제, 몇 개 세워둔 조각 장식의 모양이 죄다 코끼리다.  

안쪽은 생각보다 넓고 크다. 낡은 책상과 의자들. 롤링이 어디쯤 앉아서 해리 포터를 썼을까를 생각하면서 둘러보다가 저 왼쪽 창문들 사이의 좁은 벽 앞, 한 청년이 책을 읽고 있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너무 밝은 창문 옆도 어울리지 않을 것같고, 내가 앉아있던 자리인 책장 앞도 어쩐지 어울리지 않고, 저기라면 적당한 그늘 아래 고개 숙이고 글을 쓰다가 가끔 머리를 들면 앞쪽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 덕분에 덜 우울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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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늦지 않았다" 이웃 미탄님 책 출간이벵합니당^^

    Tracked from 토마토새댁네 2010/01/06 11:48 delete

    저는 저 스스로 복땡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1년이 지난 블러거 생활로 대한민국 촌구석 작은 마을에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던 춘부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면서 하루하루를 혼자 실실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실 웃고 다녀서인지 즐거운 일들만 같이 합니다.^^ 스쳐지나가면 모든 순간순간들을 이 토댁을 기억하시는 분을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의미가 생겼고 그 의미 덕에 순간이 놀이이고 즐거움입니다. 또 한 분 한 분 블러거님들을 알아가는 놀이도 참..

  1. BlogIcon 나를알다 2009/11/29 21:49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저기서 썻나보군요.. ㅎㅎ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대작이 이런곳에서 탄생하다니..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2. 사복 2009/11/30 14:20 address edit & del reply

    제목만 얼핏 보고 오타인 줄 알았는데, 어이쿠야, 정말로 '생가'였군요..! 쿠흡; '어디서 포터가 나타났을까 두리번거렸을 산나님을 그려봅니다요.. 크흐흣..

  3. lebeka58 2009/12/01 10:17 address edit & del reply

    아하~~ 저기서 해리포터가 나왔군요. ㅋㅋ 소박하고 평범한 공간이네요. 차리리 pup에서 더 잘 쓰여졌을거란 생각 . 와인 한잔에 알달달한 기분에 더 환타스틱하지 않았을까염 ~~~

  4. 2009/12/01 16:19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5. 2009/12/02 19:0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6. 2009/12/04 01:37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 BlogIcon sanna 2009/12/04 02:20 address edit & del

      님의 블로그에 제 대답을 다시 댓글로 남겼으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7. 2009/12/04 13:02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8. 2009/12/11 11:18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9. lebeka58 2009/12/15 11:15 address edit & del reply

    산나님, 겨울칩거 중은 아니시죠? 목 길게 빼고 기다려요 .

  10. BlogIcon UFO 2009/12/23 14:16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도 강남등 카페안에서 노트북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더군...
    심지어 강남 어딘가에는 엄마가 방학때 날마다 아이와 함께 와 숙제를 카페안에서 해결한다는군...내가 아는 통신사 사진기자들은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시키고 담배피우며 노트북 마감하던데...그 모습을 자주 보는데 보기 좋더군.........
    그나저나 내 가족 김*해씨가 당신 식사 언제 꼬옥 모시고 싶다는데.......
    방학중 내주시면 감사하고...나 빼구..............

  11. 팔다 2009/12/29 00:33 address edit & del reply

    선배, 새해 인사 드리려고 들렀어요. 새해에 즐거운 일 가득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젠가 선배와 일본에 사케 투어 갈 날을 기약하며, 요즘 일본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답니다 호호호. (아직 '이것은 책입니다, 저것은 연필입니까?' 뭐, 이런 정도 수준입니다만....그래도 간판은 읽을 줄 압니다 ^^)

  12. lebeka58 2010/01/04 14:07 address edit & del reply

    온 세상이 무채색이네요. 올 한해 지금 내리는 눈처럼 기쁨, 보람, 건강이 푸짐하게 내리는 날이 되시길 기도할게요. 샬롬~~~

  13. BlogIcon 토댁 2010/01/06 11:51 address edit & del reply

    해리를 무쟈게 사랑하는 울 큰 아들이 가 보고 싶어하겠는데요..^^
    산나님^^
    미탄언냐가 출간기념이벤트를 하십니다.
    제가 트랙백 남겼습니다.
    책을 사랑하시는 이웃분들꼐 널리 알려주세요~~~

    참,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우리 산나님~~~^^

  14. hojai 2010/01/06 17:50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요즘 경복궁 인근 까페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도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요? ㅠㅠ

  15. 아연 2010/01/09 17:33 address edit & del reply

    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1등이 코끼리인데. 꼭 가봐야겠어요. 아 이쁘겠다 흑

  16. BlogIcon 엘윙 2010/01/11 00:18 address edit & del reply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늦었죠? ㅎㅎ)

    해리포터가 저기서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신비로워 보이는데요.
    카페 어딘가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것이 상상이 안되요!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2009/11/28 12:14

나는 모르겠어

영감이란 일반적으로 예술가 혹은 시인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영감을 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며, 과거에도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뚜렷한 신념으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애정과 상상력을 갖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

영감, 그게 무엇이든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생겨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생계 수단으로 일을 합니다. 혹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을 합니다. 스스로의 열정으로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들이 그들을 대신해 선택을 내리곤 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일, 그나마 그런 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가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 이런 일들은 인간에게 닥친 가장 슬픈 불운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가올 21세기에 금세 행복한 변화가 일어날 것같지는 않습니다.

……

지금껏 쭉 이야기를 듣고 계신 청중 여러분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살인자, 사형집행인, 독재자, 광신자, 몇 개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선동 정치가 역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또 열광적인 아이디어로 그 일을 수행하고 있지 않느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 오로지 그 하나만으로 영원히 족합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철저히 관심 밖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쪽을 향해 눈을 돌리는 순간, 자신이 주장하는 논쟁의 힘이 약해질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르겠어’라는 두 단어를 저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단어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우리의 삶 자체를 폭넓게 만들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불안정한 지구를 포함하는 드넓은 영역으로 확장시켜 줍니다. 만약 아이작 뉴턴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사과가 그의 눈앞에서 우박같이 쏟아져도 그저 몸을 굽혀 열심히 주워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저의 동포인 마리 퀴리가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월급을 받고 양가집 규수에게 화학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남았을 것이고, 그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며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시인과 세계’를 읽다가 옮겨놓음. 연설문 모음집인 ‘아버지의 여행가방’에서 재인용.
....공감하는 마음과 함께 괜히 어깃장을 놓고 싶은 심술도 자극하는 글. 무시무시한 살인자, 사형집행인, 독재자, 광신자의 카테고리에 함께 묶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나는 아주 작은 그 하나, 그게 뭐든 간에, 오로지 무엇 하나에 대해서만이라도 '알고 싶다'. '나는 모르겠어' 대신 '이것만큼은 나도 안다'고 말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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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숙 2009/11/29 23:57 address edit & del reply

    저 시인은 꼭 동양철학자 같군요...시인의 글은 영롱하게 빛나고, 언니의 해석글은 마음에 와 닿슴니다. 모르겠다는 자기인식은 알고싶다는 절실함을 깔고 있는거 같아요. 왜 알고싶으냐면, 사람이니까...^^ 그걸로 뭘할수 있을까, 으으. 그건 잘 모르겠다. ^^"

  2. 사복 2009/11/30 16:32 address edit & del reply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산나님도, 기실,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미치겠다' 고로 '알고 싶어 죽겠다'고, 농도 짙은 에너지를 뿜어내고 계시는 거겠지요.. 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그런 생각이.. 으흐흐... (어깃장 놓고 싶은 맘에 다시 어깃장을...)

  3. lebeka58 2009/12/01 10:10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러고보니' 나는 모르겠어' 란 말을 모두들 달고 살지 않나 싶어요. 근데 심보르스카할머닌 넘 극단적이지 않나 싶네요. '난 모르겠어' 하면서두 저두 친구들두 그밖에 사람들도 잘알~~지내고 있거든요.' 난 모르겠어' 의 개념의 질적인 차이인가봐용. ㅋㅋ 제가 보기엔 산나님의 '이만큼은 나도 안다'에 기실은 많은것을 이미 갖고 계시고선~~~~ 제게 자극 주시려 그러신거죠???








    ~~